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 - 신경과의사 올리버 색스의 병상 일기
올리버 색스 지음, 한창호 옮김 / 소소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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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감상만. 유쾌하다. 그리고 신체영상이라는 것, 신경이라는 것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마신의 유희가 참고했다는 '화성의 인류학자'를 빌리려고 했더니 마침 대출중이라서 남아있는 것을 겨우 빌린 게 이거였다. 조금 아쉬웠지만 그래도 부상과 그 이후의 회복과정에 대해 구체적으로 유쾌하게, 그리고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고 있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소설 쓸 때 자료로 쓰기 좋은 듯. 나는 사실 크게 다쳐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거든. 뼈가 부러진 적도, 금간 적도, 심지어 약간 삔 적조차 없다. 뻣뻣한 몸이지만 근육과 힘줄, 뼈가 단단한 편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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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 아이야, 가라 1 밀리언셀러 클럽 46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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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지와 제나르 시리즈. 나는 이게 시리즈 중 두번째로 보는 거지만, 사실은 이게 네번째 작품, 그리고 비를 바라는 기도가 다섯번째 작품이란다. 하드보일드다운, 거칠고 암울한 세계가 농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비를 바라는 기도에서는 뻥뻥 터트리고 악당 아지트를 쳐부수고, 어쨌거나 정의가 승리할 가능성을 보여주긴 하지만(켄지가 정의라면 슬레이어즈의 '리나'도 정의겠지. ㅡ,ㅡ;;) 이번 편에서는 그렇지 않다. 아이는 행복한 삶을 빼앗기고 다시 황폐한 삶으로 돌아왔다. 뭐 다음 편에서는 다시 만났지만, 켄지와 제나르도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받고, 헤어졌다. 아, 이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게 아니었다고. 사회가 나쁜 거야 따위로 말할 문제가 아니었다고. 진정으로 아만다를 위한다면 헬렌을 돌봐줘야 하는 거라고. 헬렌으로부터 아만다를 빼앗을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헬렌과 아만다를 함께 품었어야 한다고. 아니면 최소한 보모를 두던가. 그 오빠 라이오넬 얘기다. 혹은 아만다만 데려간 누군가 얘기다. 빌어먹을. 이 소설에서 묘사하는 한도내에서라면 헬렌은 어린애나 다름없다. 정신적으로 심각하게 문제가 있는, 상담을 받고 정기적인 치료와 보호를 받아야만 하는 환자다. 어린애한테 어린애를 맡겨 놓고 뭘 바라지? 기껏 돈푼이나 던져준다고 어린애가 그걸로 뭘 하겠어. 헬렌은 어른이 아냐. 멍청하고 바보 같긴 하지만 그런 걸 어떻게 하겠어. 이미 그렇게 자라버렸는 걸 어떻게 하겠냐고. 그러니까 헬렌을 확 죽여버리거나 돈푼이나 쥐어주고 정신병원에 감금해버릴 생각이 아니라면 함께 살며 책임을 지는 수 밖에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환자를, 그냥 방치해두고는 왜 제대로 못하냐고 비난하는 건 뭐야. 그 아이가 저지른 뒷수습만 할 생각 말고, 그 아이가 그렇게 일을 저지를 때까지, 내버려두는 사람들이 오히려 비난받아 마땅한 게 아닐까? 왜 그냥 돌아나와. 뭔가 허전했다. 결국 헬렌은 어른이니까. 무시하는 것뿐이잖아. 어른이니까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하고 방치했던 거야. 사실 내 생각에 헬렌은 '어른'이 아닌데. 미국이라 그런가. 물론 힘들기야 하겠지. 그래도 이런 저런 꿍꿍이로 아이를 빼돌리려드는 것보다는 쉬울 것 같은데. 똥 오줌 치워줘야 하고 욕지꺼리를 일삼다가도 자기 한 짓을 새까맣게 잊어먹는 치매환자도 아니고. 라이오넬이야 평생 돌보기만 하다가 지쳐서 그랬다고 쳐. 그럼 다른 애들은 뭐냐. 아만다는 귀엽고 어리니까 돌봐주고 싶고, 헬렌은 다 커서 징그럽고 마약이나 해대니까 성가셔? 무슨 새끼 고양이 키우다 크면 징그럽다고 갖다버리는 것 같은 사고방식이냐! 아만다도 이대로 크면 헬렌처럼 된다고! 그걸 잊어버린 거야? 헬렌이 아만다처럼 컸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거잖아.
폭력적이거나 그런 건 아니니까. '모르는 거'니까 누가 옆에서 계속 지켜봐줘야 한다. 한마디로 아만다를 돌봐주고 싶다면, 범죄를 저질러서라도 아만다를 지켜주고 싶다면, 그 정성으로 헬렌도 돌봐줘. 왜 그걸 못하냐?
혼자서 자꾸 투덜거려본다. 사실 나도 그런 사람이 옆에 있다면 둘다 돌봐줄 자신 없다. 사실 난 어린애도 돌봐줄 자신 없다. 그래도 어린애를 돌볼만한 여유가 있고 마음이 있으면 헬렌도 돌봐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렇게 끝나면 안되는 건데...

추가. '가라 아이야 가라'라는 제목. 여기저기서 말이 많았는데, 이해도 되지만 안되기도 하는 듯. 이런 끔찍한 상황에서 아이보고 떠나가라고, 도망치라고 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들면서.. 사라져서 안타까운 그 느낌이 안 산 것도 같다. 슬픈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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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독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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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판타스틱 정기구독 사은품으로 온 책. 스기무라 사부로의 두번째 책이며 '탐정'이 되어 '이름 없는 독'에 중독된 사람들을 돕겠다고 은근슬쩍 다짐하는 듯한 부분에서 끝나 세번째 책을 기다리게 하는 소설이다.
(스포일러 주의!)




오싹한 느낌이 있었다. 드디어 스기무라 사부로의 그 행복한 가정에도 균열이, 작은 균열이 생겼다. 완벽한 이해자처럼 보였던 아내가 흔들리고 말았다. 아내가 멀게 느껴지는 그 때, 이 사람은 쓸쓸해지지 않았을까. '다른 세계'의 사람과 가정을 꾸리게 되어서, 몇년이 지난 지금도 몇번이고 위화감을 느끼면서, 어떻게 그 행복을 그렇게 유지할 수 있을까. 누군가에서도 느낀 거지만 이 인간은 평범한 인간이 아니다. 주인공을 할 만한, 엄청난 인간이다. 엄청 긍정적이괴 세심하고 아무튼 슈퍼 인간. 젠장. 나라도 질투했을 법한 대단한 인간. 다른 사람에게까지 독을 퍼트렸던 그 여자는, 어째서 그렇게 크나큰 독을 품게 되었던 걸까. 커플 파괴범. 옆의 다른 사람이 행복해지는 걸 가만히 보질 못하는 여자. 자신이 행복해지려 노력하는 게 아니라, 초조한 나머지 남을 파멸시켜 자기와 같은 위치로 끌어내리려는... '독'과 같은 여자. 너무 완벽주의자였던 게 아닐까. 완벽해질 수 없다면 완전히 파멸해주겠노라고, 다른 사람들도 끌어들여 함께 파멸의 길로 가겠노라 말하는 느낌이다. 온몸으로 파멸의 기운을 내뿜는 듯한 느낌이다. 사부로 씨보다는 나는 이 여자쪽이 더 이해가 될 정도.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거짓말로 자신을 꾸미고..(솔직히 면접 볼 때면 누구나 조금씩은 과장을 하지 않나! 뭐든 잘한다고.) 실수하면 초조해하고 초조해하다가 방어기제를 발동시켜 '뭐 낀 놈이 성내 듯' 더 버럭 화를 내거나, 변명을 해대고 또 후회하고... 다른 사람은 안 그러는데 왜 나만 그럴까 고민하고, 왜 나만 실수투성이에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을까 고민하다가 다른 사람들을 질투하게 된 적 없나? 나만 그런가? 그러니까, 사부로는 보통이 아니야. 오히려 내 생각에도 기타미씨 말대로 사부로는 특별난 사람이고 이 여자는 보통 사람이야. 그냥 좀더 극단으로 갔을 뿐이지. 그 전에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면 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면 좀 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뭐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니까.
집에 짓눌려, 집의 독에 짓눌려 마음을 갉아먹혀 결국 다른 사람에게 그 독을 전파하고만 청년. 진짜 집에 눌려본 나는 이 청년의 암울한 마음이 백번 이해되었다. 지금도 땅에 눌리고 있다. 팔리지 않는 땅. 불어가는 빚. 가뿐하게 털어버리고 어떻게든 새출발하고 싶은데 진창에 빠진 것처럼, 아무리해도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죽고 싶었을 거야. 죽이고 싶었을 거야. 어떻게 해서든 끊어내고 싶었을 거야. 그렇지만 그러지 못했어. 그래서 그냥 아무데나 놔뒀지. 사실 누구든 자기처럼 불행해져버렸으면 속이 시원하겠다는 그런 속셈도 있었다. 그렇지만 정작 정말로 사람이 죽자, 자기 삶만 더 불행해져버렸지. 응 알 것 같아.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지만, 슬픔도 나눠봤자 배가 될 뿐이야. 절대로 자기의 슬픔이 줄어드는 일은 없어. 오히려 더욱더 불어나 다른 사람에게까지 전파될 따름. 슬픔을 끊어내는 방식은 그런 게 아닌 게 틀림 없어. 슬픔을 끊어내는 건 뭔가 다른 힘이 필요해. 기쁨이 필요해. 사랑과 도움이 필요해. 그리고 용기도. 슬픔과 불행이라는 독에 푹 절어있다보면 해독제가 바로 옆에 있다는 걸 모르기 쉽다. 누군가, 그 독에 휩쓸리지 않을 누군가가 필요한 거야. 그 택배회사 사장님처럼.
자살하려고 독을 다른 사람에게 시험삼아 먹여보는 그런 사이코패스가 나온다. 너무 가뿐해 보여서 나도 그냥 아무렇게나 지나쳤다. 그런 건 어떻게 할 수 없는 대상이다. 손쓸 수 없다. 그건 그냥 사람 자체가 독이라서 자연재해와 같아서 어찌할 수 없다. 왜 내게만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울분은 나지만 그건 대상이 없다. 대상은 바위나 폭풍과 같아서 우리 감정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젠장. 이사카 고타로가 그리는 악당은 대체적으로 그렇다. 그러니까 바위를 부수고 폭풍을 막아서듯 이사카 고타로는 악을 부서버린다. 미야베 미유키는? 그냥 본다. 사랑으로 구할 수 있는 건 '자신이 잘못했다고 아는' 사람 뿐이다. 그 외의 사람들은 그냥 호러영화에 나오는 귀신이나 몬스터처럼 보는 것 같다. 그냥 기괴하고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고.

으음. 되새기니 더욱 우울해지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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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은 필요 없어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한희선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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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여사의 단편집. 앗싸 재밌구나. 어제 강원도에 다녀왔는데 가다가 오빠가 길을 잘못들어 헤매는 바람에 오며 가며 읽을 걸, 가는 동안 다 읽어버렸다. 단편들이라서 그런지 멀미하지 않아서 천만다행. 원래 차타고는 책을 못 읽는 편인데 재밌어서 그런지 아무렇지도 않더라. 단편집을 읽으면서 새삼 느낀 건데, 이 사람은 상당히 젊은 취향 같다. 철부지 사촌누나를 위해 발벗고 나서는 소년 탐정이라든가, 자기가 평생다닌 은행의 허점을 세상에 고발하기 위해 자기가 직접 사기극을 펼친다든가. 일종의 판타지였다. 나는 처음에 이유나 모방범, 화차 같은 것만 읽었고 이코나 브레이브 스토리를 봤을 때도 꽤 우울한 느낌이었기 때문에 스텝 파더 스텝의 그 유쾌하고 가벼운 분위기가 한순간 적응되지 않았는데, 대답은 필요없어를 보니, 그것도 미야베 미유키씨의 또 다른 일면이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울한 이야기도 있고 유쾌한 이야기도 있지만 어쩐지 전반적으로 시니컬하다. 그렇지만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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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 인류학자 - 뇌신경과의사가 만난 일곱 명의 기묘한 환자들
올리버 색스 지음, 이은선 옮김 / 바다출판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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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바라보는 세상에 대해 곰곰히 적어내려간 이래뵈도 '임상사례집'.

교통사고로 뇌를 다쳐 전색맹이 된 화가가 모든 것이 명도로만 이뤄진 세계에 적응해나가는 이야기, 그리고 어린 시절 잃었던 시력을 50년만에 되찾고, 촉각으로 구성된 순차적 세계에서 시각으로 구성된 동시적 세계로 뛰어들게 되었을 때 '보는 법'을 배워나가는 처절한 이야기, 그리고 투렛 증후군으로 강박적인 행동을 보이는 외과의사가 자신의 강박적 행위를 자아의 일부로 받아들인 이야기, 자폐증에 걸려 어릴 때부터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그림을 그리던 소년이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는 이야기, 그리고 어린 시절 황폐해져버린 고향 폰타나에 대한 기억으로 계속해서 마을의 꿈을 꾸고 현실에서조차 마을의 기억을 생생하게 환영처럼 재생해내 화폭에 담았던 화가가 자신의 강박적인 폰타나에 대한 회상을 예술로 승화시킨 이야기, 뇌종양으로 전두엽을 잃어 1970년대 이전 기억만 반복해서 기억하고 무기력하고 순종적인 사람이 된 어느 히피족, 화성에서 온 인류학자처럼, 인간 사회의 감정적 교류들을 분석하고 분류하여 익혀나가던 동물학자 이야기까지 우리와 다른 사람들, 우리와 다른 세계관, 다른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세심하게 그려져 있다. 그러한 사고, 행동을 하게된 원인에 대해 신경학적으로 이러쿵저러쿵 설명도 쉽게 해주고 환자들을 하나의 '인간'으로서 '자아'로서 명확하게 그려내고자 하는 노력이 엿보인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뇌리에 내용이 안남는다. 기억에 남은 것은 정상인이라고 생각하는 우리들도 사실은 이들처럼 각기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진 않을까 생각해보았던 것 뿐이다.
여기서 가장 인상 깊은 건 개념 기억과 지각 기억에 대한 이야기였다. 자폐아나 암기력이 뛰어난 아이들, 백치천재들, 소설과 화가들은 지각기억이 뛰어나다고 한다. 그리고 연구자나 학자는 개념 기억이 뛰어나단다. 지각기억은 현실 있는 그대로의 기억, 아마도 소설을 읽는다면 그 줄거리나 인물들간의 관계 같은 맥락적 요소보다는 몇페이지로 되어있고 몇페이지 몇째 줄에 어떤 문장이 쓰여 있는지 더 잘 기억하는 사람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아니면 크기가 얼마만하고 색은 무슨색이며 두께는 어떻고 하는 형태적 요소를 의미할 수도 있겠다. 개념 기억은 지각기억을 통해 그 책의 전반적인 느낌, 그리고 그 소설의 내용 맥락, 감상, 소설속 인물들의 관계, 감정변화 같은 2차적 요소, 분석되고 판단되고 재정리된 기억들을 의미하는 것 같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나는 지각기억은 정말 엉망이다. 소설을 다 읽고 바로 주인공 이름이 기억 안 나는 경우도 수두룩하고 방금 놓아둔 물건 자리도 잊어버리고 그림을 그릴 때도 방금 보고 돌아서서 그리려고 하면 또 잊어버린다. 전화번호, 물건의 갯수, 모양, 색깔, 이름 등 맥락이 없는 것은 이해하지 못한다.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를 통해 연상해나가는 방법이 아니고는 그냥 기계적으로 암기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한자를 못외우고 단순암기 시험에 약한 것도 그런 이유 중에 하나인 것 같다. 나는 지각 기억 대신 물건의 느낌, 인상, 성격, 특징같이 스스로 의미를 부여한 것들로 세상을 기억해나간다.
자폐증 환자는 지각기억을 통해 세계를 구축해나간다던데 거의 개념기억만 가지고 세계를 구축해가는 나는 정상인일까? 애초에 정상인이 뭘까. 나는 이 올리버 색스라는 사람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장애'인이라고-정상적이고 원활한 생활이 불가능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실제로는 스스로의 제대로된 정체성을 구축하고 있고(자폐증의 경우에는 정체성을 구축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들 하지만..) 나름의 원활한 삶의 방식과 세계관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앞에 선명하게 드러내 보였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란 말도 나는 정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냥 그사람은 그런 사람이다. 우리가 보는 것을 그들이 보지 못하듯, 우리는 그들이 보는 것을 보지 못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타자이다. 그러나 그것은 장애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타자임을 이야기한 것이다. 내눈에 보이는 세상과 네눈에 보이는 세상은 같지 않다. 나는 이것을 인정해야 인간과 사회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런 생각들을 한 것은 아마도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특이하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 '이기적'이라거나 '배려'가 없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 자폐증도 아닌데, 나는 내가 생각하기에도 다른 사람들이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다른 사람들의 감정들, 또 다른 사람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그런 반응들이나 감정들을 이해하지 못해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소설이나 편지, 일기 같은 텍스트를 읽고 그 맥락을 이해하는 능력은 확실히 뛰어난 편인 거 같은데 일상생활에서 다른 사람들의 감정이나 반응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맥락을 파악하지를 못하니 항상 특이한 애, 튀는 애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독서와 경험을 통해 매일매일 사람들의 감정과 반응을 관찰하고 이성적으로 추론해서 그에 상응한 행동을 하고자 '공부'해야하는 동물학자 이야기를 보면서 내 처지가 떠올랐다. 나도 그렇다. 다른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하는 행동들은 나는,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처럼, 분석하고 흉내내고 틀릴까 염려하면서 배워나간다. 내가 자폐증인가 생각해보면 그건 또 그렇지 않은 것 같고..(어릴 때 말을 늦게 떼었다고는 하지만 병원 갔을 때도 아무렇지 않았단다.) 그러니 내가 미처 배려하지 못하는 그런 행동들, 맥락에 안 맞게 튀어나오는 행동들을 변명할 수단도 없다. 고쳐라 고쳐라 하는데 왜 그러는지 이해하기도 힘들고 그래도 싫어하니까 고쳐보겠노라 아둥바둥해도 안 될 때가 될 때보다 더 많다. 그러면 말만 고치겠다고 하지 노력하지 않는다고 뭐라고 한다. 이것도 변명일 수도 있겠지만... 내 이런 기분을 바탕으로 생각해보면 자폐증을 겪는 사람들이 얼마나 사회 생활이 힘이 들고 스트레스가 클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가 얼마나 힘든지도.
나도 자폐증을 가진 사람, 투렛증후군 환자는 이해할 수 없다. 보통 사람들이 하는 행동, 친구나 엄마가 하는 행동도 그 맥락을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낯설게 여기는 맥락들이 있는 것처럼 개인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해 낯설게 여기는 맥락들이 조금씩은 존재하는 모양이다. 그러니 나의 '당연함'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이 책을 통해서 배운 것은 올리버 색스의 그런 자세였던 것 같다. 나의 잣대로 남을 재지 말 것. 나의 '당연함'과 너의 '당연함'은 다르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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