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 도착한 다음날 아침, 두사람은 일찌감치 조르지오 호텔에서 제공하는 아침식사를 마치고 거리로 나섰다. 

이날의 목적지는 우피치 미술관, 

우피치 미술관까지 걸어서 가는길에 두 사람은 산 로렌초 예배당(메디치 가문의 예배당)을 만났다.

메디치(Medici)가문은 이탈리아의 중부지방 피렌체공화국의 평범한 중산층 가문이었으나 은행업으로 상당한 부를 축적하면서 유명해졌다. 메디치 가문이 역사에 드러난 때는 1400년부터이며 이때부터 1748년까지 약 350년간 지속되었다.  

메디치 가문의 역사를 보면 피렌체공화국에서 공직을 맡아 수행했던 인물들이 배출되기는 하였으나 전통적으로는 상업을 통해 재력을 가진 평민가문이었다. 1378년 가문의 한사람인 살베스토로는 시의회에서 평민의 입장을 대변하는 강경한 연설을 하여 치옴피(Ciom pi:방직 노동자 길드)의 반란이 일어나도록 했다.  

메디치 가문에는 대중의 입장을 지지하는 전통이 이어졌으며 1400년 메디치 가문의 수장이었던 조반니 디 비치(Giovanni di Bicci, 1360∼1429)는 피렌체의 귀족들과 대립하여 평민들의 입장을 옹호하며 대중들의 지지를 받는 인물이 되었다. 이때부터 조반니를 중심으로 메디치 가문은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메디치가는 유럽 전역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하였고 교황청과 거래로 막대한 부를 쌓아갔다. 이를 기반으로 정계에도 진출하여 피렌체 공화국의 수반인 곤팔로니에레에 임명되어 활약하였다. 귀족에게 유리한 세금제도를 철폐하고 평민들에게 이익이 되도록 혁신하였고 상당한 돈을 공화국에 기부하여 귀족과 평민 양쪽의 지지를 받았다.  

문예부흥사업에도 자금을 쏟아부었다. 당시 세례당의 청동문을 제작을 두고 일어난 기베르티와 브루넬레스키의 경합이 이때 일어난 일이며 피렌체에서 문예부흥운동인 르네상스가 열리기 시작하였다. 
 

 

 

  

  

 


 

 

 

 

 

 

 

 

 

 

 

 

  

 

 

 

 

 

 

 

 

 

 

 

 

 

 

 

  

  

 

 

 

 

 

 

 

 

 

 

 

 

 

 

 

 

  

 

 

 

 메디치 예배당은 누구나 둘러볼 수는 있으나 내부촬영은 금지되어 있었다. 

가문 사람들의 소지품(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누군가의 손가락 마디에서부터 화려한 장신구 등... 수많은 볼거리로 가득했따. 

  

 

 

 

 

 

 

 

 

 

 

 

 

 

 

  

 

 

 

 

 

 

 

 

 

 

 

 

  

  

 

 

메디치 예배당을 나와 우피치 미술관으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 시장골목. 

수많은 가죽제품들이 즐비하다. 많은 관광객들이 들르는 곳인듯.

작은 장신구, 가방 벨트 등등... 

이곳에서 한 남자는 가죽으로 만들어진 멋진 안경집을 구입했다.  

목에 걸 수 있는 줄이 달려있어서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후로도 오랫동안, 여행이 끝난지 1년여가 되어가는 현재까지도  

그의 목에 여전히 걸려있다는... 

     

그 다음 경유지,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Santa Maria del Fiore 대성당   

 

  

 

 아르노 강의 북쪽, 피렌체 시의 중앙부에 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에서 지도적 구실을 한 피렌체에 어울리는 대성당의 실현을 대망하던 시의 결의에 따라 1296년 아르놀포 디 캄비오의 설로 착공되었다.  

공사 도중에 그가 죽자 조토에 이어 A.피사노가 공사를 인계받아, 그 동안 조토가 새로 계획하였던 정면 오른쪽의 대종탑을 거의 완성하였다.  

또한 그 뒤를 이어받은 프란체스코탈렌티는 1357년 이래 건물 규모의 확장을 추진하여 1421년경에는 폭 42 m의 삼랑식 회당부와 지름이 이와 맞먹는 광대한 8각 평면의 내진, 그리고 여기서 세 방향으로 내물린 제실을 완성하였다. 

  

 

 

 

 

 

 

 

 

 

 

 

  

 

 

 성당 내부

  

  

 

 

 

 

 

 

 

 

 

 

 

 

 

  

  

 

 

 

 

 

 

 

 

 

 

 

 

 

 

 

 

  

  

 

 

 

 

 

 

 

 

 

 

 

 

 

 

 

  

 

  

 

 

 

 

 

 

 

 

 

 

 

 

  

 

 

  

 

 

 

 

 

 

 

 

 

 

 

 

 

 

 

  

  

 

 

 

 

 

 

 

  

 

 

 

 

  

 

 

 

성당 앞 광장, 거리의 화가-즉석에서 그림을 그려주거나 자기가 그린 그림을 판매한다... 

   

  

 

 

 

 

 

 

 

 

 

 

 

 

 

 

 

  

 

  

 

 

 가던 길에 두 사람은 Casa di Dante(단테의 집) 발견!  

'신곡'의 저자 단테가 살던 집을 박물관으로 활용하는 듯.  

들어가 보지는 못하고 그냥 바깥만 구경하고 지나쳤다는...

  

 

  

 

 

 

 

 

 

 

 

 

 

 

 

 

 

 

 

 

  

 

 

 

 

 

 

 

 

 

 

 

 

 

 

  

 

   

 

 

 알리기에리 단테는 13세기 이탈리아의 시인. 예언자, 신앙인이며 

피렌체 출생으로, 박해를 가한 조국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전인류에게 영원불멸의 거작 《신곡 Divina Commedia》(1308∼1321)을 남겼고,  

이것으로 중세의 정신을 종합하여 문예부흥의 선구자가 되어 인류문화가 지향할 목표를 제시하였다  


 

  

 

 

 

 

 

 

 

 

 

 

 

 

 

 

 

 

   

 

 

 

 

 

 

 

 

 

 

 

  

 

 

 

이번 여행에서 둘러본 몇몇 이탈리아 도시들 대부분이 그렇지만  

피렌체 역시 광장과 유적의 도시다.  

가는 곳마다 무슨무슨 광장이 펼쳐지고 도시 전체는 늘 영화속에서 보아오던 유적들로 즐비하다.  

아무 골목이나 돌아다녀도 보이는 것마다 모두 오랜 시간의 역사를 품고 있다.  

우피치 가는 길에 두사람은 또다시 유적들로 가득한 광장에 들어섰다.  

  

 

 

 

 

 

 

 

 

 

 

 

 

 

 

  

 

 

 

 

 

 

 

 

 

 

 

 

 

 

 

   

 

 

  

 

 시뇨리아 광장 [Piazza della Signoria]

  

 

  

 

 

 

 

 

 

 

 

 

 

 

 

  

  

 



 

 

 

 

 

 

 

 

 

 

 

 

 

  

 

  

  

 

 시뇨리아 광장의 다비드 상. 

  

 

 

 

 

 

 

 

 

 

 

 

 

 

 

 

  

 

   

 

피렌체는 14~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중심지로 미켈란젤로, 지오토, 레오나르도 다 빈치 등 유명 예술가들의 걸작이 도시 곳곳에 남아 있다.  

이곳 피렌체 역사지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있는데 사방 1km 정도의 좁은 구역이지만 지역 전체가 박물관이라고 할 만큼 아름다운 문화유산으로 가득 차 있다. 곳곳에서 걸작품들을 보면 ‘꽃’의 도시(피렌체는 꽃이라는 의미이다)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다. 

피렌체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중심지로 예술과 문화의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것은 메디치 가문 덕분이었다. 금융업을 통해 축적한 부를 기반으로 피렌체에서 정치적 영향력까지 행사했던 메디치 가문은 문화와 예술의 후원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메디치 가문의 후원 덕분에 라파엘,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단테, 보티첼리 등 쟁쟁한 거장들이 피렌체에서 활동하며 많은 작품을 남겼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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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죽안경집 남자 2011-08-11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난 베네치아보다 피렌체가 좋더라구...

그나저나 '박하사탕'의 첫 장면에서 설경구가 외친 그 한마디 절규를 나는 이 블로그 볼 때마다 내지르고 싶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