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에 아베베라는 마라톤 선수가 있습니다. 그는 1960년 로마올림픽 때 맨발로 뛰어서 우승했습니다. 기적같은 일입니다. 그래서 전 세계가 인간승리라고 극찬했습니다. 4년후 도쿄올림픽 때는 운동화를 신고 뛰어서 또 우승했습니다. 그는 우승기념으로 자동차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자동차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는 중상을 당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달리는 모습을 못 보게 돼 아쉬워했습니다.

그런데 4년후,그는 런던 장애인올림픽에서 휠체어를 타고 달려 또 우승을 했습니다. 인간은 이렇게 위대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이렇게 위대하고 소중한 정신과 혼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무엇이든 하고자 하면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고 은혜를 주십니다.

새해에는 이렇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살아갑시다. 그렇게 살면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할 것입니다.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은 이렇게 아름답습니다.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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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꼬리를 붙잡기 위해 빙글빙글 도는 어린 강아지가 있었습니다. 강아지는 잡힐 듯이 잡히지 않는 자신의 꼬리를 뒤쫓으며 저것만 붙잡으면 뭔가 대단한 즐거움이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품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지켜보던 늙은 개는 강아지에게 이렇게 충고했습니다. “얘야,너는 행복이 꼬리에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것은 불행한 공전이다. 너는 꼬리를 잡기 위해 뛰지만 나는 내 할 일을 위해 뛴단다. 내가 마땅히 내 할 바를 좇아가면 꼬리는 저절로 따라오게 되어 있거든.”

자기 꼬리를 붙들기 위해 빙글빙글 돌고 있는 어린 강아지에게서 우리는 인간의 모습을 봅니다. 일반적으로 행복의 기준은 나입니다. 그런데 행복의 기준을 나로 잡아서는 결코 꼬리를 붙들 수 없는 어린 강아지처럼 아무리 나를 위해 살아도 진정한 행복의 실현이 불가능합니다. 인간은 보통 행복을 자신을 하나님처럼 신격화하면서 누리는 즐거움으로 착각하는데 진정한 행복은 창조 목적대로 돌아간 삶 속에서 누리는 영혼의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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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여기자인 마가렛 라이트 히긴스는 한국전쟁 때 종군기자로 참가해 보도 부문 퓰리처상을 받았습니다. 어느날 그녀는 영하 40도에 육박하는 강추위가 몰아치는 가운데 연합군과 중공군 사이의 전투를 취재하던 중 추위와 죽음의 공포에 지친 병사들과 함께 얼어붙은 통조림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옆에는 키가 후리후리하게 큰 한 병사가 극도로 지쳐보이는 표정으로 서 있었습니다. 마치 괴물같아 보이는 그 병사에게 그녀는 “만일 제가 당신에게 무엇이든지 해줄 수 있는 하나님이라면 제일 먼저 무엇을 요구하겠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병사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부동자세로 있다가 “저에게 내일을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이 병사는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포탄도 따뜻한 옷도 따뜻한 음식도 아닌,이 전쟁에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희망 즉,내일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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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년 동안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왔다. 23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비록 지금 멀리 떨어져 있지만,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고 지금이라도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리운 사람이 있다.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들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반대의 사람들도 있다. 왠만 해서는 다시 만나도 싶지 않은 사람이 있다. 불행하게도...

  분명 지금 내가 관계를 맺고 사는 사람들 가운데, 보고싶은 사람과 그리운 사람이 있듯이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과 좋지 못한 기억을 간직한 사람이 있다. 하지만 어떻게 나와 맞는 사람들 하고만 관계를 맺고 살 수 있을까? 때로는 내가 원하지 않아도 그런 관계를 강요 받을때가 있다.

  아직 내가 살아온 날 보다 살아 갈 날이 많기에 수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더 맺으면서 살아야 한다. 어떤 사람이 나와 관계를 맺고 살아 갈까? 새로운 사람을 사귄다는 것은 나에게 기대감을 주지만, 또한 조금의 두려움을 준다. 그 이유는 아마 사람을 잘 모르기  때문 일것이다.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마음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듯이 그만큼 사람은 알 수 없는 존재이다. 한사람에게 너무 마음을 주면 준 만큼 상처 받는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과 등돌림을 당했을때, 우리의 마음은 더 심한 아픔을 겪는다.이러한 배신은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고 의심하게 하고 새로운 사람과 관계 맺는 일을 힘들게 한다. 이런 아픔을 겪어 본 사람은 너무 많은 것을 주지 말라고 한다. 우리가 말하는 정이 아닐까? 그렇다고 해서 사람을 등지고 살 수는 없다. 우리는 혼자 살 수 없다.

 비록 나에게 상처를 주고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더라도 우리는 여러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야 한다. 나와는 다른 사람과도 관계를 맺으면 살아야 한다. 비록 나의 삶의 방식과 가치관이 다르다고 해도 그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 서로 상처를 주고 서로 아파하지만... 적당한 거리를 두고 그들과 함께 같은 공간과 시간안에서 지내야 한다. 다름을 인정하고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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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제한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영원히 살고 싶다고 해서 그렇게 살 수 없는 것 처럼 인간이라는 육체를 가진 우리에게는 늘 한계성을 가지고 살게된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의 삶 가운데 시간은 중요하다. 우리는 늘 현재를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어느듯 과거에 살고있다. 지금도 과거가 된다. 시간은 우리를 앞질러 가려고 한다.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한 어느시점에 시간은 멀리 우리를 앞서 달리고 있다. 고든의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성장"이라는 책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시간이 얼마나 귀한지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었다.

  우리가 공부를 하던 친구랑 이야기를 하던 시간은 늘 우리와 함께한다. 늘 함께 있기에 소중함을 깨달지 못하는 것일까? 너무 의미없는 것에 시간을 투자하는 나의 모습이 보인다. 시간을 어떻게 하면 잘 활용 할 수 있을까? 무엇에 시간을 투자 해야 하는가?

  고든은 우리의 비전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있을때 가능하다고 보았다. 시간을 가장 잘 사용한 사람은 바로 예수님이다. 그분은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명령, 사명을 분명히 알고 직시했다. 에수님의 행적을 보아라! 자신의 비전을 따라 행동하시고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는 무엇에 따라 행동하고 있는가? 또한 과연 있어야 하는 곳에 있는가? 혹시 자신에게 주어진 비전과는 다른 곳에서 시간을 허비하고 있지는 않는가? 자신의 비전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던 성경의 인물들은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있었다.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곳에서 그들의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과 함께 했다.

  이제 2주만 지나면 꿈 많았던 대학교 생활을 접고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 이제는 학생이 아니라 군인으로써 살아야 한다. 4년을 뒤돌아 보며... 조금 아쉬운 마음이 없지 않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비전을 가지고 열심히 달려 왔지만, 때로는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있지 못하고 다른 곳에세 방황했던 시간이 생각난다. 그렇게 흘러간 시간들이 아쉽다. 지금 후회한다고 해서 다시 그때로 시간을 돌리 수는 없다. 그러나 또한 지금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 사용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자신의 비전을 명확히 알고 지금 자신이 있어야 하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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