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사판매 주식회사 행복한책읽기 SF 총서 2
로버트 셰클리 지음, 송경아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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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과학소설의 고전이라 칭해지는 책들을 읽을 때, 가끔은 시간의 갭을 어쩔 수 없이 느끼게 만드는 그런 것이 있다. 불사판매주식회사도 전체적으로 그런 어쩔 수 없는 세월을 느끼게 만드는 부분들이 있다. 어쩐지 촌스러운 주인공과 등장인물들, 이제는 클리셰가 되어버린 듯한 문구, 이제는 새로울 것도 없는 최첨단이라고 묘사되는 과학기기들, 그리고 읽기에 힘든 어색한 문체들. 하지만 이런 모든 외형적인 것들을 벗어던지고 그 책의 중심이 되는 이야기에 집중하다보면 작가의 시공을 초월한 상상력에 매료가 되는 것이다.

이 소설의 핵심은 제목에서 보여주듯 '不死'이다. 그의 상상력은 아마 이것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만일 과학이 고도로 발달해 영혼의 존재, 생명력의 기원을 발견하고 그것을 보존하는 방법을 알아냈다면, 그래서 비록 육체는 죽을 지언정 영혼은 살아있어 다시 그 영혼을 담을 그릇만 있다면, 영원히 죽지 않게될 수 있다면... 이 얼마나 기발난 상상력인가.

단지 인간의 수명을 늘이거나 뱀파이어처럼 영원히 죽지 않는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정수만이 보존되어 완전히 새로운 육체에 담겨져 새로운 인간으로 또 한번의 삶을 살 수 있게 된다면. 그렇다면, 미래의 사회는 어떻게 바뀌게 될까? 그 사회의 생명의 가치는 어떻게 될까? 그 사회에서 인간들은 무엇을 위해 살게될까?

작가는 이 모든 의문을, 테스트를 위해 과거에서 잡혀온 토마스 블레인의 행적을 쫒아가며 하나씩 풀어놓고 독자들에게 질문하고 있다. 단지 스토리를 쫒아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던져놓은 그 질문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궁극적으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하게 만든다. 좋은 Sci-Fi 소설이란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질문을 다양한 상상력을 이용해 과학적인 방법으로 내뱉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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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미안의 네딸들 1
신일숙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199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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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4를 다시 읽었습니다. 신일숙님의 다른 작품들도 제법 읽었지만, 역시 최고작은 A4인 듯 싶습니다(카르마라던가 1999년생도 좋았지만요!). 이 만화를 처음 봤을 당시 한참 사랑에 관심이 많을 사춘기여서인지 소위 말하는 운명의 상대라는 말에 친구들과 함께 완전히 매료되었죠. 심지어 제 친구는 대학을 졸업하고 제가 현재의 남편을 만났을 때 보낸 편지에서 조차 '네 운명의 상대는 어쩌구 저쩌구..'라는 말을 쓸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사랑에 목을 매는 와스디나 헌신적인 아스파샤, 권력형인 레 마누, 전사인 레 샤르휘나 모두 자신의 선택을 뚜렷하게 밀고 나간다는 면에서 다들 상당히 매력적인 캐릭터였습니다. 특히 주인공인 샤르휘나는 진취적이고 그러면서도 따뜻한 여전사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었었죠. 에일레스와의 관계 역시 일방적이거나 끌려다니는 모습 없이 두 사람이 똑바로 서서 대등하게 바라보는 모습에 더욱 매료되었다고나 할까요.

작가는 모계중심의 아르미안이라는 가상세계를 내세워 부계중심의 사회를 비추는 거울로써 이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어린 나이에 스스로의 힘으로 무언가를 하기에는 버거운 시절, 남성 중심으로 이루어진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에서, 여성이 왕이며 여성에 의해 모든 것이 지배되고 결정되어지는 사회를 보는 것으로 수동적이나마 대리만족을 할 수 있기도 했구요.

아마 제 나이 또래의 많은 사람들은 A4의 영향을 톡톡히 받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비록 좀 오래된 만화로 초반부의 그림체에 익숙치 않을 수 있지만, 아마 서너권만 읽어도 푸욱 빠져들게 될 것입니다. 강력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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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스(Rapaces) 2
이승재 옮김, 마리니 그림, 뒤포 글 / 비앤비(B&B)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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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라는 장르에 걸맞게 위험하면서도 매혹적인 뱀파이어와 강인하고 아름다운 여형사의 모습을 그림으로나 글로나 아주 잘 묘사했다. 유럽 예술만화라는 장르로 소개되었던 다른 만화들도 보았지만 라파스 만큼 마음을 잡아끄는 것은 없었다. 우리나라나 일본 만화체의 그림에 익숙한 우리로썬 유럽만화가 주는 리얼함이 처음엔 부담감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어느정도 익숙해지면 완전히 다른 문화 감각에서 오는 색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게다가 라파스는 그동안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만화나 영화의 소재로 이용되어왔던 뱀파이어라는 존재를 다룸으로써 그 어둡고 유혹적인 매력에 빠지게 만든다. 잔혹한 비린내에 고개를 돌리면서도 핏빛 가득한 숙명적인 슬픔에 매혹되어 불나방처럼 조금씩 두려움을 숨기며 다가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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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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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감상 쓰기가 쉽지가 않았습니다. 무언가 제 안에서 감도는 기분이긴 한데, 그것들을 아우를만한 틀을 아직 못찾은 기분이에요. 그래서인지 여엉 형상화되서 잡히지가 않네요... 아마도 전 모모에게 깊이 공명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읽으면서도 굉장히 동떨어진 기분으로 다가가기는 커녕 마치 모모를 거둔 그 사람좋은 부부처럼 멀지감치 떨어져 그렇게 바라본 듯 싶어요. 모모가 살고 있는 그 세계가 제겐 너무나 낯설어 느끼기는 커녕 다가가기 조차 버겁다고나 할까요...

가까이 접근하기 두려운 기분이 들기도 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하고 감탄하기도 했지만 결국 모모에게 도달하지 못한 기분이에요. 아마도 그래서 무언가 이 책에 미안하고 빚지고 있는 느낌이 드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다 읽고나서 무언가 계속 남아 있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는 상태로 계속해서 신경이 쓰이게 만드는 그런 것 같기만 할 뿐이에요. 언제 한번 또 다시 읽어볼 생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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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왼손 그리폰 북스 3
어슐러 K. 르 귄 지음, 서정록 옮김 / 시공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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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슐러 르 귄의 매력은 그의 완벽하리 만큼 치밀한 상상력, 그리고 지루하리만큼 꼼꼼하고 차분하게 전개해가는 끈기있는 필력에 있지 않을까 싶다.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어둠의 왼손' 역시 한 세계에 들어오게 된 이방인이 그 세계를 알게되고, 그 세계에 속한 사람을 만나게 되고 그리고 서로의 소통을 통해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아마 그녀의 치밀한 상상력을 통해 탄생된 새로운 세계를 독자들에게 충분히 보여주기 위해 이런 구도를 선택했으리라 생각된다.

그래서, 처음 그의 작품을 읽게되면 초반의 은근한 지루함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읽다보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낸 그의 상상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자연환경, 삶의 형태, 언어, 정치, 역사, 심지어 신화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그가 만든 세계에 빠져들 수 밖에 없다.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그 글을 쓴 그녀나 책을 읽는 우리나 제정신이 아닌 것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게센의 정신을 이해하기 위해 겐리 아이가 모으는 게센의 신화들이다. 상징과 은유로 점철된 신화를 읽다보면 그 이야기가 말하는 모든 가능성과 의미에 마음을 빼앗기게 되고 깊이 빠져들게 된다. 혹시 이 책을 사서 읽기 시작하다 도저히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 중간 중간에 삽입된 이 게센의 신화에 먼저 집중해 볼 것을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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