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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병 - 공감 중독 시대를 살아가는 방법
나가이 요스케 지음, 박재현 옮김 / 마인드빌딩 / 2022년 3월
평점 :
_ 분쟁이나 학살이라는 심각한 폭력이 벌어지는 곳에서도 공감은 제법 교묘하게 사용된다. (중략) 가장 흔한 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한 집단이 타자의 공격받았을 때 발생하는 피해 감정을 이용하는 것이다.(중략) 이렇듯 자신의 집단이 희생되었다는 사실을 교묘하게 사용하여 전투에 동원하는 일은 여러 분쟁지역에서 사용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p.45-46)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생각났다. 침공 전 푸틴 대통령은 TV 연설에서 "현재 우크라이나로부터의 지속적인 위협에 러시아가 안전함을 느끼며 발전하고 존재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전쟁이 진행중인 지금 푸틴의 지지율이 83%로 급등했으며, 러시아인 68%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찬성한다고 응답했다. 사실 그 이면에는 '전쟁', '침공'이라는 단어 대신, '특별 군사 작전'이라고 칭하며, 상대를 '나치 세력'으로 규정하고 있는 언론 통제 및 세뇌 효과가 있었다.
푸틴의 거짓말에 러시아인들이 세뇌되었다는 것도 놀랍지만, 그만큼 공감이 커다란 힘이 아닐까 싶다. '우리'라는 집단에 속한 개인의 공감능력은 그 어떠한 진실도 보이지 않을 만큼,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오늘날에도 증명되고 있으니 말이다.
_ '어떻게 사람들의 흥미나 관심을 끌 수 있을까' 하는 관점에서 보면 사회공헌 단체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문제 해결력보다 광고나 마케팅 능력일지 모른다. 실제로 어느 세계적인 사회공헌 NPO에서 일하는 유급 직원 절반 이상이 광고나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현실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무리 선한 행동이라도 사람들이 공감하는 총량에는 한계가 있어 어떻게든 더 많은 공감을 획득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p.51)
이 글을 읽으면서 박소연 작가님의 <재능의 불시착>이 떠올랐다. 단편소설 '가슴뛰는 일을 찾습니다'에서 주인공은 성공대신 가슴뛰는 업무를 하고 싶어서 복지단체에서 일을 시작했지만, 매일 투자금을 받아내기 위하여 고군분투하는 삶을 이야기한다. 누군가를 도와주는 반짝반짝한 일 이면에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내 실질적인 투자를 받아야하는 고됨이 주된 업무였던 것이다.
사실 공감이 비즈니스 상 가장 뛰어난 도구인 것은 분명하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수록 지갑은 쉽게 열리기 때문에, 오늘도 수많은 마케팅이 타인의 공감을 목적으로 한다. 심지어 사회공헌, 기부까지도.
_ 공감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성이 함께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가능성이 생긴다. (중략) 우리가 사회를 조금이라도 더 좋게 만들려면 훈훈한 마음이 공감의 범위를 뛰어넘어 권리의 범위에 이르러야 한다. (p.176)
저자는 분쟁지역에서 테러단에 있다가 투항해온 사람이나 체포된 사람들의 갱생을 지원하는 일을 한다. 테러리스트에게도 인권이 있기에, 그들을 이성적으로 이해하는 공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어쩌면 그가 말하는 공감은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하는 공감보다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피해자의 입장을 헤아리는 정동적 공감은 쉽지만, 가해자의 인권을 고려하는 이성적 상황판단에 따른 인지적 공감은 좀 더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생각해볼 필요는 있다.
이 책을 통해 수많은 공감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우리는 타인에게 공감하기도 하지만, 나와 너를 가르는 공감을 하기도 하며, 타인의 지갑을 열기 위한 공감 마케팅도 열심히 한다. 어쩌면 이미 공감이 넘치는 세상이다.
SNS상에서 나와 생각이나 취향이 비슷한 사람과의 공감은 쉽게 이루어지는 반면, 그 외의 사람들과는 쉽사리 공감할 수 없는 분열화된 모습도 우치다 다쓰루가 말하는 '공감 과잉의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그런 면에서 공감만으로 대응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이야기하는 작가의 시선은 요즘 시대에 꽤나 생각해볼만한 일이다.
*마인드빌딩으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