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책임져, 알피
찰스 샤이어 감독, 쥬드 로 외 출연 / 파라마운트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보통 영화든 소설이든 어떤 창작작품에서든 바람둥이는 그닥 좋은 인물로 나오지 않는다. 철딱서니 없거나, 더럽게 이기적이거나, 혹은 너무나 치명적으로 매력적인 인물 정도라 할까.

하긴 써놓고 생각해보니, 돈 주앙처럼, 바람을 예술로 승화시켜버린 인물도 있긴 하다. 하지만 돈 주앙은 인간이라기 보다는 에로스의 현신, 혹은 사랑의 철학을 전파하는 뭐랄까 바람의 신적인 존재랄까... 내가 느낀 것은 그랬다.

알피.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영화다. 고저 새끈하고 섹쉬한 브리티쉬 악센트의 소유자, 에브리바디를 에브리보디로 발음하는 '주드 로'가 나온다기에, 눈보신이나 하려고 빌렸다.
근데!!! 아니 이게 웬 대박!?!
새끈한 주드님께서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 카메라 밖의 '나'에게 말을 걸어주시는 게 아닌가!!! (--> 솔직히 이 점만으로도... 아아아, 우리는 그의 바람행각에 동반자가 될 수 밖에 없다. 청명한 파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자신의 매력을 200% 발산하며 조근거리는 그에게 그저 고개를 주억거리는 것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남자가 여자에게 보는 것은 오로지 세 가지.
FBB
Face, Boob, Bob 라는 진실을 말해주고,
감색 구찌 양복에, 핑크색 셔츠, 그리고 까만 보스 타이를 맬 줄 알고,
뻔히 알면서도 기분좋게 속아줄 마음이 드는 말을 할 줄 알고,
무엇보다 반반한 얼굴에, 귀여운 미소와 가끔은 흔들리는 눈빛을 한
알피를 따라 그의 여자 사냥을 지켜보는 동안
당신은 꼼짝할 수 없는 그의 공범이 되고 마는 것이다.
당신이 여자든, 남자든.
(여자라면 그의 매력에 푸욱 빠져서, 남자라면 그의 작업 비밀을 알고자.)

이 영화의 매력이 이것 뿐이라면... 그래 재미있는 영화 한편,
바람둥이 여자 꼬시듯, 원 나잇 스탠드로 끝날 것이다.
그런데...
솔직한 몸과 마음으로, 원하는 것을 찾아, 쿨하게 자신을 소비하던 알피는
조금씩 변화를 겪는다.
원하든, 원치않든.
그리고 아주 재미있는 것은 그의 변화가,
그토록 여자 때문에 변화하는 것을 거부하고 저항하던 그가,
'여자들'로 인해 변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그렇다.
이 영화의 재미는 알피가 '여자들'로 인해 변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바로 '여자들' 말이다.
한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어 개과천선하게 되는 일반의 바람둥이 영화와 달리
알피는 자신이 소비하던 '여자들'로 인해 변화를 겪게 된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여자들을 상처주면서 고집했던 자아는
그 상처가 일방적이 아닌 상호적임을 보여주며 조금씩 조금씩 변화되어 간다.

안정적으로 계속해서 자신 옆에 있어줄 줄 알았던 여자가 이별을 선고하고
첫 눈에 반해서 자신도 모르게 그어놓은 선 넘어로 들어왔던,
혹시 운명의 상대가 아닐까 흔들렸던 여자에 대한 환상이 깨어지면서
그렇지않아도 영혼의 상처가 깊은 그녀에게 헤어짐을 말하고,
솔직한 몸과 마음의 열정을 좇아 순간의 사랑을 불태웠던 사랑으로 인해
가장 친한 친구와 그의 아내, 그리고 자신에게 마저 상처를 입히고,
좋은 대화 상대, 언제나 쿨하게 사랑을 속삭이던 능력있고 멋진
알피 말 대로 유일하게 방어를 풀고 있던 그녀에게
자신을 발견하고 그야 말로 크게 한방 얻어먹고....

그래서 뜨겁고 화려하게 FBB를 외치며
한여름 미녀들이 가득한 맨하탄의 거리에서 시작한 알피의 사랑은
겨울철 눈이 가득 쌓인 부둣가에서 삶은 무엇인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차분하게 끝난다.

즉,
바람둥이의 화려한 연애사로 시작한 이야기는...
결국 인생에서 우리는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에 관한 질문으로 끝난다.
물론 알피답게,
진부하거나, 교훈적이 아닌 여전한 허세와 허영은 부리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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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7-04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알피 보고싶었는데.. 님의 글을 보니깐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예전에 라틴아메리카 문학을 접하면서 돈주앙을 알게되었던 적이 있었지요.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돈주앙의 매력이 뭔지 잘 모르겠더군요 -_-; 그런데 그와는 달리 알피의 매력은 님의 글을 읽어보니 영화를 보면 아주 직접적으로 전달 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저도 알피의 매력에 빠져보고 싶습니다. ^-^ 아무리 대단한 바람둥이라고 하더라도 사랑과 인생을 자신의 뜻대로 멋대로 이끌어 갈 수는 없겠지요? 특히 마음에 드는 부분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여자들을 상처주면서 고집했던 자아가 그 상처가 일방적이 아닌 상호적임을 보여주며 조금씩 조금씩 변화되어 간다는 내용이네요. 어쩌면 저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많은 상처를 타인에게 주고 그 댓가로 더 큰 상처를 되돌려 받으면서 살아왔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