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회
아카가와 지로 지음, 모세종.신인영 옮김 / 어문학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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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속을 유영하는 여자아이가 있다. 눈부시게 파란 물색, 검은 머리를 흩날리며 수영을 즐기는 소녀의 눈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몽환적인 느낌이 들기도 한다. 작은 손짓으로, 입술을 꼭 다물었지만 그 눈빛이 뭔가 간절하게 무언가를 말하려는듯 우리에게 시선을 고정시킨다. 표지를 가로지르며 빠알간 꽃들이 피어나고 그 아래 흩뿌려진 붉은 색은 아마도 피? 쪽빛 물색과 붉은 액체가 선명한 대비를 이루며 <야회>라는 제목을 가진 이 작품의 표지에 독특한 느낌은 전해준다.

 

카가와 지로! 지금까지 발표한 작품수가 450여 편에 이를 정도로 다작으로 유명한 작가라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아직까지 만나본 그의 작품이 없다는 게 아쉽다. '악처에게 바치는 레퀴엠' 정도는 어느 정도 익숙한 제목이기도 하지만... 그의 작품중 12편이 영화로, 60여편이 TV 드라마로 제작되었고, 다양한 수상으로 일본에서는 꽤나 유명한 작가인듯 싶다. 앞서 책의 표지도 인상적이었지만, 몽크의 '절규'를 시작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곳곳에 자리하는 그림들은 추리 스릴러로 통하는 <야회>의 독특한 분위기를 이끌어준다.

 

<야회 夜会>라는 이 작품의 제목은 '밤의 연회' 라는 의미를 가진다. 세 명의 소녀가 초대된 죽음의 살인 파티! 아카가와 지로의 추리 스릴러는 이렇게 시작된다. 15섯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수영 세계선수권에서 누구도 예상치 못한 금메달을 따게 되면서 스포트 라이트를 받게된 18살의 '사와이 사또꼬'와 그녀의 언니 '사와이 하쯔꼬'. 사와이와 동갑내기인 '사야마 키요미'가 바로 연회에 초대된? 그녀들이다. 아직 어린 그녀들이지만 의도치 않게 빗나간 시간을 헤매이는 이 소녀들의 삶에 누구도 예상치 못한 특별한 사건들이 벌어지게 된다.

 

'금메달로 빛났던 열다섯 살 때부터 3년간 사또꼬는, 10년 아니 20년이나 나이를 먹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또꼬를 이용하려고 하는 어른이 벌 떼 같이 접근해 왔다. 그 중에는 사또꼬가 귀엽다며 탤런트하지 않을래?하고 말해 오는 사람도 있었다. CD데뷔라며 진짜로 기획을 해오는 사람도 있었다.' - P. 17 -

 

한 소녀는 갑작스런 관심으로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던 수영이 싫어진다. 사또꼬를 이용하기에 혈안이 되어있는 어른들의 집요함. 소위 얼굴 마담이 되어 수영과 관계된 모든 행사에 의무?적으로 참여하게 되고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짜여진 일정에 움직여야 하는 사또꼬. 그런 그녀에게 좋은 성적을 기대하는 건 무리가 아닐까? 사또꼬는 이런 그녀의 일상에서 일탈을 감행한다. 그러던중 우연찮게 강에서 야스나가 마사또시라는 12살 소년을 구하게 되는데...

 

또 한 소녀는 절친인 마미야 시노부와 함께 원조교제를 미끼로 어른들의 등을 쳐 용돈 벌이를 하는 사야마 키요미이다. 여느때처럼 동전 던지기를 통해 역할을 나누었던 키요미와 시노부. 하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시노부의 죽음, 키요미는 시노부의 가방에서 나온 고객의 명함 한 장을 가지고 석연찮은 시노부의 죽음의 비밀을 쫓는다. 사또꼬의 가출로 그녀를 찾아온 언니 하쯔꼬. 마사또시의 생일 파티를 기점으로 이 죽음의 저택에 모여든 그녀들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밤의 연회는 그렇게 시작된다.

 





 

' "왜 구해주신 겁니까?" ... "분명히 당신은 후회할 거예요. 그 아이를 구해준 것을." '

 

사또꼬에게 걸려온 의문의 전화. 왜 마사또시를 구해주었느냐는... 분명히 후회할 거라는... 의문의 말을 남긴 목소리의 정체는 무엇일까? 'Y재단'의 구라따는 또 어떤 인물인지, 죽은 시노부와 구라따는 어떤 연관이 있는지, 12살 소년 마사또시는 누구인지? 책의 중반 이후까지도 이런 물음표는 갯수를 더해간다. 이 작품을 단순히 추리 스릴러라는 장르로 묶어 둘 수 없는 이유가 곳곳에 존재한다. 시노부의 자살과 관련한 부분, 사또꼬가 호텔 수영장 물속에서 소년를 만나는 부분 등 책 표지에 버금가는 환상적인 장치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자신의 딸 아이를 이용해 돈벌이를 서슴치 않는 사또꼬의 아버지, 그리고 사또꼬를 이용해 자신의 명성 쌓기에 혈안이 되어있는 수영 코치 야나기다. 수영 관련한 행사에는 언제나 빠짐이 없어야 하고, 사또꼬를 이용해 한 몫 잡으려는 어른들의 비열하고 치졸한 모습들이 눈에 보이듯 선명하게 그려진다. 사또꼬와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떠오르는 한 소녀가 있다. 일년전 펼쳐졌던 광저우 아시안 게임 수영종목에서 금메달을 따며 국민 여동생으로 등극한 정다래 선수가 바로 그렇다.

 

인형처럼 예쁘고 4차원적인 행동들로 더욱 인기를 끌었던 그녀의 당시나 최근의 모습들도 사또꼬의 모습과 어느 정도 닮아 있지 않았을까? 물론 그녀의 아버지나 주변 인물들은 이 소설속 등장인물들과 조금 다르다고는 해도 그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주변의 갑작스런 관심과 연예계를 비롯한 스포트 라이트는 사또꼬 그 이상이 아니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래도 최근 보여진 정다래 선수의 밝고 예쁜 모습을 보고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더불어 주부와 수영코치, 선수와 코치, 직장 상사와 여직원간의 불륜은 물론이고 아직 나이 어린 여학생들의 원조교제에 더해 그것을 미끼로 용돈 벌이를 하는 불편한 진실들이 <야회>속에 가득하다. 단순히 추리 스릴러 정도로 아카가와 지로의 이 작품을 말할 수 없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 사회의 단면들을 그려내면서도 정말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을 그런 불편한 진실들을 환타지적 장치들을 이용해 채색해가는 작가의 이 색다른 미스터리 스릴러는 그래서 특별해 보인다.

 

환타지라는 장치는 추리 미스터리 장르에서 간혹 독자들을 기운 빠지게 만들기도 한다. 어떻게 될까? 어떻게 된 것일까? 하며 잔뜩 기대했던 이야기들이 한순간 현실을 벗어나 환타지로 취급되어 황당함을 쥐어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작품도 어느정도 그런 환상적인 장면들로 당황스러움을 전해주기도 하지만 그동안 지켜본 우리 현실이 이미 상상을 초월한 환타지 그 이상임을 생각해 볼 때, 그저 조금 편하고 재밌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작품으로 인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사회파 환타지 추리 미스터리' 정도라면 이 작품을 설명할 수 있을까? 아카가와 지로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리 많지 않은 페이지에 담겨진 불편한 진실과 환타지가 곁들여진 추리 스릴러의 재미까지 색다른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 <야회>는 매혹적인 표지와 쉽고 재밌게 읽어내려가는 가독성이 좋은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11월의 마지막 이 작품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조금 가볍게 추리 스릴러를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 <야회>와의 만남을 권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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