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메스의 이름은 고메스
유키 쇼지 지음, 김선영 옮김 / 검은숲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고메스의 이름은...'

두 발의 총성! 고통스럽게 일그러진 얼굴의 한 남자, 목구멍에서 가까스로 쥐어 짜낸 남자의 마지막 한마디! '고메스?' 그게 누구란 말인가? 그리고 남자는 두 번 다시 움직이지 않았다. 도쿄에 본사를 둔 니치난 무역회사의 사이공 출장소의 가토리 요시히코가 갑자기 사라졌다. 행방불명! 예정대로라면 도쿄로 복귀할 계획이었던 가토리! 하지만 한 달전 어떤 이유도,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가토리의 행방을 찾는 사카모토! 그의 시선속에 이 스파이 소설은 시작된다.

 

<고메스의 이름은 고메스>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점령군 일본의 퇴각과 영향력 확대를 노리는 미국과 소련, 그리고 자신들의 독립을 바라는 베트남인들 간의 다양한 갈등 상황하에 놓인 1961년 남베트남을 배경으로 하는 스파이 소설이다. 세계 냉전에 휘말려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남과 북으로 나뉘어 서로 총을 겨누어야만 했던 베트남 인들의 가슴아픈 역사! 베트남전 참전국이기도 하고 남과 북으로 분단된 현실과도 직면한 우리에게 이 소설은 색다른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사이공으로 부임한지 반년도 지나지 않아 갑작스레 본사 복귀를 요청한 가토리. 도대체 그에게는 어떤 사연들이 숨겨져 있을까? 가토리의 후임으로 사이공으로 부임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사카모토는 가토리와 친한 친구 관계이다. 더불어 가토리의 아내인 유키코와 사카모토는 내연의 관계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가토리의 생사 여부는 어쩌면 사카모토에게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그의 내면이 아래의 말 속에 잘 담겨진다.

 

'나는 살아 있는 가토리를 찾으려고 사이공에 가는 걸까, 아니면 죽은 가토리를 찾으려고 가는 걸까?' - P. 33 -

 

가토리의 행방을 쫓던 사카모토는 가토리가 자주 찾던 '금우'라는 술집을 찾게 되고 우연치 않게 자신을 미행하던 한 남자의 죽음과 맞닥드리게 된다. 두 발의 총성과 '고메스'라는 이름을 마지막으로 남긴 남자. 이 죽음과 가토리의 실종은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가토리의 가정부였던 리엔! 물론 가정부 이상의 특별한 관계였음을 감지한 사카모토는 리엔에게서 유키코의 향기를 느끼게 되고, 금우에서 알게된 또 다른 가토리의 여자 벨라를 찾아 나서는데...

 

일본 스파이 소설의 초석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는 유키 쇼지의 이 작품은 스파이 소설이라는 명함보다는 스파이 소설의 틀에서 짜여진 추리 심리 소설이라는 평가가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스파이 소설이 갖는 긴박함, 매력적인 캐릭터, 잘 짜여진 구성 등 다양한 요소들 중에서 탄탄한 구성 정도에만 점수를 줄 수 있을 것 같은 작품이다. 친구의 아내와 불륜에 빠진 주인공이 실종된 친구의 생사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상황, 인물들과 맞부딪히는 약간은 고전적인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스파이 소설. 아니 오히려 추리 미스터리에 가까운 심리 소설이 <고메스의 이름은 고메스>에 어울리는 수식이 아닐까싶다.

 

'스파이라는 존재는 인간 불신에 대한 교훈이다. 나는 이 비극을 현대의 우화로, 가능하다면 불안한 현대의 상징으로 표현하려 한다.' - P. 301 , 작가 후기 중에서 -

 

유키 쇼지는 이 스파이? 소설을 통해 베트남이 가진 시대적, 역사적 상황에 집중한다. 이 작품이 쓰여진것이 1962년, 작품의 배경이 1961년이다. 그래서인지 세계 열강들의 각축장이자 자신들의 독립을 위한 열망의 땅 베트남에 대한 작가의 애정어린 시선이 작품속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듯 하다. 그런 느낌은 책의 마지막에 담긴 작품 후기에서도 드러난다. 혼란의 시대, 인간 불신의 표현이라는 스파이가 주인공인 소설! 작가가 이야기 하려는 것들이 조금은 눈에 들어온다. 베트남에 뿌리내릴 평화, 사이공에 대한 작가의 사랑! 아미도 이런 것들이 아닐까.

 

소설의 무대인 베트남에 대한 긴박하고 혼란스런 상황들을 통해 인간이 가진 고독과 배신, 불신이라는 키워드를 작가는 꺼낸다. 벌써 반세기전에 쓰여진 작품이 아직도 색다른 스파이 소설로 독자들에게 생동감 넘치는 즐거움을 준다는 것이 새롭게 느껴진다. 사실 유키 쇼지의 작품은 처음이지만 오랜 세월의 흐름을 잊게 만드는 즐거움과 조금은 어색할 수도 있는 스파이 소설의 매력을 색다르게 창조해냈다는 평가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몇년전 한국형 미스터리의 대표주자 이정명 작가의 '악의 추억'이라는 작품을 만난적이 있다. 국내 역사 미스터리를 벗어나 작가가 새롭게 시도한 이 작품을 읽고 아쉬움의 탄식이 새어나온 적이 있다. 그만큼 어느 한 장르를 섭렵하고 자신만의 색깔을 만드는 작업은 그만큼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을 한 계기이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금 '별을 스치는 바람'이란 작품으로 또 다시 도전?을 시작한 작가 이정명! 오늘도 수많은 미스터리, 추리, 스파이 탐정 소설들이 넘쳐나듯 우리의 시선을 노크한다. 처음 만난 유키 쇼지의 스파이 소설, 오래전 작품이 전해주는 깊고 진한 향기와 더불어 일본 소설이 가진 다양성의 시작!을 만나는 특별한 시간이 아니었나 개인적으로 평가해본다. 유키 쇼지의 다른 이야기들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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