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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 하이웨이 ㅣ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31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1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한참 찌는 더위가 기승을 부리더니 요즘은 매일 매일이 비요일이다. 거실에서 뒹굴뒹굴 할때면 어김없이 달려드는 우리 딸아이. 집에서 윗옷을 모두 벗고 지내는 나로서는 이녀석이 달려오는 것이 무섭?기만 하다. 달려들어서는 어김없이 내 젖꼭지를 꼬집는다. 한두번 관심을 갖는구나 했었는데... 요즘은 잡아 당기면서 아빠가 '아야아야~'하는 것이 꽤나 재밌는지 신난다고 자지러진다. 이런 나쁜 딸... ㅠ.ㅠ 어쨌든 이 하나만 보더라도 아이들의 집착은 굉장한듯하다. 어떤 장난감 하나에 빠져서 오로지 그것만 탐닉하다가도 금방 싫증을 내기도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집요하다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펭귄 하이웨이>의 주인공 아오야마도 우리 딸 아이와 비슷하다. 아니 그 또래의 여느 아이들이 그렇듯 집착과 집중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초등학교 4학년 야오야마는 공부도 열심히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꼬마 아이다. 매일 노트에 많은 것들을 기록하고 책도 많이 읽고, 무엇보다 알고 싶은 것이 참 많은 아이다. '다른 사람에게 지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만 어제의 나 자신에게 지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하루하루 세계에 대해 배워나가면 나는 어제보다 조금씩 훌륭해진다.'고 거창하게 말하는 녀석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내자신이 부끄러워질만큼 어른스럽기도한...
어쨌든 그런 아오야마에게 두가지 커다란 관심거리가 있다. 하나는 아오야마가 다니는 치과에 있는 예쁜 누나, 특히 누나의 가슴에 대한 관심이고 다른 하나는 누나가 부탁한 '펭귄 하이웨이'이다. 근처에 바다도 없는 아오야마의 마을에 펭귄들이 떼지어 나타나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다가도 갑자기 사라지기가 일쑤. 그리고 펭귄이 탄생하는 순간!을 목격하게된 아오야마. 우치다와 하마모토와 함께 이 기이한 현상을 풀어가기 위해 종횡무진 연구, 활약하는 아오야마. 미모의 치과누나와 가슴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펭귄 하이웨이... 어린아이의 시선이지만 생각만큼은 어른인 나를 넘어서는 이 기발한 꼬마의 이야기가 달콤하다.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작가 아서 클라크는 SF는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다루는데 우리 대부분은 그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판타지란 일어날 수 없는 일을 다루지만 우리는 종종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바란다고 설명하며 SF와 판타지를 구분했다.' - 역자 후기 중에서 -
콜라캔이 펭귄으로 변하고, 체스판에서 박쥐가, 우산에서 망고가 열기도 하고, 치과 누나와 펭귄 사이의 기이한 관계 ...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가 서서히 무너지면서 모리미 토미히코 특유의 유쾌한 판타지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역자는 후기를 통해 SF와 판타지에 대한 구분을 말한다. 그러면서 이 작품 <펭귄 하이웨이>는 이 둘을 아우르는 그런 작품이라고 말한다. 그 이유중 하나는 주인공이 바로 어떤 편견도 갖지 않은 어린 아이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달고 있다. 모든것이 새롭게 느껴지고 신기하게 받아들여지는 순수한 소년의 성장 판타지가 바로 <펭귄 하이웨이>인 것이다.

소설이 아닌 만화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를 통해 '모리미 토미히코'를 처음 만났다. 청춘 판타지 로맨스라는 장르로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이 작품은 캐릭터들이 가진 색다른 매력을 만화 주인공들의 표정과 행동을 통해 시각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 소설보다 더 좋았던 기억이 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유정천 가족'을 통해 판타지라는 장르를 통해 이런 감동도 전해줄 수 있구나 하는 느낌을 간직하기도 했다. 그렇게 몇 안되는 작품들이지만 '모리미 토미히코'라는 이름을 특별한 작가로 기억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리고 <펭귄 하이웨이>를 통해 그만의 매력을 다시한번 확인하게 된다.
순수함이 있어야 가능한 상상들, 과학적 지식이 뒷바침 되어야 가능한 전개들을 바라보면서 작가가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고 작품에 열정을 쏟아 부었는지 깨닫게 된다. 그렇게 억지로 만들어지지 않는 순수하고 풍부한 상상의 세계를 가진 특별한 그 만의 세계에 매혹되고 만다. 사내 아이들이라면 어린 시절 누구나 가졌을만한 가슴에 대한 집착과 상상, 외설?스럽지 않으면서 유쾌하고 순수하게 그려내는 그 이미지들이 왠지 어린 시절 나 자신의 모습으로 투영된다.
'아버지는 세상에는 해결하지 않는게 좋은 문제도 있다고 했어요. 내가 해결하려고 하는 문제가 그런 거라면 나는 상처를 입게 될 거라고.'
치과 누나에 대한 짝사랑, 어른이 되어가면서 깨닫게 되는 진실들, 성장하면서 겪게되는 수많은 고통들... 이 작품은 조금은 조숙해보이지만 아직도 여전히 어리기만한 아오야마 모습을 통해 어린 청춘들의 성장을 그려내는 작품이다. 모리미 토미히코 특유의 발랄하고 유쾌한 유머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어 그가 만들어내는 독특한 상상의 세계와 더불어 즐거운 상황과 대화들이 즐거움을 더해준다. 세상에서 해결하지 않는게 좋은 문제들... 아오야마는 그렇게 조금씩 성장해간다.
아빠라는 이름을 가진 이들이라면 누구나 하는 걱정이겠지만, 딸아이 '이슬'이가 조금씩 커갈때마다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아빠로서 어떤 모습들을 보여주어야 할까 고민이된다. 지금은 아빠의 젖꼭지?에 집착하지만 또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궁금하기도 하다. 아오야마처럼 세상 모든것이 궁금해질때 아빠로써 어떻게 말해주고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할까? 현실이 아닌 상상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이 세상에서 아빠는 어떤 이야기들을 들려주어야 할까? 유쾌하고 즐거운 청춘 판타지 소설을 통해 이런 작은 고민을 해보게된다. <펭귄 하이웨이>는 이전의 그의 작품들이 그랬듯 만화로 만나도 참 즐거운 작품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유머와 감동, 모리미 토미히코의 즐거운 상상이 있어 언제나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