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우리 집도 아니잖아
김의경 외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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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가 써낼 수 있는 건 정책 대안은 아니다. 시장 진단이나 분석조차 아니다. 전모를 보지 못하고 해답도 모르더라도, 정직하게 쓰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편안한 관념 밖에서 살아 있는 인간과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픽션이 현실에 발을 붙인다는 말을 나는 이렇게 이해하고 있다. (p.108, 장강명 작가노트)

부동산은 숫자로 말해질 때보다
사람의 삶으로 드러날 때 훨씬 잔인하다.
그리고 소설은 그 잔인함을 완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애써 외면해온 장면들을
정직하게 다시 보게 만든다.

픽션이 현실에 발을 붙인다는 말은
현실을 바꾸겠다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벌어지고 있는 일을 똑바로 응시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그 역할을, 끝까지 성실하게 해낸다.
5명의 작가가 참여한 부동산 앤솔로지.

길냥이 밥 주는 것을 눈치봐야 하는 전세살이의 서글픔,
부동산 전세사기로 삶이 무너지는 사람들,
사람들의 그림자까지 부동산으로 보이는 대출심사역,
부동산 때문에 독해지는 사람들.
소설이 아니라 라디오 사연 같다.

이 바닥에서는 돈이 스승이야. 아무도 믿지마. (p.233, 최유안 <베이트 볼>)


어느날 아랫집 이웃이 오픈채팅방을 알려줬다.
아파트 리모델링을 추진한다며 들어오라고.
그 방에서는 온갖 이야기가 난무했다.
단순히 그 방에 있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지는 느낌이랄까.

그러던 어느날, 누군가 말했다.
참여자의 신원확인이 필요하다고.
소유자인지 아닌지.
그리고 다시 방을 만들겠다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오픈채팅방은 사라졌다. 그들만의 리그는 어디선가 다시 시작되었을거다. 염원과 욕망, 분명 내 마음도 그 사이 어딘가에 있을텐데, 따라다니기에 난 이미 지쳐있었다.

온라인에서 사람들이 그렇게 외쳐대는 목소리는 오프라인 공간에서 뿜어져 나오는 소리와는 또 다른 무게를 가진다.
더 거칠고, 더 단순하며, 더 빠르게 사람을 흥분시킨다. 그리고 그 안에서는 언제나 ‘사는 사람’보다 ‘사는 것’만 남는다. 그래서 씁쓸했다.

소설 역시 씁쓸한건 마찬가지다.

부동산에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
소설을 읽다 보면 잊고 있던 사연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문득,‘아, 그때 샀어야 했는데’ 하고 외치게 될지도 모르겠다.

유일하게 가격이 오르지 않는 자원은 평범한 사람의 노동이다. 특출한 지적 능력이나 자본소득, 팬덤, 물려받은 자산이 없는 보통 사람은 아무리 부지런히 일해도 노동 소득만으로는 자기 집을 사거나 부자가 될 수 없는 세상이 왔다. 한국 부동산 시장이 유독 더 엉망진창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세계적인 현상인 듯하다. 인공지능 기술은 이 흐름을 가속화한다. 미국의 경제평론가 앨리스 래스먼은 청년 세대는 더 이상 집과 가족, 편안한 은퇴 생활을 꿈꿀 수 없다며 '환멸의 경제학Disillusionomics'이라는 말을 만들었다. (p.103, 장강명 작가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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