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가의 밤
조수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삶은 돌탑을 쌓는 것과도 같았다. 살아갈 이유를 차곡차곡 쌓아 올린다 해도 아래 놓인 돌이 흔들리면 삶 전체가 흔들렸다. (p.108)

아빠를 어린 시절 잃고, 이어 엄마와 동생까지 바다에 뛰어든다. 가족을 모두 잃은 형우 역시 바다로 걸어 들어가지만, 그 순간 어린 시절의 ‘자신’을 마주하며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다시 붙잡는다.


소설을 읽다 보면 다양한 삶의 모양을 만나게 된다. 가족을 잃고 슬픔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형우의 모습은, 어쩌면 현실 어딘가에서도 존재할 누군가의 삶일 것이다. 소설을 통해 그를 이해하는 과정은 실제 삶에서 타인을 이해하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들 저마다의 이유로 마음 한켠에 남겨놓는 이야기가 있다. 입밖으로 꺼내지 않는, 그런 이야기. 고통이나 분노가 담긴 이야기일수록 더욱. 딱지가 생겨서 겨우 덮어진 그 부분을 다시 긁어서 떼어내면, 아물기까지 다시 시간이 필요하니까.


설령 우연히, 상대가 지나가듯 흘린 말을 통해 그 상처를 들었다 해도 우리는 쉽게 캐묻지 않는다. 다만, 이런 소설을 통해 짐작해 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소설이 사람을 이해하는 중요한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소설 안에서 누군가의 지친 마음을 조심스레 관찰하는 일만으로도 타인을 이해하는 마음의 거름이 된다.

삶에서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서는 일은 결코 혼자의 힘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형우에게 자살사별자 모임이 깊은 우울에서 그를 끌어올렸듯, 사람은 사회적 존재이기에 서로에게 상처를 주면서도 결국 타인을 통해 치유받기도 한다. 혼자서는 도달할 수 없었던 자리로 서로를 이끌어주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으며 우리 사회에도 이러한 연대가 더욱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현실이 각박해도, 마음을 털어놓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공간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이 역할만큼은 결국 사람이 할 수밖에 없다는 것. 끝내 우리는 사회적 동물의 본질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덧) 작가님 역시 프리다이버. 숨을 참고 어디까지 들어가시는지. 사람 마음을 깊게 살펴볼 줄 아시는 것 같다.

"물 밖에서 숨 쉬는 것보다 물속에서 숨 참는 게 더 쉬운 날도 있거든요. 좋아요, 깊이 들어가면." (p.54)

세상엔 자기가 경험한 세계가 전부인 줄 아는 사람이 있다. 반면 자기가 경험한 세계 밖에도 다양한 삶이 존재한다는 걸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 고난과 불행에 연이어 발목을 붙잡히는 기막힌 삶은 소설이나 영화뿐 아니라 현실에도 엄연히 존재한다. 자기가 경험한 세계가 전부인 줄 아는 사람들은 자기 잣대로 쉽게 확신하고 말하며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만, 세상에 다양한 삶이 존재한다는 걸 이해하는 사람이나 삶의 극단까지 가본 사람들은 말을 아낀다. 마음 하나도 신중히 쓴다. 가까이 있어도 안전한 사람들. 나는 이들이 안전한 사람들이라고 느꼈다. (p.70)

"이별에 슬픔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의문이나 고통, 분노 같은 건 조금도 없이." (p.72)

"누구나 저마다의 압력을 견디며 살아가는 거지. 누군가는 기다리고, 누군가는 술을 마시고, 누군가는 욕조에서 이불 빨래를 하고, 누군가는 심장이 터지도록 달리면서." (p.7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