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Thirty - 젊은 작가 7인의 상상 이상의 서른 이야기
김언수 외 지음 / 작가정신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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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른 Thirty│김언수 등│작가정신│2011.10.10

서른, 이라는 단어 하나에 숨이 턱 막혀 옵니다. 나이가 차오름에 짐짓 태연했던 나였는데, 서른의 문턱을 밟아가는 일은 도무지 태연한 척으로 버터내기엔 너무 가파르고 거친 고개입니다. 아마도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멈짓하는 순간인지 '서른'에 대한 책들이 제법 눈에 띕니다. 대부분 뻔한 이야기들이 줄줄이 세워놓고 명쾌한 답변 한마디 보태주지 않으며 "원래 그런거야. 다 지나갈거야!" 할테지만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7명의 작가가 이야기하는 '서른'을 만났습니다.

70년대 중반에서 80년대 초반에 태어난 젊은 작가들은 이제 갓 혹은 조금 더 전에 서른을 지났습니다. 서른이라는 시간을 지나고 이야기하는 서른은 어떨까, 그리고 제게 다소 트라우마가 되었던 <제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 만났던 작가들이 많아서 괜스레 친근감도 들고 믿음직도 하고 그렇게 반갑게 그들의 이야기를 만났습니다. 책장은 미끌어지듯 유연하게 넘어가지만 결코 그 안에 이야기들은 나를 응원하거나 다독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음 한 켠이 뻐근하게 그들의 서른을 녹여냅니다. 

김나정 작가님의 <어쩌다>에서는 어쩌다 보니 살인사건의 공범에서 주범이 되는 죄의식은 물론이고 현실의 버걱거림 앞에서 정의를 상실한 우유부단한 청춘을 만납니다. 하지만 그렇게 포기하기엔 아직은 너무 창창한 나이, 그러나 그의 삶은 노력할수록 엉켜갑니다. 한유주 작가님 - 아, 나의 애정하는 닉네임과 같아 더 많은 기대를 했지만 단어의 나열은 역시나 난해하기로 손꼽히는 텍스트 실험적 소설집 ‘달로'‘얼음의 책’에서 처럼 내 입맛에는 거칠어 보리밥을 먹은 것처럼 까끌꺼려 목넘김이 버겁습니다. - <모텔 힐베르트>에서는 연쇄살인범의 이야기를 만났습니다. 마지막 살인을 끝내고 떠나기 전 들른 끝을 알 수 없는 모텔 힐베르트에서 그는 이유도 모른채 옆방으로 옆방으로 계속 옮겨야 합니다. 주인에게 항의하고 싶지만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으니까 주인의 요구에 따를 수 밖에 없습니다. 박주현 작가님의 <모히토를 마시는 방>에서는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지만 삶의 공허를 채우지 못하여 결국 간통을 저지르고 살해당한 채 자신의 과거를 회상합니다. 서른이 되었지만 서른처럼 보이지 않음에 집착하는 그녀는 사실은 별 다를 것이 없는 -하지만 그녀에게는 특별한 - 805호에서 떠나지 못합니다. 김성중 작가님의 기억을 팔고 사는 <국경시장>에서는 지우고 싶은 기억들을 모조리 팔아 버리고 만월이 뜨는 밤에만 열리는 야시장에 갇힌 서른이 있습니다. 정용준 작가님의 <그들과 여기까지>는 자살을 하고자 마음먹지만 상황에 휘둘려 자살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웃지 못할 청년의 이야기 입니다. 박화영님의 <자살 관광 특구>는 자살을 하고자 하는 이들이 모인 마을과 그들의 자실을 돕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 자살하고자 떠난 이를 찾는 탐색자의 이야기입니다.

한참이나 내 마음을 묶어 놓았던 김성중 작가님의 <바람의 언덕>의 제이에게 달려가 그녀의 식은 손을 잡아주고 싶습니다. 스무살이 되어 만난 잘 정돈된 정원보다 먼지가 폴폴 날리는 낡은 동네길을 좋아했던 공주님 제이는 삶이 굴러가는 대로 자신의 손을 잡아 끄는 남자의 욕정에 거침없이 흔들립니다. 그 고독을 삼키다 삼키다 한계에 도달했을 때 그녀는 그린란드의 에스키모인들처럼 스스로를 놓아 버립니다. 아직은 서른, 지나온 시간보다 지나야 할 시간이 많은 그녀는 누구의 이해도 얻지 못한 채 그렇게 촛불처럼 사그라듭니다. 그리고 그녀와 마지막 밤을 보낸 어린 날 골목의 친구인 나는 적당한 거리, 그녀와의 친근감이 닿지 않을 거리에 서 있습니다. 그는 태연자약(泰然自若)한 듯 위장한 비열한 서른의 남루한 표본이 됩니다. 그리고 그녀의 마지막 남자친구 명훈은 꼭 일년이 지나 제이를 따라갑니다. 목적을 상실한 청춘, 의 고린내 진동하는 단면을 작가는 꺼리김없이 고스란히 노출시킵니다. 

p.29 

인간은 자신이 보낸 시간과 결코 이별할 수 없는 법이다. 

죽음으로 귀결되는 서른의 7가지 이야기를 만났습니다. 아직은 남의 일처럼 느껴졌는 '죽음'이라는 설정,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죽음'이 낯설지 않은 까닭은 우리 한 번 쯤은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서른이 되는 탓일까요. 절대로 달콤하지 않아서, 폭풍 뒤의 무지개처럼 희망하지도 못하는 이야기들에서 나는 서른으로의 걸음을 주춤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슬프지 않은 까닭은 내 주춤거림에 당위(當爲)를 얻었기 때문일까요. 조심스럽게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녀, 어른이되다.

copyright ⓒ 2011 by. Yu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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