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국굴기 강대국의 조건 - 일본 - 21세기 강대국을 지향하는 한국인의 교양서
CCTV 다큐멘터리 대국굴기 제작진 엮음 / 안그라픽스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37평방 킬로미터의 작은 섬나라, 일본!!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라는 수식어가 이 나라 앞에 항상

붙는다. 약 150년전 구로후네(黑船)의 위협에 두려워하던 일본이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 하는 강대국

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이유와 세계 역사적 흐름속에서 그들이 주도한 힘의 원천은 어떤 것이었는지

이 책 대국굴기...는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일본이 걸어온 근현대사를 살펴보자.

1853년 막부시대, 페리제독이 이끄는 미국의 함대가 지금의 도쿄만을 통해 입항한다. 아편전쟁에서

중국의 패전을 듣게된 일본은 이전까지의 중국중심 세계관의 변화를 인식하고 개항을 하게된다.

개항은 근대 일본의 출발점이자 전환점이 된다. 불평등한 조약체결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개항을 통해

선진기술을 적극 도입하고 기술의 일본화에 노력한다. 대형선박건조기술, 천문측량기술, 소학교

의무교육 실시, 대학 설립, 농업생산장려, 군제개혁, 서양식 대포도입 등 적극적으로 개화 한다.

1868년 메이지유신으로 막부시대는 막을 내리고 천황의 시대가 도래한다. 100여명이 넘는 

구미사절단을 파견해서 각국과 우호를 도모하고 각종 제도 및 법률, 경제, 교육 등 일본에 적합한지를

시찰하고 보고토록한다. 

1870년 이 보고서를 토대로 군제를 개혁하게 되는데 11년에 걸쳐 일본 군국주의 침략의 주역인 '황군' 

을 육성한다. 1880년대 관영기업을 민영기업화 함으로써 산업을 재편한다. 서구 열강보다 늦게 산업화

를 실시한 일본은 선진기술을 적극 도입하고 더불어 전통기술을 효과적으로 응용하여 선진국들을

바짝 추격하게 된다. 영국에서 방직기를 도입하고, 프랑스/독일/미국 등에서 갖가지 제도와 방식을

도입하고 많은 전문가와 기술자를 초빙한다. 과학기술과 문화수준 향상을 위해서 교육 투자를 강화

하는것이 자원빈국 일본이 취할 길임을 인식한것이다. 1904년까지 90%이상이 소학교에 진학하였고

도쿄대학 설립을 통해 국가 엘리트를 양성하였다. 교토대학과 각 지역대학들도 속속 설립되었다.

또한, 헌법제정에 노력했는데, 이는 열강들과 맺은 불평등 조약의 폐지하기위한 노력이었다.

헌번제정을 통해 현대국가를 이룩했다고 보여줌으로써 조약폐지를 위한 협상이 가능토록 하기 위함

인 것이다. 이 헌법 제정에 눈여겨 봐야 할 부분이 있다. 이 법은 천황만이 육해군의 통솔과 편제

그리고 병력결정의 권한을 갖도록해 일본이 이후 침략전쟁을 일으키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1885년 후쿠자와 유키치는 탈아론(脫亞論)을 발표했다. 이는 아시아를 넘어 유럽으로 진출하자는

의미로 침략전쟁을 일으키고 아시아 국가들을 멸시하는 근본적인 이유중의 하나가 된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승리로 민족주의적 광기에 사로잡힌 일본은 우리나라를 점령하게 된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의 승리를 통해 경제적인 이익과 아시아에 대한 열강의 간섭이 줄어든 틈을

이용해 동북아에서 일본의 지위를 더욱 강화시키게 된다.

승승장구하던 일본은 1938년 소련과의 전투에서 패한후, 북진전략을 수정 대동아공영권을 기조로

'기본국책강요'를 발표한다. 서시베리아 동부, 몽골, 만주, 중국, 동남아각국과 인도 및 대양주를

포함하는 대동아 공영권은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는 수순이 된다.

일본의 인도차이나반도 진출에 강하게 반발한 미국의 자국내 일본자산동결조치와 석유수출금지로

일본은 진주만을 기습하고 무서운 기세로 동남아와 인도까지 압박하기에 이른다.

천황중심의 집단 히스테리에 빠진 일본. 미국은 영국, 중국, 소련을 비롯한 26개국 연합국 선언을

통해 일본과 대응하여 오키나와를 점령하고 마침내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9일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을 투하하여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게 된다.

연합군총사령관 맥아더는 평화헌법 9조를 통해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방지를 위해 무력행사영구포기,

군전력보유금지, 국가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게된다

또한 침략전쟁에 참여했던 재벌을 해체하게 된다. 하지만 재벌의 해체는 유능한 중고위층 관리인재가

경제무대에 등장하게하는 계기를 만들어 전후 일본경제 성장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이후, 요시다시게루 내각이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전후 경제회복을 위한 조치들이 이루어진다.

1949년 산업합리화에 관한 결의를 통해서 4가지 원칙을 천명하고 석탄과 철강산업, 전력산업,

조선해운업, 자동차공업 등의 발전을 위해 노력한다.

당시 정세의 변화도 전후 일본경제 발전에 도움을 주게된다.

소련과 미국의 냉전시대의 돌입과 중국 공산혁명에 따른 미국의 대일 정책이 변화하게 된다.

전쟁승리에 대한 배상금을 포기하고, 오히려 일본에 경제원조를 실시하는 것이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통해 일본은 국제사회에 복귀하게되고 법률적으로 독립된 지위를

확보하게 되며 미국은 일본과 안보조약 체결을 통해 중국과 소련을 견제하려한다.

아시아에서 있었던 두차례전쟁(한국전쟁, 베트남전쟁)은 일본의 경제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일본은 1955년 자민당 통합으로 18년간 안정적인 고속성장을 이루게 되었고, 올림픽유치 등을 통해

경제 대국 일본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볼 때, 일본이 경제대국이 될수 있었던 조건은 무엇일까?

 

1.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개항하여 선진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기술을 일본화한 점

2. 의무교육확대, 대학설립 교육강화 등 교육의 중요성 인식

3. 산업합리화(ex...기술도입방식-1호기 수입, 2호기 국산') 및

   기업의 횡적 발전 촉진(대기업과 중소기업 동시 육성을 통해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 등

4. 경제관련 제도 보완, 지원 강화(자국산업발전을 위해 수입제한 강화 및 세심한 분석과 판단에

    의한 개방 실시, 1960년대 국민소득배증계획과 같은 경제구조개선, 혁신을 위한 노력 등)

5. 주변 정세의 정확한 파악과 적절한 이용(한국전쟁 등의 이용, 미국과의 대외 관계 개선 등)

 

이상이 일본이 경제대국이 될수 있었던 요인이다. 하지만 아직 일본이 간과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바로 역사에 대한 왜곡과 반성없는 그들의 자세이다.

이 책에서 강대국의 역량에는 하드웨어적인 것과 소프트웨어적인 부분을 모두 갖추어야 한다고

이야기 하고있다. 하드웨어적인 물질적역량은 충분하지만 다른나라로부터 존경 받지못하고 오히려

비난을 받는다면 그 나라는 강대국으로서 역량을 갖추지 못한것이다.

일본이 단순히 잘사는 나라로 남느냐, 다른 나라로부터 진정한 강대국으로 인정받는냐는

바로 일본 자신에 있다고 말할수 있다.

역사의 반성없이 아직도 많은 일본의 권력자들이 과거 전범들의 위패앞에서 절을 하고

군국주의 망령들은 아직도 전쟁을 외치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의 당사자인 독일과는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이는 일본!! 아시아 인들의 아픔을 하루 빨리 깨닫고 머리숙여 진심으로 사죄하는 날.

진정으로 강대국으로서 전세계인에게 존경받지 않을까 한다.

대국굴기. 강대국의 조건(일본)을 통해 잊고있었던 아픈 과거 역사와 미래 우리나라가 나아갈 길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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