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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엄마 찾아 줄게
김마리아 지음 / 세움북스 / 2024년 3월
평점 :
엄마가 엄마 찾아 줄게
#엄마가엄마찾아줄게 #김마리아 #세움북스
그레이스 앓이, 마리아 앓이~
심각하게 앓고 있다. 중병이다.
내가 그레이스를 안아주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레이스가 나를 안아주었으면 한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 대신 기도를 하세요.
하나님께서 당신의 마음을 위로해 주실 거예요.”
햇살 좋은 봄날 오후에, 나는 새벽에 나누었던 그분과의 대화에 연이어 삶으로 이야기를 나눈다.
성경을 삶으로 살아내려는 천재적인 김마리아 작가의 <엄마가 엄마 찾아 줄게>는,
시대의 아픔을 기쁨으로 승화하는 에세이,
성경, 잡초, 꽃, 정원, 올챙이, 봉구, 한나, 그리고 하나님을 노래,
믿음 소망 사랑의 가슴으로 써서, 죽은 심장을 뛰게 한다.
소설 읽는 듯한 맛도 있다.
그레이스의 정원에서 차 한잔을 마시며 그레이스 맘과 함께, 그레이스가 노는 것을 보며 이야기하는 듯.
오늘 아침은 그레이스와 맘이 어떤 이야기로 시작할까?
하루하루 묵상하며 읽는 <엄마가 엄마 찾아 줄게>는,
유유자적하며 꽃과 벌과 친구에게 몰입하는 그레이스, 그를 위해서라면 우주 끝까지라도 가겠다는 맘,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분”이라는 시로 노래하는 아득한 사랑의 찬가다.
사랑의 찬가는,
사랑이면 충분하니 반창고나 연고도 쓸 때가 없음을 아는 사랑쟁이 엄마와
지렁이 한 마리의 아픔을 아는 그레이스, 올챙이 식당의 셰프, 닥터 그레이스의 사랑의 하모니~
잡초는 없다.
세상은 잡초를 짓밟고, 낮은 자와 약한 자를 사랑하는 자를 외면한다.
그런데 작가의 생각과 삶은 다르다.
잡초는 세상에 없다.
당장 내게 필요하지 않을 뿐.
어느 봄날,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니 노랗게 핀 잡초(?)가 있었다.
‘목사님, 저 꽃 이름이 뭐에요?’ 라고 장로님이 물었다. ‘예, 잡초에요’
다음에 만났을 때, ‘목사님, 저건 잡초가 아니라 이름있는 꽃이랍니다.’
💐
오열하게 만든 사랑!
‘리벤 벨레프’, ‘사랑이 살린다!’
책을 읽으며 울다가 웃다가 오열하다가 가슴 아파 회개하였다.
‘제가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제 가슴이 예수님의 사랑으로 더 가득하게 해 주세요~’
바른 어른으로 자라기를 바라며 누구에게나 도움 되는 사람, 스스로 해결해 나가야만 한다는 마음의 무게로 위탁 아이 성탄이를 양육하는 내 모습을 반추해 보았다. 반창고와 연고를 찾는 나, ‘우주 끝까지 찾아간다’가 아닌 ‘우리 곁을 떠나면 네가 스스로 일어나야 해. 그러기 위해서 힘을 길러야 하고, 스스로 할 수 있어야 해’ 라고 주문 하듯 훈계하려는 나는 그레이스의 올챙이 식당의 손님으로 앉고, 곤충병원 원장님을 찾아가야 한다.
우리 성탄이나 그레이스가 ‘안 갖춘꽃’이 아니라 내가 ‘안 갖춘 꽃’이다.
작가는 괴테의 금언 같은 말로 ‘날 수 있게, 뿌리 내릴 수 있게’ 하란다.
‘부모가 자녀에게 주어야 하는 두 가지는 날개와 뿌리이다.’
‘날개는 붙들어 매지 말고 날아갈 수 있는 꿈을 주어야 한다. 뿌리는 그러나 자기 스스로 설 수 있도록 힘을 주어야 한다는 의미.’를 들려 주면서.
그렇다면, 믿음의 부모로서 자녀에게 무엇을 남겨줄까?
우리 자녀에게-입양이든 위탁이든, 몸으로 낳든-
“다만 내가 부모로서 기억할 것은 깊은 신앙심과 자애로운 마음, 그리고 꾸준한 성경적 가르침을 주는 것이다.”
🌷
작가와의 첫 만남은 기쁨이었다.
작년 북토크 하루 전날, 작가와 아내, 나,
식사하고 커피를 마셨다. 그 만남을 통해 슬몃 작가의 진한 ‘사랑 이야기’에 가슴이 뛰었다.
이 책을 통해 그다음 이야기를 듣게 되어 기쁘다.
사랑이어야 한다. 그날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다. 사랑이어야 한다.
사랑받은 뜨거운 가슴은 열정으로 타오르게 될 것이다.
‘입양아’라는 사실을 알게 된 친구에게 던진 이야기는 사랑받은 아이가 얼마나 뜨겁게 변하는지 알 수 있다. 엄마 그리고 아빠가 품에 안고 늘 해 주던 고백처럼,
“너는 너희 부모님이 낳았으니까 당연히 키우시겠지. 그런데 우리 부모님은 직접 찾아오셔서 나를 선택하셨어. 그러니까 나는 너보다 특별한 아이야!”
그 사랑은 다시 그레이스 부모의 마음을 감동으로 두근거리게 했다.
“그레이스의 빠른 호흡만큼이나 내 가슴도 두근거렸다. 나는 꽃과 그레이스를 한꺼번에 끌어안았다. 엄마를 향해 마구 달려오던 아이의 젖은 눈망울을 평생이고 잊지 못할 것이다. 어디에도 이 기쁨과 감동을 회복시킬 치료제는 없을 테니까.”
👰♂️
‘하히에게’를 읽으며 또 울다~
‘그런데 다른 어떤 것보다 제가 선교사 가정의 딸이라는 것,
그것 하나면 된다고 말씀해 주셨을 때 너무 놀랐어요.’
며느리가 될 ‘하히’가 보낸 편지에서, 나는 내 자식의 배우자들과 오버랩 되어 폭풍 눈물 흘리고 말았다. 작가의 맘처럼, ‘하히’에게 같은 눈물의 온도로, 같은 떨림으로 울었다.
목회자의 자녀라는 그 하나가 내 자녀들에게 눈물이고 아픔이다. 그로 인해 아팠을 자식들이 배우자에게, 배우자의 부모에게 이런 사랑의 언어를 듣는다면, 수억의 재산보다 더 소중한 가치를 얻게 될 것이다.
‘하히에게’를 마무리하며 인용한 성경 구절을 보고 다시 울었다.
작년 겨울 성탄절을 며칠 앞두고 하늘나라로 가신 장모님의 장례 예배 때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 ‘어머님은 무명한 자 같았으나 유명한 자셨습니다. 무식한 자 같았으나 유식한 자셨습니다. 성경대로 살다가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교회를 사랑하고, 예배를 사모하고, 목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
잡초 같은 인생, 가슴 아픈 사람들, 통나무집 아저씨같이 외로운 사람들, 제주4.3 사건...
“다만 나는 소망한다. 언젠가 주님 품에 이르렀을 때, 이 땅에서 이처럼 더한 아픔을 겪은 이들에게는 또 한 겹의 크신 위로가 있기를....”
💐 🌼 🏵 🌷 🌺 🌻
‘혹시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으로 꽃대를 올린다’ 라는
‘스트레스 개화 이론’을 읽으며, 올해 내가 왜 그렇게 많은 곳에 면접을 보았는지, 일거리를 찾았는지 알게 되었다. 절박함이었다. 나이로 인한 다급함, 쓸모없을까 봐 안달하는 마음이었다. 그 절박함을 포기 대신 도전으로 맞섰다. 결국 화려한 꽃이 아닌 민들레 닮은 약초를 피웠다.
절박함은 좋아하던 카페인마저 멀리하게 되었다.
내 오장육부를 아프게 하는 원인이 카페인이란 걸 알게 된 날, 아내 앞에, 페북 통해 페친들께 다짐하고서 오늘까지 님은 저 먼 곳에다.
그레이스와 맘은, 다음 세대를 위해, 지구 지키는 일에 앞장선다. 여행객들이 버려 냄새나고 환경 오염이 된 것들을 줍고, 비료를 만든다. 일명 ‘지구를 지켜라!’다.
기억할 것은, “자연은 조상으로부터 물려 받은 것이 아니라 후손에게서 잠시 빌려온 것”이라는 인디언 격언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사랑은,
“작게나마 이 땅의 어린이들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지구를 더욱 사랑하고 소중히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소망”으로 연결된다. 물론 육(肉)고기도.....
🐄 🐂
선교사요, 예배자로서 눈물 뚝뚝 흘리게 한다.
잘 들어야 한다. 잘 들어야 잘 산다. 바르게.
포도주, 올리브유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용도로 사용했다. 제사장은 그것을 잘 알았다. 그러나 강도 만난 자에게 포도주는 알코올로, 올리브유는 연고로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그것들을 제사에는 사용할 줄 알았으나, 실질적인 삶 속에서는 어찌 사용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결국, 그들의 삶과 예배가 서로 잇닿아 있지 않았음을 의미 한다.”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인가, 통 나무집 아저씨를 대하는 작가의 마음을 읽으며 알게 된다. 그리고 슬몃 눈물이 쏟아졌다.
‘아저씨, 오늘은 바람이 참 좋네요. 샬롬....’
작가의 눈물만큼이나 아팠을 통나무집 아저씨의 외로움, 화재..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다가갈 수 없는데, 부활의 기쁨을 안고 달걀 바구니를 들고 간 작가의 마음이 오롯이 전해졌다.
내 글의 처음에 그레이스의 편지는,
유주이자 유주 이모에게 하는 그레이스의 마음이다. 그 마음을 유주 이모가 많은 사람 앞에서 신앙고백처럼 고백한 내용이다. 영혼 구원을 향한 작가의 마음이다. 나는.....?
그리고 어머니 아버지...
엄마의 분꽃, 아버지의 난, 모감주나무
“글을 배워 책 읽는 사람답게 늘 바르게 살라”던 전영애 교수 어머니의 마음처럼, 작가의 부모님의 꽃사랑, 자식 사랑, 이웃사랑을 그대로 닮았다. 그레이스는 엄마와 아빠 닮았다.
초대합니다.
라이너 쿤체의 ‘한 잔 재스민차에의 초대’처럼
“들어오세요, 벗어 놓으세요. 당신의 슬픔을.
여기서는 침묵하셔도 좋습니다.”
“올해 받은 선물이 내년에 다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다니”
이렇게 귀한 사랑의 선물을 받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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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쁘다.
한가하게 앉아서 책을 읽고 생각하고 마음이 머물 시간이 없다.
언젠가부터 하나님은 새벽 두, 세시면 깨워서 기도하게 하신다. 마음으로 드리는 내 이야기를 듣고 싶으신가 보다. 특별한 이야기나 간구가 있는 것이 아니다. 나와 연으로 이어진 이들을 위한 작은 소망을 담아 올려드린다. 자그마한 소망도 이야기한다. 아내를 위한 소망, 자녀들과 그 가정 이야기를 담아드린다. 내게 주신 일들을 하느라 잃어버린, 마치 고속열차로 달리며 본 풍경에서 내려 그곳에 머물며 풍경과 하나 되게 하시듯, 내게 일을 주신 아버지와 하나 되게 하신다.
<엄마가 엄마 찾아 줄게>가 나로하여금 고속열차에서 내려 제주도로 가에 하였다. 그곳에 머물게 하였다. 이제 젖은 눈으로 당신을 초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