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되어버린 남자
알폰스 슈바이거르트 지음, 남문희 옮김, 무슨 그림 / 비채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10명중 9명은 하루 독서시간이 채 10분이 되지 않으며, 성인 4명중 한명은 일년 내내 책을 한권도 가까이 하지 않는다.' 먼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들의 책에 대한 현실이다. 오늘도 수없이 많은 책들이 우리 주변에서는 넘쳐난다. 소설에서 자기계발서, 역사, 경제, 인문, 고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책들이 우리를 유혹하고 있음에도 우리는 그 어느것의 손도 덥석 잡으려 들지 않는 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하물며 책읽기가 취미?라는 사람들도 있으니...

 

왜? 라는 물음이 조금은 어색하기까지 하다. 나 자신 조차도 책과 가까이 하기 시작한 시간이 그리 오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빠서, 시간이 나지 않아서, 책을 들면 잠이와! 볼만한게 없던데.... 핑계도 여러가지겠지만 책과 친구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도 마음속 '여유'를 잃어버렸기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다. 쉼없이 뛰어가는 사람들속에서 뒤쳐지지 않으려 달려가지만 도전과 목표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발걸음은 왠지 무겁기만하다. 그리고 그 속에서 여유란 찾을 길이 없어보인다. 책속에서 찾을 수 있는 색다른 도전과 삶의 지혜까지 던져 버릴만큼 우리 시대는 '빠름'과 '속도'란 병에 걸려버린 것일까?

 

반면 책에 미쳐버린 사람들도 있다. 애서가, 장서가, 책벌레, 책수집광, 독서광, 작가, 문필가, 편집자, 도서관 사서, 고서점가.... 사실 책에 미친 사람들이라지만 아직 그런 부류의 사람들과 만남을 갖아본 기억이 없기에 지극히 그들의 증상?이 어떤지 표현하기는 그렇다. <책이 되어버린 남자> 알폰스 슈바이거르트의 이 책에 대한 판타지는 자칭 혹은 타칭 책에 미쳐버린 사람들, 책과 사랑에 빠진 이들에게 바치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된다.

 

비블리 씨에게 있어서 독서란 하루도 빼놓을 수 없는 '습관'이 되었고, 나아가 하루라도 제때 충족시키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강렬한 '욕구'가 되었다.    - P. 67 -

 

<책이 되어버린 남자> 그의 이름은 '비블리' 씨이다. 벼룩시장에서 발생한 한 여인의 갑작스런 죽음, 그녀의 앞에는 <그 책>이라는 제목의 오래 되보이는 책 한권이 놓여있었다. 그녀는 '그 책' 앞에서 입술이 일그러지고 핏기가 사라지며 죽음을 맞이한다. 그 자리에서 '그 책'에 끌려 급기야 충동적으로 책을 훔치고야 마는 비블리씨! 애서가이면서 책에 미친 비블리씨, 어린시절부터 20년 넘는 세월 동안 책을 수집하고 함께해 온 그였지만 '그 책'을 만난후 갑자기 다른 책들에 대한 혐오감이 들기시작한다. 그리고 모든 책들을 고물장수에게 팔아버리게 된다. 그리고 매일밤 악몽에 시달리게 된다. 악몽속 주인공, 등장인물은 오로지 '그 책'뿐이었다.

 

비블리씨의 책에 대한 사랑은 자신이 갖고 싶은 책이라면 살인까지도 저지르는 것도 상상할 수 있었다. 책을 소유하겠다는 광적인 열정을 가진 비블리씨와 '그 책'과의 만남 이후, 계속되는 악몽으로 병원을 드나들던 그는 결국 어느날 입이 딱 벌어지고 귀를 찢을 듯한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그 책'이 되어버린다. 책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비블리의 운명은 수많은 사람들의 손에 옮겨다니게 된다.

 



 

자신의 집을 청소하던 청소부 여인과 그녀의 아이에게로, 다시 시립도서관에서 수집벽에 눈이멀어 가위를 집어드는 도서관장에게로, 출판사의 편집자, 출판을 거절당한 작가, 비평가, 책 수집광.... 등 책이 되어 책과 관련이 있는 혹은 책을 사랑한다는 그들의 손에서 손으로 옮겨진 '그 책', 비블리씨는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자신의 삶, 책의 생(生)을 느끼고 깨닫게 된다.

 

'책을 진정으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책꽂이에 고스란히 꽂아 두기만 하지 않고, 낮이고 밤이고 손에서 놓지 않아 손때가 묻고, 책갈피가 닳고, 메모가 깨알같이 뒤덮이게 만든다.' - P. 153 -

 

책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책의 납골당?을 소유한 부자 수집광의 책사랑일까, 비블리씨의 상상처럼 살인도 마다하지 않을 책에 대한 광적인 열정일까, 출판사 편집자인 저스틴 폴처-크라머 양의 베스트셀러작가와 무명작가를 편가르는 행동일까, 아니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서라면 양심의 가책도 없이 책에 가위를 집어드는 위선적인 도서관장의 모습일까. '그 책'이 되어버린 비블리씨의 책 여행에서 우리가 갖고 있던 책에 대한 사랑의 의미를 다시한번 되새겨보고 우리의 모습이 책속에 비친, 책을 사랑한다는 이들의 모습과 얼마나 닮아 있는지 거울을 들여다보듯 느껴보는 시간이 될것같다.

 

<책이 되어버린 남자>에서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는 사람이 책이 되어버렸다는 판타지적인 소재도 그렇지만 그 속에 담긴 일러스트도 한 몫하고 있다. 일러스트레이터로도 활동중인 독일 작가 알폰스 슈바이거르트의 '그 책'과 비블리의 여행은 독특한 느낌의 일러스트로 독자들과 책과의 거리를 좁혀주고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을 간직하고 있다. 덧붙여 비블리씨가 모아 두었다는 책에 관한 명언들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꼭 기억해두어도 좋을 느낌으로 다가온다. [P. 81~83]

 

'책은 가장 현명한 노인이요, 가장 용감한 대장부이다. 책은 가장 모성깊은 여인이요, 가장 사랑스럽고 귀여운 소녀이다. 일곱권의 책을 가진 사람은 더 이상 사람을 사귈 필요가 없다!' -뵈리스 프라이헤어 폰 뮌히하우젠 -

'좋은 책이란 우리에게 무엇을 주는 게 아니라, 무엇을 앗아가야 한다. 우리가 확신하는 어떤것을.' - 얀 그레스호프 -

'책장은 곧 그 사람이나 마찬가지이다. 나에게 당신이 가진 책들을 보여주면,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 줄 수 있다.' - 알프레드 마이스너 -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책일 경우, 첫눈에는 좋은 책이요 근사한 책일 때가 많다. 내가 책을 통해 배울 점을 찾는 경우, 그런 독자들이 찾아 주지를 않는다.' - 페터 빅셀 -

 

책을 사랑한 남자, 책에 미친 한 남자의 책에 대한 열정과 책이 되어 펼쳐진 여정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그 책'은 지금 어디에서 누군가의 손에, 아니 또 다시 누군가 그 책이 되어 사람들속을 헤메이고 있을까? 책에 대한 사랑, 책에 대한 열정이 가지는 올바르고 진정한 의미를 다시한번 되새기고, 책과 가까이 하지 않은 이들이라면 책속에 담긴 오래도록 기억되는 명언들을 통해 책과 가까이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이 책'을 내려놓는다. 단순히 책수집광이 아닌, 반대로 책을 증오하는 사람이 아닌 책을 진정으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더욱 많아지길 바래본다. 그리고 책과 가까이 할 '여유'가 들어설 작은 공간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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