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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몸으로 살기 - 나를 다듬고 타자와 공명하는 어른의 글쓰기
김진해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9월
평점 :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은 불확정성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글쓰기도 불확정성과 예측 불허를 기꺼이 초대하는 게 아닐까요. 우리는 단일한 생각, 하나의 주제, 통일성 있는 구성을 찾기 위해, 다시 말해 하나의질서를 남기기 위해 애씁니다. 그게 신화가 아닐까요?
좋은 글은 이질적인 이야기들이 협력하고 공생하는 글이 아닐지. 그러니 일관성을 찾으려고 너무 애쓰지 맙시다. 내 속의 이질성을 환영하기. 글 속에 이질성을 기꺼이 초대하기. 마당에 번져나가는 풀꽃들을 보면서 든 생각입니다. (p.298-299)
최근 읽었던 책 <세계 끝의 버섯>이 이 책에 언급되어 있었다. 저자는 서로가 서로에게 오염되며 공생하는 세상을 이야기하면서 글쓰기 또한 잘 정리된 하나의 생각만 담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도 된다고 말한다.
이질적인 이야기들이 유기적으로 엮일 때 오히려 더 깊은 감동과 의미가 생겨나는 건 사실이다.
물론, 아무렇게나 흩어진 이야기가 아니라 서로 다른 주제를 촘촘히 엮어내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것이야말로 숙련된 글쓰기의 힘일 것이다.
쓰는 몸을 갖는다는 것.
글쓰기는 일하는 것과 같다. 일을 한다고 반드시 일을 잘하게 되는 것이 아니듯, 글을 쓴다고 해서 곧잘 쓰게 되는 것도 아니라고.
결국 필요한 것은 간절함과 절박함인 것 같다.
읽기와 쓰기의 차이도 바로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읽는 즐거움에 비해, 쓰는 즐거움을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대부분 글쓰기를 ‘고통’에 빗대어 이야기한다. 내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하는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그것을 실제 글로 쏟아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결국 글을 밀어붙이는 힘은 간절함과 절박함에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어떤 글이 좋은 글일까.
확고하고 단정한 글보다, 흔들리고 배회하며 길을 찾아 헤매는 글. 그런 글이 더 매력적이다. 삶의 두께가 느껴지는 글, 보편성보다 유일성을 담은 글. 생각이 글로 천천히 번역되어 나오는 글. 나의 경험을 어떻게 번역할 것인지, 생각과 글 사이의 틈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가 중요하다.
저자가 전하는 글쓰기 팁을 읽다 보면, 내가 평소 경험을 어떻게 전달해왔는지 돌아보게 된다. 단순한 감탄사는 어떤 경험도 납작하게 만들고, 구구절절한 설명은 듣는 이를 지치게 한다. 결국 중요한 건, 나의 생각과 경험을 적절히 압축해 언어로 번역하는 능력이다. 말이든 글이든 그건 연습으로만 다듬어진다.
글쓰기의 본질을 이보다 더 명확하게 전할 수 있을까.
책을 읽는 내내, 직접 저자의 강연으로 듣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이 책이 더 많은 이들에게 닿기를 바란다.
그러니 글을 ‘잘’ 쓸 수 있게 되는 건 그냥 오지 않습니다. 언제 올지 모르는 ‘글 잘 쓸 때’를 기다리며 계속 자신을 단련시켜야 합니다. 이유나 목적이나 마감 없이, 나는 글 쓰는 몸을 갖추어가고 있는가? 시간을 일정하게, 공간을 맞춤하게, 습관을 일관되게 글쓰기에 맞추고 있는지 물어보고 그러기 위해 매일 조금씩 나아가야 합니다. (p.317,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