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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코 서점 ㅣ 북스토리 재팬 클래식 플러스 4
슈카와 미나토 지음, 박영난 옮김 / 북스토리 / 2014년 10월
평점 :
어린시절을 함께 했던 친구가 반가운 이유는 삶의 한 단편 속에서 같은 추억들을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추억이란 것이 그렇듯
시간이 어느정도 흐른 후에는 아름다움으로 포장되는 경우가 종종 있고, 행복이란 이름의 것들로 기억되어지기 일쑤다. 그렇기에 그 행복한 시간을
함께 한 이들에 대한 애틋함과 즐거움은 뭐라 쉽게 표현하기도 대체하기도 쉽지 않다. 나의 주변에 함께하는 오래된 물건들, 시간의 발자취들,
그리고 책들도 마찬가지이다. 누군가의 삶 속에서 특별한 하나의 시간과 함께했던 책 한권의 가치는 말로 표현하기 힘듬 그 자체일 것이다.
슈카와 미나토의 <사치코 서점> 역시 나에게는 그렇다. 일본 미스터리에 빠져 지내던 그 때, 호러와 미스터리를 섞어놓았지만
무섭다기보다 기묘하고, 공포스럽기보다 독특함과 잔잔한 감동을 전해주던 이 작품에 대한 느낌이 아직도 특별하게 남아있다. 탐정 혹은 경찰이
등장하거나 매력적인 인물이 사건을 풀어나가는 식의 미스터리적 틀을 가진 익숙한 작품이 아닌 색다른 재미와 감동을 전해준 다른 색깔을 가진 작품!
슈카와 미나토라는 이름에 대한 특별함 또한 그의 또 다른 작품들을 만나게 하는 기회를 전해주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4년여의 시간이 흘렀고
다시금 그 특별한 이야기들을 만난다.

일본 도쿄 아카시아 상점가로 이사를 하게 된 고지와 히사코. 그들이 도착한 이 동네에서는 얼마전 '희랑정'이라는 라면가게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리고 사건 현장을 맴도는 한 남자를 발견한 고지. 혹시 그 남자가 이 사건의 범인일까? 아니면 그 남자의 정체는 무엇일까?
[수국이 필 무렵] 에 담긴 이야기이다. <사치코 서점>에는 이처럼 조금은 미스터리한 이야기들이 조각조각 숨겨져 있다. 1970년대
도쿄의 서민동네인 아카시아 상점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기묘하고 환상적인 일들을 담아낸다.
하지만 정말로 두려운 일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정말로 두려운 일은 어느
날 갑자기 열기가 식어, 자신으로 돌아가는 순간인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어머니라는 사실을 히사코가 떠올리는 순간 위조된 꿈은 실로 간단하게
깨져버린다. 그래서 우리는 깊이, 격렬하게 사랑했다. 서로를 생각하는 것밖에 모르는 어리석은 생물체처럼 혼신을 다해 사랑했다. 지금 그 마법은
풀렸다. - P. 45~46 , 수국이 필 무렵 中에서 -
헌책방인 '사치코 서점'과 책방 주인 할아버지, 그리고 '가쿠지사'라는 절이 7편의 단편들속에 공통적으로 등장하고 하나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 가쿠지사라는 절에는 이승과 저승을 오고 가는 문이 있다고 전해지는데 이런 이유 때문인지 기묘하고 미스터리한 일들이 아카시아 상점가
주변에서 종종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사치코 서점과 그 주인이 이 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무시할 수가 없다. 각 단편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나
시점들은 모두 다르지만 결국 사치코 서점이라는 공간적 배경과 주인 할아버지의 등장으로 각자의 이야기가 연결점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동생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형, 아내와 딸을 지키려는 남자, 애절한 사랑의 이야기 등 가족과 사랑이라는 테마속에 깜짝 놀랄 미스터리의
반전과 재미를 녹여놓은 작품들이 있는가 하면... 고양이의 영혼이 등장하고, 죽음을 감지하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남자 등 환상적인 느낌을
전해주는 작품도 있다. 사치코 서점은 사실 모든 이야기속에 등장하지만 특히 두 단편에서는 꼭 필요한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사랑의
책갈피]에서는 이야기의 주요 무대가 되고, [마른 잎 천사] 속에서는 드디어 비밀스런 헌책방 할아버지의 정체가 밝혀지게 된다.
오랫만에 다시 만났지만 역시 슈카와 미나토의 정교하고 짜임새 있는 이야기는 여전하다는 느낌을 갖게 만든다. 환상적이고 기묘한
미스터리! 뭐라 달리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이 작품을 가장 잘 표현한 말이 아닐까 생각이된다. 미스터리의 재미, 반전과
엉크러진 퍼즐을 짜맞추어가는 재미와 함께 생각치도 못한 감동적 이야기들이 마음 한켠을 따스하게 만든다.
4년전 이 책과 함께 했던 그 시간, 개인적으로는 첫째 딸아이를 만나고 한달여의 시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경이롭던 새로운 만남, 그
와중에 만났던 책 한 권이 전해준 감동! 그래서 다시금 이 책을 통해 그 시간을 추억할 수 있고, 그 감동을 되새길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그 아이는 다섯살이 되었고 동생도 생겼다. 이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 그 시간속 또 다른 책들과의 시간은 또 다른 추억으로, 시간을 거슬러
우리의 삶이 일부분이 된다. 또 몇년이란 시간이 흐른뒤 다시 만난 <사치코 서점>은 어떤 이야기를, 추억들을 만들어낼까? 궁금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