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체의 증언
사이먼 베케트 지음, 남명성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원제대로라면 The Chemistry of Death이니 죽음의 화학작용이랄까.사실 실제 CSI처럼 법의학을 통해 범인을 잡는다는 느낌은 아니다. 사체의 증언이라지만 사체가 그렇게 많은 증거를 남긴 것은 아니다. 그 밖의 다른 요소들을 종합해서 범인을 추리해냈을 뿐이다. 그것도 꽤 우연히. 그렇지만 여기서 법의인류학이 아무런 역할도 못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사체의 연령과 성별, 살해 수단 등 꽤 많은 것들이 나온다. 뭐 그것만으로는 택도 없이 부족하긴 했지만. 그 무엇보다 여기서는, 법의인류학을 통해 사람이 죽고 나서 겪게 되는 그 화학반응들을 적나라하게 설명하고 묘사하면서 사람이나 생명이 얼마나 신기한 것인지 드러내는 것 같다. 죽음에 대해 명쾌한 답이나 새로운 고민거릴 던져주진 않는다. 솔직히 헐리웃 스타일의 뻔한 해피엔딩도 별로란 느낌이다. 그치만 '죽음의 화학작용'이란 게 참 인상적이었다. 신비롭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범인이 불쌍하다. 진짜 불쌍하다. 그냥 말려든 거잖아. 그거.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정말 주변에서 누가 나서서 도와줬더라면, 뒤에서 불쌍하다고만 하지 말고 상처입힐 걸(혹은 입을 걸) 두려워하지 않고 나서서 감싸주었더라면 이런 불행은 안 생겼을 텐데. 잘못은 잘못이지만. 정말 나쁜 사람은 아닌 범인이 자살해서 사건이 종결되는 건... 왠지 잘못에서 도망치는 거 같아서 싫다. 그런 식으로 끝맺는 게 무지 많은데, 성의 없어 보인다. 하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듀본의 기도 - 아주 특별한 기다림을 만나다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아. 데뷔작이 이정도라니! 이사카 고타로는 정말 대단해! 뭐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지만 나는 이 사람을 참 좋아한다. 구질구질한 세상을 구질구질하다고 말하면서도 이렇게 유쾌하고 통쾌하게 그려낼 수 있는 사람은 정말 드물 거다. 이 책은 미스터리적 요소가 제법 풍부하다. 도대체 범인이 누굴까. 일이 어떻게 된 걸까. 그리고 도대체 어떤 식으로 결말을 볼 것인가. 밑에는 스포일러가 잔뜩이다.

허수아비가 말을 하며 미래를 보는 등, 대놓고 리얼리티를 파괴해대지만 어쨌거나 그것은 이 소설 속 세계에서도 상식 밖의 세상이다. 낙원처럼 보이는 그 상식 밖의 세상에서조차 사람들이 살아가는 건 죄다 똑같으니, 그것 참 안타깝기 그지 없지만, 그래도 희망은 남아 있다. 이 사람은 정말이지 진짜 '악'을 참 잘도 그려낸다. 마왕에서도 그렇고, 중력 삐에로에서도 그런데. 이 사람의 악은 진짜 '악'이다. 자신이 악한이라는 걸 알고, 세상의 상식도 모두다 잘 알면서, 그것들 인간이 인간으로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 만들어놓은 모든 가치관을 송두리채 짓밟으며, 남을 괴롭히며 그것을 낙으로 삼는다. 그것은 감화될 수 없는 거다. 그것은 사회가 만들어냈다느니 그런 게 아니다. 그냥 '악'이다. 이 사람은 이 세계에는 그런 것도 존재한다고, 그렇게 말한다. 너무나 태평하게. 당연한 듯이. 그런 부분들이 조금 무섭다. 오싹하다. 한편 이 사람이 손을 들어 주는 것은 선하지만은 않은 사람들이다. 이기적이고 약삭바르고 소심하고 가끔은 대범하고 너무 상식적이거나 고리타분하거나 아니면 너무 터무니 없거나... 우리들이 '나쁜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스스로, 혹은 남에게서 그런 부분들을 발견하면 책망하곤 하는 그런 부분들을 그냥 '괜찮다'고 말한다. 그리고, 의외로 이사람은 '죽음'에 대해서는 그냥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장엄한 죽음, 장엄한 복수 같은 게 아니라. 자연에서 생명들이 죽음을 맞듯,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로 그린다. '살인' 자체에 대해서도 스스럼이 없다. 다만 '괴롭히는 것' '상처를 주는 것' '삶(혹은 죽음)을 모욕하는 것'을 참을 수 없는 것 같다. 사쿠라가 빵빵 아무나 쏴대는 걸 보면 그래도 되나 싶으면서도, 그럴 수도 있지. 라는 생각도 든다. 이 상식밖의 세계에서는. 죽으면 슬퍼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미워하는 건 당연하지 않다. 이런 느낌이다. 복수같은 건 의미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악당도 죽으면 슬퍼해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죽인 사람을 미워할 필요는 없다. 뭐 이런 느낌?
사실 여기서 감정에 차서 너무 미워서 견딜 수 없어서 죽였다, 이런 거라면 왠지 사쿠라도 그냥 놔둘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오만에 차서, 자신이 뭔가 대단한 거라도 된 줄 알고 다른 생명을 허투루 대한다면 아마 사쿠라는 용납하지 않을 거다. 허수아비 유고는 슬퍼할 테고.
허수아비는 슬퍼하면서도 그런 이들을 애틋하게 사랑한다. 감싸안는다. 새와 벌레를 사랑하는 것만큼 내가 보기에는 섬의 사람들도 사랑했던 거 같다. 그러니까 사랑하는 사람들이 오만에 빠진 것이 그만큼 더 미웠던 걸지도 몰라. 입을 다물고 사람들의 삶을 지켜보기만 하는 것은 힘들었을 텐데. 슬펐을 텐데. 그래서 복수를 했나?
뭐랄까 슬프다. 나그네비둘기를 학살하고 오만에 가득차 살아가는 사람들. 그것이 우리들이라는 게 슬프다. 하지만 또 그런 어리석음이 있기에 사랑스러운 걸지도 모른다. 이 소설에는 '착하기만 한' 사람은 나오지 않는다. 우리가 그렇듯 다 마음에 어둠이 있다. 그렇지만 그들은 사랑스럽다. 키노의 여행에서 이 세상은 아름답지 않아. 그렇지만 그렇기 때문에 아름다워. 라고 모순된 멘트를 날리는 것도 그런 의미와 일맥상통하는 거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빅 슬립 레이먼드 챈들러 선집 1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박현주 옮김 / 북하우스 / 200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번역이 좀 이상하거나 내 뇌가 좀 이상하거나 편집부가 좀 이상하거나 셋 중 하나. 오타나 맞춤법 틀린 곳은 없지만 안 그래도 현학적인 문장을 꽈서 꽈배기처럼 만들어놨다. 도대체 국어처럼 보이지 않는 문장들 몇개가 머리속을 헤집고 다녔다. 읽을 수는 있지만 암호 해독하는 기분으로 해독하며 읽어야 해서 재미가 반감되었다. 이 장르는 술술 읽고 깊이 생각하는 맛으로 보는 거 아닌가? ㅠ,ㅠ
어쨌거나 역시 레이먼드 챈들러. 인가보다. 유명할 만한 가치가 있고 쿨한 하드보일드 탐정을 만들어낸 원조답다. 적당히 위트있고(무슨 말인지 이해는 못했지만 분위기상), 적당히 쿨해서 정말 균형이 딱 맞달까. 나는 이게 신기하게도! 처음이었기 때문에 좀 어리둥절한 구석도 있고 이해 안 되는 부분도 있지만 암튼. 다음 권도 읽어보고 나서 필립 말로란 탐정님을 판단해보고 싶다.운현궁이 일욜에 무료개방해서 은근슬쩍 들어가 마루에 앉아 국악 들으며 책을 읽었다. 그건 괜찮았어.

추신. 나만 이상한 건가봐. 다른 분들은 번역이 매끄럽게 잘되었다고 하던데.. 집에 가서 다시 읽어볼까? 요즘 걍 책이 잘 안 읽히는 건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우스트 2 - 2006, Autumn VOL.2
학산문화사 편집부 엮음 / 학산문화사(잡지)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엄청 볼륨도 대단하고 그만큼 읽을 거리가 풍부하다. 하지만 몇 가지 단점. 일단 모든 내용이 다 시니컬하기 그지 없다. 암흑계랄까. 파우스트 1호를 읽었을 때도 그랬는데 2권을 정독하니 확실히 알 수 있다. 요즘 일본 라이트노벨 계가 이런 게 인기인 걸까. 아니면 파우스트 잡지의 성격이 이런 걸까. 엄청나게 시니컬한 주인공이 비뚤어진 시선으로 그려내는 이야기가 다수. 우울하다 못해 찝찝한 느낌이라, 밝고 유쾌한 내용을 사랑하는(그런 주제에 추리소설이니 하드보일드니만 읽고 있다.) 나한테는, 괜찮다는 생각은 들지만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랄까... 게다가 번역이 매끄럽지 않다. 잡지라 급하게 후다닥 번역했는지 군데 군데 아무 생각없이 직역해서 말이 안되는 문장들이 있다. 안 그래도 내용 자체가 기괴한 내용 중심인데... 문장 마저 일부러 그런 듯 그래서, 더 기괴한 느낌이 난다. 무시무시할 정도.

그래도 듀나도 좋았고(듀나도 그런 시니컬한 사람들 중 하나지.) 오츠 이치도 좋았어. 하아. 힘들다. 이거 보다가 어제 새벽 세시에 잤단 말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Fantastique 판타스틱 2007.5 - Vol.1, 창간호
판타스틱 편집부 엮음 / 페이퍼하우스(월간지)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표지도 속지도 디자인 최고! 랄까. 잡지를 많이 만들어본 데라 그런지 잡지다워서 좋았다. 소설 외의 컨텐츠들, 영화 소개라든가 인터뷰, 기획 기사들도 센스 있었고 유쾌했다. 계속 기대했던 미야베 미유키의 단편과 그 밖의 듀나의 글, 김창규, 폴 윌슨 등등등 소설도 만화도 다 좋았다!
개인적인 문제라면, 연재 중의 '역사속의 나그네'와 '실비와 브루노'가 내 취향이 아니었다는 것? 뭐 잡지 사서 모두 마음에 드는 일은 원래 있을 수 없다. 다년간 만화잡지를 샀던 나로서는 뭐 그러려니 하고 있다. '실비와 브루노'는 다만 내가 이런 딱딱한 번역투에 낯설어서 그런 거 같기 때문에 다시 읽을 가능성은 남아 있다. 그리고 '역사속의 나그네', 복거일씨가 SF나 판타지라는 장르에 어느정도 기여를 했다는 건 알고 있다.(그냥 알고 있을 뿐이고 동감하지는 않지만) 그러나 마법성과 나의 끼끗한 들깨 이후로... 난 이사람의 글은 치를 떨며 증오한다. 그래도 혹 몰라, 워낙 쟁쟁한 글이니까, 하고 '역사속의 나그네' 줄거리를 읽었다. 한숨이 나왔다. 젠장. 그냥 무협지잖아. 아니 이렇게 말하면 무협지를 싫어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니까 부연설명을 덧붙이자면... 주로 세권으로 이뤄진, 잘난 주인공이 기연을 얻어 더 잘난 놈이 되고 여러 여자 꿰차고 해피엔딩~ 이라고 거칠게 요약 가능한 줄거리로 이뤄진 무협지들을 이야기한 거다. 모든 무협지가 아니라. 나쁘다기보다는 내 취향이 아니라는 거지.
시간 여행이라면 코니 윌리스라고 생각하고 있는 나는... 역사학도인 나는... 옛 일들을 현재의 관점에서 이건 옳고 저건 그르니 이렇게 계도해주지 않으면... 하고 생각하는 게 싫다. 지난 시대로 가서 혁명을 일으키고 새 세상을 만드는 것도 싫다. 젠장. 둠즈데이북을 보라고! 역사는 그 자체로 숭고하다. 미래에서 왔다고 한들 작은 인간 하나가 세상을 쥐락펴락하려고 드는 것, 멋대로 고치려드는 건 오만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줄거리가 마음에 안 드니 글일 읽힐 리가 없지 완전. OTN.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