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독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월간 판타스틱 정기구독 사은품으로 온 책. 스기무라 사부로의 두번째 책이며 '탐정'이 되어 '이름 없는 독'에 중독된 사람들을 돕겠다고 은근슬쩍 다짐하는 듯한 부분에서 끝나 세번째 책을 기다리게 하는 소설이다.
(스포일러 주의!)




오싹한 느낌이 있었다. 드디어 스기무라 사부로의 그 행복한 가정에도 균열이, 작은 균열이 생겼다. 완벽한 이해자처럼 보였던 아내가 흔들리고 말았다. 아내가 멀게 느껴지는 그 때, 이 사람은 쓸쓸해지지 않았을까. '다른 세계'의 사람과 가정을 꾸리게 되어서, 몇년이 지난 지금도 몇번이고 위화감을 느끼면서, 어떻게 그 행복을 그렇게 유지할 수 있을까. 누군가에서도 느낀 거지만 이 인간은 평범한 인간이 아니다. 주인공을 할 만한, 엄청난 인간이다. 엄청 긍정적이괴 세심하고 아무튼 슈퍼 인간. 젠장. 나라도 질투했을 법한 대단한 인간. 다른 사람에게까지 독을 퍼트렸던 그 여자는, 어째서 그렇게 크나큰 독을 품게 되었던 걸까. 커플 파괴범. 옆의 다른 사람이 행복해지는 걸 가만히 보질 못하는 여자. 자신이 행복해지려 노력하는 게 아니라, 초조한 나머지 남을 파멸시켜 자기와 같은 위치로 끌어내리려는... '독'과 같은 여자. 너무 완벽주의자였던 게 아닐까. 완벽해질 수 없다면 완전히 파멸해주겠노라고, 다른 사람들도 끌어들여 함께 파멸의 길로 가겠노라 말하는 느낌이다. 온몸으로 파멸의 기운을 내뿜는 듯한 느낌이다. 사부로 씨보다는 나는 이 여자쪽이 더 이해가 될 정도.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거짓말로 자신을 꾸미고..(솔직히 면접 볼 때면 누구나 조금씩은 과장을 하지 않나! 뭐든 잘한다고.) 실수하면 초조해하고 초조해하다가 방어기제를 발동시켜 '뭐 낀 놈이 성내 듯' 더 버럭 화를 내거나, 변명을 해대고 또 후회하고... 다른 사람은 안 그러는데 왜 나만 그럴까 고민하고, 왜 나만 실수투성이에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을까 고민하다가 다른 사람들을 질투하게 된 적 없나? 나만 그런가? 그러니까, 사부로는 보통이 아니야. 오히려 내 생각에도 기타미씨 말대로 사부로는 특별난 사람이고 이 여자는 보통 사람이야. 그냥 좀더 극단으로 갔을 뿐이지. 그 전에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면 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면 좀 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뭐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니까.
집에 짓눌려, 집의 독에 짓눌려 마음을 갉아먹혀 결국 다른 사람에게 그 독을 전파하고만 청년. 진짜 집에 눌려본 나는 이 청년의 암울한 마음이 백번 이해되었다. 지금도 땅에 눌리고 있다. 팔리지 않는 땅. 불어가는 빚. 가뿐하게 털어버리고 어떻게든 새출발하고 싶은데 진창에 빠진 것처럼, 아무리해도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죽고 싶었을 거야. 죽이고 싶었을 거야. 어떻게 해서든 끊어내고 싶었을 거야. 그렇지만 그러지 못했어. 그래서 그냥 아무데나 놔뒀지. 사실 누구든 자기처럼 불행해져버렸으면 속이 시원하겠다는 그런 속셈도 있었다. 그렇지만 정작 정말로 사람이 죽자, 자기 삶만 더 불행해져버렸지. 응 알 것 같아.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지만, 슬픔도 나눠봤자 배가 될 뿐이야. 절대로 자기의 슬픔이 줄어드는 일은 없어. 오히려 더욱더 불어나 다른 사람에게까지 전파될 따름. 슬픔을 끊어내는 방식은 그런 게 아닌 게 틀림 없어. 슬픔을 끊어내는 건 뭔가 다른 힘이 필요해. 기쁨이 필요해. 사랑과 도움이 필요해. 그리고 용기도. 슬픔과 불행이라는 독에 푹 절어있다보면 해독제가 바로 옆에 있다는 걸 모르기 쉽다. 누군가, 그 독에 휩쓸리지 않을 누군가가 필요한 거야. 그 택배회사 사장님처럼.
자살하려고 독을 다른 사람에게 시험삼아 먹여보는 그런 사이코패스가 나온다. 너무 가뿐해 보여서 나도 그냥 아무렇게나 지나쳤다. 그런 건 어떻게 할 수 없는 대상이다. 손쓸 수 없다. 그건 그냥 사람 자체가 독이라서 자연재해와 같아서 어찌할 수 없다. 왜 내게만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울분은 나지만 그건 대상이 없다. 대상은 바위나 폭풍과 같아서 우리 감정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젠장. 이사카 고타로가 그리는 악당은 대체적으로 그렇다. 그러니까 바위를 부수고 폭풍을 막아서듯 이사카 고타로는 악을 부서버린다. 미야베 미유키는? 그냥 본다. 사랑으로 구할 수 있는 건 '자신이 잘못했다고 아는' 사람 뿐이다. 그 외의 사람들은 그냥 호러영화에 나오는 귀신이나 몬스터처럼 보는 것 같다. 그냥 기괴하고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고.

으음. 되새기니 더욱 우울해지는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