북경의 세 딸
펄 벅 지음, 이은정 옮김 / 길산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양마담과 세딸

펄s, 벅 │ 길산 │ 2003.12.15 │ p.366

 

 

 

인간이 역사에게가 아니라, 역사가 인간에게 가져야 할 도의적 책임은 무엇인가.

 

 

서문의 한 문장을 빌려왔습니다. <양마담과 세딸>이라는 책을 통해 펄s. 벅을 처음 만났고, 그 만남은 사실 그리 달갑지가 않았습니다. 세월을 견디어 누렇게 변한 속지, 촌스러운 표지에 덜컥 겁이 나서 미루고 미루다가 열흘을 채워 쪼개고 쪼개어 읽었지요. 그러나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였음을 고백합니다.

 

 

<양마담과 세딸>은 문화대혁명, 그 격동의 시기를 고스란히 지나 온 한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상해 최고 대반점의 여주인 양마담은 그 혼란 가운데서도 여전히 부르주아적인 삶을 누리고 있지만 사실 그녀의 삶은 팽팽한 활시위처럼 위태롭고 연약하며 외롭습니다. 그녀의 뛰어난 통찰력은 세 딸을 미국에서 교육 받을 수 있도록 하였으나 자신은 그 시대에 대한 책임감으로 차마 중국을 떠나지 못합니다. 세 딸만은 이 혼란 안에 안전하길 바랐던 그녀의 계획과는 달리 두 딸은 조국을 선택합니다. 그렇게 양마담의 가족은 시퍼렇게 날 선 역사의 소용돌이, 그 한가운데 처참히 던져집니다.

 

 

내가 모택동이니 문화대혁명이니 등소평에 관심이 있을리가요. 나는 내 삶의 안위를 걱정하기에도 버거운 소시민입니다. 모르는 것이 약이라 하지요. -「뿌리깊은 나무」에서 최만리는 “백성이 많이 알면, 그들이 삶은 더욱 척박해진다.” 라고 말하며 한글창제를 반대합니다. - 눈을 감고 귀를 닫고 그렇게 내게만 집중합니다. 그러던 나를 내려친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였습니다. 더 이상은 외면할 수 없었지요. 진실이 무엇이든 한 나라의 대통령을 죽음의 벼랑 끝에 세운 나라가 나는 너무 두려웠습니다. 나는 여전히 이 나라 돌아감을 잘 알지 못하지만 더 이상 무지(無知)로부터의 안위(安危)에 머물지 않습니다.

 

 

무구한 희생, 피할 수 없는 시대의 비극 안에서도 역사는 멈추지 않고 흐릅니다. 그 흐름은 신나게 날뛰며 진보하기도 바닥으로 꼬구라지는 퇴보를 거듭하기도 하지만 한 순간도 그 자리에 멈춰 있지 않음은 분명합니다. 그 흐름에 목적 없이 휘말려 흔들지기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조심스럽게 건네집니다. 영화로움의 상징 공간이었던 대반점의 문 앞에서 대혁명의 습격으로 최후를 맞았던 양마담은 결국 우리를 닮아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서문의 문장을 빌려옵니다.

 

 

인간의 이념은 그것을 원치 않는 이들까지도 그 폭풍 속으로 끌어들인 뒤, 그렇게 흘려진 피를 바탕으로 자라난다는 역사적 반복을 통탄하는 동시에, ‘문화대혁명’의 물결 속에 사라져버린 과거를 열정적으로 향수한다.

 

 

 

  p.281

 

양 마담은 주변에 많은 사람들을 두었음에도 언제나 외로움을 느꼈고,

그 외로움 속에서 인간의 본질을 발견했다.

그녀는 이 수많은 변화를 통해 인간의 본질은 어떤 시대적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어떤 것을 발견하게 된 셈이다.

노자는 이렇게 말했다.

"계란으로 바위를 쳐 보아라.

세상의 모든 계란을 던져도 바위는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이 단순하고도 심오한 진리는,

인간과 자연이 만들어 낸 재앙으로 고통 받고 있는 이 순간

더더욱 그 진가를 나타내고 있었다.

 

 

 

 

 

 

하다.

copyright ⓒ 2012 by. Yu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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