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없는 환상곡
오쿠이즈미 히카루 지음, 김선영 옮김 / 시공사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거대한 보름달빛 아래 피아노 위를 걷는 소년! 말 그대로 몽환적인 느낌의 표지가 인상적인 <손가락 없는 환상곡>이란 작품을 만난다. 오쿠이즈미 히카루라는 낯선 이름의 작가의 작품임에도 이 매혹적인 표지에 이끌려 선뜻 책을 집어들게 된다. 2011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5위를 기록하는 등 수많은 부문에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는 이 작품을 한 여름, 계속된 비요일의 한복판에 기대어 만난다. 그리고 또 하나 기억해야할 이름이 있다. '로베르트 슈만'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오쿠이즈미 히카루라는 작가도 그렇지만 사실 음악, 특히 클래식 분야에서 문외한인 나로서는 이 작품의 전반을 차지하는 음악가 슈만 또한 낯선 것도 사실이다. 낭만주의 음악의 대표적인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라는 슈만은 이 작품의 전반을 가로지르는 '슈만 환상곡 C장조 OP 17' 과 함께 피아노 협주곡 등으로 상당한 인기와 유명세를 타고 있다고 전해진다. 음악이 흐르는 미스터리! <손가락 없는 환상곡>에 조금더 깊이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익숙치 않은 클래식의 선율, '슈만 환상곡 C장조 OP 17'과 함께 한 페이지를 넘겨본다.

 

25세의 나, '사토하시 유'에게 날아온 한 통의 편지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독일에서 유학중이던 친구가 찾은 콘서트장에서 '나가미네 마사토'의 연주를 들었다는 내용이 담긴 편지. 오래전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이 절단되었던 마사토가 피아노를 연주했다 믿기 힘든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나, 사토하시 유는 마사토와 함께 하던 학창 시절을 추억하게 된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슈만이란 음악가가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장래가 촉망되던 피아니스트 신동 마사토, 음악부였던 유와 마사토의 첫만남과 베토벤의 작품을 계기로 나누던 대화들, 그리고 마사토의 슈만 예찬...

 

'고막의 진동만이 음악을 듣는 행위가 아니야. 음악을 마음으로 생각함으로써 우리는 음악을 들을 수 있어. 음악은 상상 속에서 가장 또렷하게 모습을 드러내지. 귀가 멀고 나서 베토벤은 음악을 더 잘 들을 수 있었어.' - P. 22 -

 

손가락을 다쳐 연주를 할 수 없게 된 슈만, 하지만 오히려 그렇게 된 이후 더욱 음악이 이해하고 완벽한 음악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는 슈만과 그의 신봉자 마사토. 사토하시는 그런 마사토를 우러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늦은 밤, 고등학교 졸업을 얼마 남기지 않고 학교를 찾은 사토하시는 마사토가 연주하는 슈만의 환상곡을 듣게되고 그와 동시에 한 여학생의 죽음과 맞닥드리게 된다. 살인사건의 비밀과 마사토, 잃어버린 마사토의 손가락과 애써 잊어왔던 이런 기억들의 봉인이 서서히 풀리는데...

 





 

<손가락 없는 환상곡>은 일본 출판사 고단샤의 창립 100주년 기념으로 진행된, 유명 작가들의 미발표 신작들을 출간하는 시리즈중 한 작품이라고 한다. 이름만으로도 포스가 느껴지는 쟁쟁한 작가들과 어깨를 견주는, 오히려 이 작품이 가장 성공한 작품이라고 하니 무척이나 기대되고 표지와 제목에서 느껴지는 포스 또한 그 기대치를 상회하기에 충분해보인다. 재즈 뮤지션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는 작가 오쿠이즈미 히카루의 이 작품은 슈만에 대한 오마주라고 한다.

 

슈만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2010년에 출간되었다는 이 작품은 그래서인지... 슈만의 일대기에 미스터리라는 장르를 감미한 작품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작가는 미스터리라는 형식이 단순히 양념이나 장식아닌 이 작품을 끌어가는 전부라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아마도 그의 이야기에 공감 할 수 있는 독자들이 얼마나 될까 문득 궁금해지기까지 하다. 개인적으로 클래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이야기를 이끌어가기 위해 작가가 마련한 장치들을 읽는 동안 조금은 지루해지기까지 했던것도 사실이다.

 

나, 사토하시의 시점에서 슈만과 마사토 그리고 나의 이야기가 번갈아 진행되지만 역시 작품의 전반을 이루는 것은 역시 슈만이란 인물이다. 미스터리적인 요소들이 등장하지만 작가의 말과는 반대로 단지 장식이나 양념에 불과한 이유는 그것이 본격 미스터리가 담고 있어야 할 요소들과는 어울리지 않은 '뻔함', 혹은 '예상 가능함'에 있지 않을까. 슈만의 음악은 감미롭지만 그에 미칠만큼 감미롭지도, 강렬하지도 않은 아쉬움만이 상흔처럼 존재한다. 그리 길지 않으면서도 슈만에 대해, 결말을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한 작가의 진땀이 아쉽게도 너무나 뚜렷이 엿보인다.

 

음악에 대한 섬세한 묘사, 사실감 넘치는 표현들은 인정할만한 작품이다. '손가락'과 '슈만'으로 대표되는 이 작품이 미스터리라는 이름이 아니었다면 조금 편안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클래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이런 오해가 생겼을 수도? 있지 않을까? 다른 독자들에게는 또 어떤 모습으로 이 작품이 비춰지고 투영되었을지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개인적으로는 조금은 아쉬운, 아니면 기대에 대한 충족이 부족했던 작품이다. <손가락 없는 환상곡>은 본격 미스터리답게 조금더 치밀하거나 슈만이란 음악가를 조금더 편하고 즐겁게 만나는 시간이 되었거나 그 구분이 조금더 명확했으면 ... 약간의 아쉬운 마음이 드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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