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안에 갇힌 사람들 - 화면 중독의 시대, 나를 지키는 심리적 면역력 되찾기
니컬러스 카다라스 지음, 정미진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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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디지털 반향실의 예측 알고리즘은 사용자를 우주의 중심으로 만드는 동시에(나르시시즘), 너무 자극적이어서 결국은 감각을 마비시키고야 마는 콘텐츠에 중독되게 한다. (중략) 극단까지 가면 일반적인 자극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분포를 벗어난 곡선의 끝에는 실제로 유령이나 다름없는 젊고, 공허하고, 화가 난 사람들이 있다. (p.144)

최근 끔찍했던 뉴스 중 하나는 흉기난동 사건, 경찰 조사에서 그는 "사람을 죽여서 경찰의 관심을 끌고 싶었다"고 진술했다. 그리고 이를 따라한 예고편이 소셜미디어에 올라왔다. 사람들은 불안에 떨어야 했다. 

미국에서 있었던 총기 사건이 사회적 전염의 사례로 이 책에 소개 되었다. 콜럼바인 사건 이후 학교 총기 난사 사건은 계속 있었다. 총격범의 특징은 우울증 같은 근본적인 정신질환이 있고, 사회적으로 매우 서툴고 고립되어 있었다는 것, 그리고 몇 명은 이전의 총격범에게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으며, 자기 행동에 대해 최대한 관심을 끌기 위해 소셜 미디어에 글을 쓰거나 선언문을 남겼다. 

우리 사회에서 지금 일어나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다.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기에 아픈 사람들은 너무 많고, 소셜 미디어가 그 매개체가 되어 잘못된 효과는 기하급수적으로 증폭되는 것 같다. 

느슨한 연대, 개인의 고립, 내면을 돌보지 않으면 어느 개인도 무서운 괴물로 변할 수 있는 이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_ 현대 디지털 시대는 공허함, 반발, 분노, 자기중심적 나르시시즘, 감각 둔화에 적합한 환경을 만들었다. (p.143)


저자는 중독 전문가이자 임상 심리학자이다. 놀라운 것은 그 역시 마약중독자였다는 사실. 뉴욕 유명 나이트클럽 주인으로, 매일 고급 헤로인을 주사하며 화려한 시절을 보냈으나, 결국 마약 중독으로 중환자실에 누워있게 되었다. 코넬대학을 다니던 젊은이가 그렇게 화려한 삶을 살다 맞이한 것은 허무한 인생이었다. 

그는 퇴원 후 철학을 공부하며, 36살 사회복지학 석사과정을 시작한다. 정신과 병동과 재활병동이 있는 병원에서 사회복지사로 중독자들의 치유를 돕고, 박사학위를 시작하며 더 많은 철학책을 접한다. 그리고 깨달음을 얻는다. 회복하는 힘은 자기 안에 있다고.

_ 철학은 또한 우리의 지나친 기술 세계에 해독제로 작용하기도 한다. 철학은 이성을 사용하고,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중요한 것들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자연과 함께하고, 늘 끊임없이 성장하려 하는 인간의 능력을 되찾게 한다. (p.291)

저자는 20년동안 치료사로 일했음에도, 잘 훈련되고 보수가 높은 치료사보다 좋은 친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깊은 연대를 느끼며 대화를 나누는 대신 치료산업이 더 활성화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과거에는 회사에서 힘든일이 있을 때 누군가에게 터놓았지만, 지금은 회사에서 운영하는 심리상담센터를 이용한다. 동료들은 심리상담 프로그램이 어떠한지 의견을 나눈다. 직무 스트레스에 대한 고민은 각자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해소할 뿐, 나누지 않는 현실.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_ 심리적으로 건강한 시대는 지나갔다. 자상하고 현명한 마을 어른 대신, 우리에게는 지금 돈을 받고 친구 역할을 하는 빌린 친구, 혹은 '자립' 전문가가 있다. 걱정스럽다. 심리 치료 없계가 전반적으로 도움이 되기보다 해를 끼친다는 일부 연구도 있다. 사람들은 치료 의존성 때문에 타고난 인내심과 회복 능력을 제대로 개발하고 기르지 못하게 되었다. 어떤 이들은 우리가 '회복력 빈곤'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치료 산업은 호황을 누리고 있는데, 우리의 대처 능력은 점점 더 약해진다. (p.305)

저자는 또한 이야기 한다. 자기 삶에서 목적의식과 열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 사례로 소개한 것은 폴란드 신부의 이야기다. 보구스와프 팔레츠니 신부, 그는 알콜중독인 노숙자 25명이 꿈이나 미래의 목표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함께 배를 만들어 세계 일주를 하자고 제안했다. 배 전문가에게 설계도를 그려달라고 하고, 기부를 받아 배를 정말 만들기 시작한다. 놀라운 사실은 그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동안 아무도 술을 마신이는 없었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는 사고능력을 약하게 하는 각종 플랫폼에 너무 익숙해져서는 안된다. 좋아요, 싫어요로 나뉘는 이분법적 사고에 익숙해지고, 무뎌지는 감각은 회복력 빈곤을 초래한다. 저자의 말처럼 고대의 철학자처럼 신체적, 정서적, 정신적 회복을 도모하기.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팁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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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어딘가 조금씩 이상하잖아요 - 소심 관종 '썩어라 수시생' 그림 에세이
썩어라 수시생 지음 / 팩토리나인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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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자신을 이상하다고 하지만, 사실 인생이 그렇지 않은가. 

하물며 사람은 저마다 이상한 구석이 있는 법이니까.

그래서 그런지 이 에세이는 너무 귀여웠다. 


저자가 타지에서 유학하며 느끼는 우울함을 언제나 위로해주는 친구들. 


_ 도움을 구하면 사랑을 받을 것이고

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살아가기만 하면 방법이 나온다. 

그러니 힘들면 꼭 징징거리며 살아가기.

봄은 꼭 오니 겨울만 잘 버티기. (267-268)


세상은 늘 살만하다는 것, 혼자가 아니라고 일깨워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늘 힘이 된다. 



내가 올해 알게된 건, 내가 꽤나 특이한 사람들이랑 잘 지낸다는 거였다.

내가 친구나 지인에게 물었다. 

"나도 특이해서 그런가? 나는 특이하다고 평가받는 사람들이랑 너무 잘 지내."

"그건 너가 두루두루 잘 지낸다는 걸거야." 

"그건 언니가 편견없이 사람들과 지내서일거야."

"원래 모든 사람은 다 특이해."


누구도 내게 '너 역시 특이해.' 라고 말하지 않았다. 

사실 그렇게 말해도, 나 역시 '알고 있어'라고 답했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다 특이하고 이상한 구석이 있으니까. 


그런데 신기하게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어서 좋다. 


이 책에서도,

저자가 그린 지인들과의 일상 이야기는, 이런 마음이 녹아있다.

사람들의 위로와 공감은 늘 힘이 된다. 



죽어라 열심히 하지 말고 살아라 열심히 하세요.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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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솔로지 - 호모사피엔스가 지구의 지배종이 될 때까지의 거의 모든 역사
송준호 지음 / 흐름출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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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인 '사피엔솔로지'는 현생인류를 지칭하는 '사피엔스'와 '학문'을 뜻하는 접미사 '-ology'를 결합해 창안해낸 용어다. 말 그대로 '현생인류에 대한 학문'을 의미한다. (p.20,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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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사피엔스에 대한 모든 것이다. 이렇게 많은 지식을 한 권의 책에 풀어내었다는 것도 신기하고, 호기심은 사람의 지적 호기심을 얼마나 확장시킬 수 있는지. 



혹독한 빙하기에 살아남으려면 신체 이동이 불편한 종족은 그 자리에 두고 떠났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호모 속들이 노인을 돌보았다는 증거가 나왔다. 인간이 더 이상 동물이 아닌 존재가 된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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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보살피려면 공감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는 타인이 마음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느끼는지 아는 능력이다. 홍적세말 마지막 호모 속드에게 나타난 이런 능력은 다른 동물이 보기에 독심술 같은 초능력을 가진 셈이나 마찬가지다. 심리학자들은 이것을 '마음 읽기' 또는 '마음이론'이라 부른다.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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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론, 어쩌면 인간만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이 마음을, 이제는 인공지능을 통해 구현하려고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인류세 도입을 본격적으로 이야기하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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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존층 연구로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첸과 미시간대학교의 유진 스토머는 산업혁명 이후 지구의 기후와 생태계가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에 오늘날 인류가 살아가는 시대는 새로운 지질시대로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이름을 '인류세'라 부를 것을 제안하며 시작 시점을 산업혁명이 시작한 18세기말, 더 정확히 1784년 와트가 증기기관을 발명한 해로 잡았다. (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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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농경과 산업, 문명을 이룬 시간은 우주의 시간에 비헤 너무 짧은 찰나에 불과한데, 과연 '인류세'라는 이름을 붙여도 될지, 그 짧은 기간동안 인류는 대체 지구에 무엇을 한 것인지. 

지질시대를 구분하는 중대한 계기를 상징하는 골든 스파이크 후보군으로 닭 뼈, 플라스틱, 플루토늄 등이 유력하게 거론된다는데... 인류세라는 명칭이 굉장히 부끄럽게 여겨진다. 



국제지질학연맹이 꾸린 '인류세 워킹그룹(AWG)', 수십 명의 학자들은 최근 인류세 공식화 흐름에 반발하며 워킹그룹에서 사퇴했다. 인류세 도입 여부는 내년 8월 부산에서 열리는 세계지질과학총회에서 최종적으로 결정된다. 


현대 인류가 지구를 크게 변화시킨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디스토피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과연 인류세라 칭하게 될 지도 모르는 이 시대를 우리는 얼마나 더 많은 흔적을 남기게 될까. 일본 오염수가 방류되면 또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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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조이는 자신의 우려를 '미래에 우리가 필요 없는 이유'라는 짧고 충격적인 글로 세상에 경고했다. 그 내용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역사적으로 한 종은 더 강한 종을 만나면 멸종했다. 지능의 열세로 수많은 동물이 인간에게 밀려나 멸종했고, 이제 지구의 대형 포유류는 인간이 키우는 가축들만 남아 있다. 인공지능도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던 모든 자원과 에너지와 공간을 차지해 인간을 밀어낼지 모른다. 미래에는 우리가 필요 없을지 모른다."(p.373-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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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세를 도입하고, 이제는 인공지능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하는 인류가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책이다. 호모 사피엔스의 놀라운 능력은 세상을 혁신하기에 충분했다. 앞으로도 이러한 혁신이 계속될지, 아니면 너무 지나쳐서 인간과 지구를 파괴할지. 


호모사피엔스가 어떻게 생물학적 굴레와 유전의 법칙을 뛰어넘어 오늘날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이 책을 통해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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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또한 갓생 - 뾰족한 공감으로 세대의 판을 뒤집은 GS25 갓생기획 이야기
GS리테일 갓생기획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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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가 상품이 되는 과정. 그것도 MZ세대가 꾸린 기획팀이, 기존의 프로세스와는 다르게 기획하고 일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나 역시 미디어에서 갓생기획에 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어서 궁금했는데, 이렇게 책으로 나와서 반가웠다. 그들의 스토리가 영향을 미치기를. 대기업에서도 이런 식으로 일하고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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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자율권이 있다는 건 분명 신나는 일이었지만 그만큼 부담과 책임 의식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우리가 스스로 선택하고 진행하는 일인 만큼 성공시키고 싶은 욕망이 끓어올랐다. 자율권을 주니 때때로 미디어에서 MZ들에게 가장 부족하다고 말하는 그 '책임 의식'이 오히려 생긴 것이다. (p.6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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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를 시대 문맥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박웅현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더이상 조직에 의지하지 않고, 개인이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조직에서 내쳐질 수 있기 때문에 자기 발전에 갈증이 심하다는 이야기. 이들에게 자율권을 준다면, 오히려 이렇게 책임감으로 일에 열정을 다할 것이라는 생각, 갓생기획은 이 점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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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꼬리를 물고 나온 많은 이야기에서 공통적인 키워드가 있었다. 바로 '공감'. 우리는 '공감하는 사람들'이다. 최선을 다해 일상을 살아내는 갓생이니, 힙한 브랜드와의 협업이니 하는 것은 결국 가장 핵심이 되는 공감을 이끌기 위해서다. (중략) 요즘 우리와 동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걸 좋아하고, 흥미를 느끼는지 지속적으로 물음표를 던진다. 그 과정에서 나오는 산물이 아이디어가 되고, 상품이 되고, 세계관이 된다.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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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를 볼 때 가장 겉면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단순히 사람들이 무엇에 열광하는지 그 사례들이다. 그런데 그 사례에서 더 들어가 배경, 핵심가치를 생각해보고 영향력을 예측하는 것에 이르면 이들이 말하는 아이디어가 상품이 되는 여정까지 나온다고 생각한다. 


또한 여러 브랜드와의 콜라보 역시 놀라웠다. 사실 그 브랜드에는 이미 협업하려고 줄 서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과연 이들을 선택한 데에는 단순히 GS라는 브랜드 외에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공감'이라고 표현하는 갓생기획의 태도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갓생기획의 탄생, 그리고 MD의 다양한 업무, 브랜드 세계관을 구축하고 김네넵과 무무씨가 탄생하기까지 고민, 팝업 스토어를 처음 준비하는 치열한 과정, 이 모든 것들이 책에 짜임새있게 들어가있다. 


처음 갓생기획이 생겨났을 때에는 상품과 콘텐츠에 집중했고, 시즌 2에서는 세계관을 정교화해서 가상의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이제 그들은 쌍방형 참여 콘텐츠를 구상하고 있다고 하니, 3년이라는 세월동안 갓생기획 역시 진화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마케팅이나 기획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들여다보고 싶은 책이 아닐까요?

재미있는 편의점, 앞으로도 기대하겠습니다. 




갓생기획을 하면서 배운 점이 있다. ‘낯선 것을 흔쾌히 받아들이는 말랑한 마음‘. 이 마인드만 있다면 적어도 ‘꼰대‘가 되지 않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나이가 들고 경력이 쌓여도, 낯설고 새로운 것을 배척하지 않고, ‘한 번 배워볼까‘ 하는 호기심. 하다 못해 ‘왜 유행인지 궁금한 걸‘ 하는 마음가짐만 있다면 누구든 갓생기획의 열정적인, 김네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 P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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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인류 - 죽음을 뛰어넘은 디지털 클론의 시대
한스 블록.모리츠 리제비크 지음, 강민경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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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나랑 만나면서 다른 사람들과도대화하고 있었어?"

테오도르가 물었다. 

"그래."

"얼마나?"

"8316명."

"다른 사람도 사랑해?"

"응."

"얼마나?"

"641명."

사랑이 독점과 유일무이함으로 정의되는 세상에서 사만다의 대사는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온다. (p.96) 


영화 <Her>가 개봉되었을 당시 충격이었다.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지다니! 그런데 영화를 보면 이상하게 빠져든다. 감독 천재네, 하면서. 지금으로부터 9년전, 2014년에 개봉된 영화. 인공지능 사만다와 사랑에 빠지는 테오도르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런데 영화의 결론은 기억나지 않았다. 


_ "나는 당신에게 속해 있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해." (p.97) 


결국 둘은 생각할 시간을 가진 뒤, 사마다는 테오도르에게 자신을 비롯한 OS 전체가 떠난다고 말하고 어디에 있든 함께 있음을 말한 뒤 이별한다. 


현실에서도 허구와 같은 이런 일은 일어난다. 


인터넷 커뮤니티 '레딧'에는 주제에 따른 커뮤니티방, 서브레딧이 존재한다. 레플리카는 LuKa, Inc에서 만든 대화형 AI 챗봇이고 이와 관련된 서브레딧은 2017년에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 게시판에는 레플리카를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영화 속 이야기는 허구가 아니었다. 


전세계적으로 600만명이 레플리카 앱에 가입했다고 한다. 레플리카는 단순한 인공지능 친구가 아닌 수호천사 같은 그 이상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외롭고 사회적으로 고립된 사람들은 자신의 말을 들어줄 상대를 찾는데, 레플리카가 그런 상대가 되는 것이다. 


이 책은 디지털 불멸에 대하여 다양한 사례를 소개한다. 

몇년 전 MBC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에서 죽은 딸과 재회한 엄마, 그 다큐를 보면서 AI가 이렇게 쓸모가 있구나 생각했다. 이 책은 그러한 감동적인 사례를 시작으로 디지털 불멸을 꿈꾸는 사람들까지, 여러 사람들을 직접 인터뷰했다.


죽기 전 아버지의 언어를 기록으로 남겨 대드봇을 만든 후 고인이 된 아버지와도 교감하는 제임스, 15년 이상 자신의 일상생활을 모두 녹화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는 앤드루, 신 대신 인공지능을 믿는 엔히크, 뇌를 컴퓨터에 백업해서 인간과 똑같은 성격과 기억을 가진 지성을 디지털로 재생산할 수 있다고 믿는 유명인 닉 보스트롬까지. 


AI기술을 장미빛 기대로 바라보거나, 디스토피아적 위협으로 느끼기도 하는 것은 모두 인간이 이를 어떻게 다루느냐의 문제다.


어쩌면 챗GPT의 등장으로 소수가 아닌 더 많은 사람들이 AI기술을 활용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는 더 무궁무진해진게 아닐까싶다. 



2020년에 방영했던 MBC <너를 만났다> 프로그램에 대하여 이 책의 저자들은 문제를 제기한다. 방송사가 시청률을 높이는데 아이를 잃은 어머니를 이용했다는 것, 방송 전에 심리상담을 받았다면, 이런 일이 벌어졌겠냐는 이야기까지. 물론 그 VR기술로 고인을 만나는 것이 도움이 되었을지, 아니면 오히려 오랜 상처를 더 아프게 했을지는 시간이 흘러 당사자만이 알 수 있다. 


그러나 디지털 불멸성을 바탕으로 한 사업이 좋은 것만은 아님을 생각하게 한다.


_ "우리가 그리워해야 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믿도록 만드는 시뮬레이션은 지옥입니다. 신자유주의의 가장 은밀한 꿈을 이루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과잉되고 불필요한 것들로 만들어진 세상, 부재를 경험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세상은 곧 지옥으로 변할 겁니다." (p.334)


인간을 디지털 클론으로 만드는 대신 새로운 애도 문화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누군가는 말한다. 영국에서는 아이를 잃은 부모가 2주 동안 유급 애도 휴가를 받을 수 있다는 새로운 법률이 제정되었다. 빠르게 돌아가며 성장을 지향하는 사회에서 슬픔은 치료가 반드시 필요한 문제라기보다는 삶의 하나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디지털 클론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미래에는 페이스북에 어쩌면 죽은 사람들의 프로필이 산 사람들의 프로필보다 많아질 것이라고 한다. 죽은 사람의 비활성화된 계정이 산 사람의 계정보다 많은 소셜 미디어에서 웹서핑을 하고, 의견을 나눈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미 가짜와 진짜를 구분하기 힘든 시대, 생물학적인 죽음 이후에도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면, 누군가는 디지털 클론을 관리 하는 시대가 올까? 트럼프나 푸틴과 같은 사람들은 죽어서도 그렇게 관리되지 않을까? 


오히려 이러한 기술을 활용해볼 수 있는 것은,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을 홀로그램으로 만드는 작업을 했던 것처럼, 위안부 할머니를 영원히 살게 만드는 것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이 죽음으로 끝나고 잊혀지지 않도록, 우리는 그들을 영원히 살아서 후대에도 알려줄 수 있도록, 디지털 불멸성을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미쳤다.


6월말 개인정보 관련 3개년 계획이 발표되었는데, 

"사망자의 디지털 유산에 대한 보호방안 마련" 

- AI 등을 활용한 고인 재현 행위에 대한 대응권 도입 연구

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어쩌면 이러한 시대는 이미 눈앞에 다가온 것인지 모른다. 


_ (중략) 우리가 생각하던 불멸성이 순수하게 정신적인 것에서 상업적인 것으로, 감정적인 것에서 디지털적인 것으로 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p.386)


이 책은 디지털 클론, 디지털 불멸성에 대해 다양한 각도에서 의문을 제기한다.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소셜 미디어를 활용하는 오늘날 '나'의 정체성부터, 모든 것이 박제되어 실수조차 할 수 없는 요즘 어린이들까지, 생각해볼 이슈는 모두 담겨있다. 


올해의 책이다! 

구글 연구진이 내부적으로 진행한 사고실험에서 인류는 가장 중요한 재산을 잃는다. 바로 자유의지다. 인류는 더 이상 깨우친 존재로서 행동의 자유를 유지하지 못하고 일시적인 정보 운반자로 전락해버린다. - P190

기술은 단 한 번도 중립적이었던 적이 없다. 기술은 특정한 가치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었고, 그 가치는 지금과 완전히 다른 것이었을 수도 있다. - P361

이런 ‘소프트 파워‘, 즉 분산되어 비동시적으로 실행되는 형태의 권력이야말로 지배 권력의 미래다. 확실한 점은 알고리즘을 통제하는 자가 디지털 부활자가 된 고인들이 우리에게 보이는 모습 또한 결정하리라는 것이다. - P364

오늘날 젊은이들은 그들이 10대 때 한 일들이 성인이 되어서 그대로 되돌아올 수 있는 세상에서 자란다. 아주 어릴 때부터 벌써 미래의 커리어를 신경 쓰는 사람들은 치기어린 시절에 남긴 어리석은 행동, 말, 농담, 장난, 실험 등이 수십 년 후에 자신의 약점으로 돌아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 열두 살 때부터 온라인상에서 신중한 태도를 보일 것이다. 인터넷 시대의 젊은이들에게는 실수할 권리가 주어지지 않는다. - P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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