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천무후
쑤퉁 지음, 김재영 옮김 / 비채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덕만!' 많은 이들이 이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사실 TV 드라마가 아니었다면 기억할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겠지만... 2009년 사랑을 받았던 드라마 '선덕여왕'의 어릴 적 이름이 바로 덕만이다. 신라 최초의 여왕이자 후일 삼국통일 이라는 대업의 초석들 다진 왕으로 평가받는 선덕여왕의 이름이 <측천무후>를 펼쳐든 지금 이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다. 중국 유일의 여성 황제, 하찮은 후궁에서 대륙을 호령하는 강철의 여인이 된 무측천의 일대기. 그녀와 그녀는 왠지 닮아 있는듯 보인다.

 

'만일 누군가가 정관 15년 궁녀 명부를 찾아낸다면, 궁정화가가 그린 재인 무조의 초상화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넓은 이마에 각진 턱, 가느다란 눈썹 밑에 봉황의 그것처럼 작은 눈을 가진 한 소녀의 모습을 말이다. 궁에 갓 들어온 여느 소녀들과는 달리 웃음기 한 점 없는 그녀의 얼굴에는 절반의 오만이 나머지 절반의 우수를 가려주고 있으리라.' - P. 10 -

 

똑똑하고 약간 거만하며 호기심 많은 열네살 소녀 '미랑'. 측천무후의 어린 시절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당 태종의 후궁으로 황궁에 들어온 이 작은 소녀는 그다지 주목받는 외모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던듯 하다. 하지만 남들과는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비춰지던 그녀의 권력에 대한 야욕은 조금씩 조금씩 그 불씨를 지펴대고 있었다. 태종의 죽음으로 인해 그녀는 출가(出家)를 하게 되지만 고종과의 연으로 재입궁하기에 이른다. 이때쯤 그녀의 외모는 괄목성장을 한 것일까? ^^ 어찌됐건 그녀의 욕망은 그때부터 그렇게 서서히 꿈틀대기 시작한다. 그렇게 황후와 다른 후궁들을 제거하고 자신이 황후(皇后)가 된다.

 

앞서 드라마 선덕여왕을 언급하기도 했지만 사실, 무측천의 경우 최초라는 수식어가 닮아 있는 선덕여왕 보다 '미실'에 더 가까운 인물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처음 미실이 진정 꿈꾸고자 했던 것은 '왕후'가 되는 것이었지만, 선덕여왕의 말을 통해 불가능하게 생각됐던 '왕'이란 자리를 꿈꾸게 된다. 하지만 결국 그 꿈을 이루지 못한 비운의 여인 미실. 하지만 무측천은 미실이 그토록 원하던 그 꿈을 이루고야 만다. 고종의 후궁에서 황후로, 고종이 죽고 그녀는 섭정(攝政)하게 되고 그의 아들들이 줄줄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그녀의 권력에 대한 욕망은 그 끝을 알 수 없었으니...

 



중국 문단의 상징적인 존재라는 '쑤퉁'의 이 소설은 역사의 시간을 거슬러 중국 최초의 여황제 측천무후를 시간들속에 되살려 내고 있다. 궁녀에서 황제의 자리에까지 오른 그녀의 파란만장한 삶을 쫓다보면 어느새 역사의 시간 한편을 걷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된다. 쉽게 꿈꾸기도 어려운, 궁녀에서 황제로 이어지는 그녀의 삶속에서 그려지는 권력에 대한 욕망과 희노애락이 역사의 시간을 타고 섬세하게 그려진다. 자신의 아들과 딸까지 권력을 위해 무참히 버려야 했던 욕망의 화신, 무측천. 순수한 소녀에서 야심으로 가득찬 여인과 황제, 그리고 죽음을 앞에 두고 다시 돌아온 여인의 모습까지... 측천무후의 모습을 그려내는 작가의 손길이 유연하다.

 

'또 비가 오는구나. 열네 살 때, 내가 궁에 들어오던 날도 꼭 이렇게 비가 내렸지...' - P. 326

 

중국 최초의 여성 혁명가!

권력의 야욕앞에서 냉철하기 그지없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측천. 작가 쑤퉁은 이런 야심가이자 여성 혁명가인 측천무후의 일대기를 '권력'이라는 이름으로 화려한 문체속에 써내려간다. 권력을 꿈꾼 강철 여인의 모습속에 감춰진 여인으로서의 삶, 우리는 그녀의 삶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마지막 순간 열네 살 어린 소녀였던 미랑을 떠올리며 그녀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을까? 숨막힐듯한 역사의 시간 속에 놓여진 한 강철 여황제 무측천, 그녀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우리의 현실속에도 측천무후와 같은 이런 권력에 대한 야욕?들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현정부내에서도 노란 완장?을 찬 장관들의 끝을 모르는 야욕이 바로 그것이다. 한창 개각이 단행되고 있지만 과거의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고 기대해도 좋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이들에게 고문과 죽음을 선사했던 측천무후, 현실속 우리의 권력자들의 모습에서 측천무후의 모습이 오버랩되는건 나 혼자 뿐일까. '권력'이 얼마나 잔인하고 헤어나올 수 없는 수렁인지 그녀를 통해서, 아니 우리 현실을 통해서 다시한번 느끼게 된다.

 

측천무후! 그녀의 일대기속에서 나타나는 주요 키워드는 권력, 욕망, 고독 등 조금은 어둡고 부정적인 모습들이 대부분이지만 단순히 그녀의 삶을 그런 단어들로 마무리 할 수는 없을것이다. 측천무후가 통치하던 시기를 사람들은 당태종이 통치하던 '정관(貞觀)의 치(治)'에 버금간다고 하여 '무주(武周)의 치(治)'라 불린다고 한다. 그만큼 그녀기 이룩해놓은 업적이 대단함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소녀에서 여인으로 그리고 황제로 거듭난 그녀의 발걸음이 무거움속에 가볍다. 오랫만에 만난 중국역사 소설이 여름밤의 즐거움을 선사해준다. 미스터리 추리만큼 색다른 재미를 전해주는 역사의 시간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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