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듀본의 기도 - 아주 특별한 기다림을 만나다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아. 데뷔작이 이정도라니! 이사카 고타로는 정말 대단해! 뭐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지만 나는 이 사람을 참 좋아한다. 구질구질한 세상을 구질구질하다고 말하면서도 이렇게 유쾌하고 통쾌하게 그려낼 수 있는 사람은 정말 드물 거다. 이 책은 미스터리적 요소가 제법 풍부하다. 도대체 범인이 누굴까. 일이 어떻게 된 걸까. 그리고 도대체 어떤 식으로 결말을 볼 것인가. 밑에는 스포일러가 잔뜩이다.

허수아비가 말을 하며 미래를 보는 등, 대놓고 리얼리티를 파괴해대지만 어쨌거나 그것은 이 소설 속 세계에서도 상식 밖의 세상이다. 낙원처럼 보이는 그 상식 밖의 세상에서조차 사람들이 살아가는 건 죄다 똑같으니, 그것 참 안타깝기 그지 없지만, 그래도 희망은 남아 있다. 이 사람은 정말이지 진짜 '악'을 참 잘도 그려낸다. 마왕에서도 그렇고, 중력 삐에로에서도 그런데. 이 사람의 악은 진짜 '악'이다. 자신이 악한이라는 걸 알고, 세상의 상식도 모두다 잘 알면서, 그것들 인간이 인간으로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 만들어놓은 모든 가치관을 송두리채 짓밟으며, 남을 괴롭히며 그것을 낙으로 삼는다. 그것은 감화될 수 없는 거다. 그것은 사회가 만들어냈다느니 그런 게 아니다. 그냥 '악'이다. 이 사람은 이 세계에는 그런 것도 존재한다고, 그렇게 말한다. 너무나 태평하게. 당연한 듯이. 그런 부분들이 조금 무섭다. 오싹하다. 한편 이 사람이 손을 들어 주는 것은 선하지만은 않은 사람들이다. 이기적이고 약삭바르고 소심하고 가끔은 대범하고 너무 상식적이거나 고리타분하거나 아니면 너무 터무니 없거나... 우리들이 '나쁜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스스로, 혹은 남에게서 그런 부분들을 발견하면 책망하곤 하는 그런 부분들을 그냥 '괜찮다'고 말한다. 그리고, 의외로 이사람은 '죽음'에 대해서는 그냥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장엄한 죽음, 장엄한 복수 같은 게 아니라. 자연에서 생명들이 죽음을 맞듯,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로 그린다. '살인' 자체에 대해서도 스스럼이 없다. 다만 '괴롭히는 것' '상처를 주는 것' '삶(혹은 죽음)을 모욕하는 것'을 참을 수 없는 것 같다. 사쿠라가 빵빵 아무나 쏴대는 걸 보면 그래도 되나 싶으면서도, 그럴 수도 있지. 라는 생각도 든다. 이 상식밖의 세계에서는. 죽으면 슬퍼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미워하는 건 당연하지 않다. 이런 느낌이다. 복수같은 건 의미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악당도 죽으면 슬퍼해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죽인 사람을 미워할 필요는 없다. 뭐 이런 느낌?
사실 여기서 감정에 차서 너무 미워서 견딜 수 없어서 죽였다, 이런 거라면 왠지 사쿠라도 그냥 놔둘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오만에 차서, 자신이 뭔가 대단한 거라도 된 줄 알고 다른 생명을 허투루 대한다면 아마 사쿠라는 용납하지 않을 거다. 허수아비 유고는 슬퍼할 테고.
허수아비는 슬퍼하면서도 그런 이들을 애틋하게 사랑한다. 감싸안는다. 새와 벌레를 사랑하는 것만큼 내가 보기에는 섬의 사람들도 사랑했던 거 같다. 그러니까 사랑하는 사람들이 오만에 빠진 것이 그만큼 더 미웠던 걸지도 몰라. 입을 다물고 사람들의 삶을 지켜보기만 하는 것은 힘들었을 텐데. 슬펐을 텐데. 그래서 복수를 했나?
뭐랄까 슬프다. 나그네비둘기를 학살하고 오만에 가득차 살아가는 사람들. 그것이 우리들이라는 게 슬프다. 하지만 또 그런 어리석음이 있기에 사랑스러운 걸지도 모른다. 이 소설에는 '착하기만 한' 사람은 나오지 않는다. 우리가 그렇듯 다 마음에 어둠이 있다. 그렇지만 그들은 사랑스럽다. 키노의 여행에서 이 세상은 아름답지 않아. 그렇지만 그렇기 때문에 아름다워. 라고 모순된 멘트를 날리는 것도 그런 의미와 일맥상통하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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