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정치] 서평단 알림
하나님의 정치 (양장) - 기독교와 정치에 관한 새로운 비전
짐 월리스 지음, 정성묵 옮김 / 청림출판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하나님의 정치(God's Politics)

Jim Wallis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예요. 그것만이 중요해져야 해요” 영어를 잘 구사하지 못한 이민자 엄마의 입에서 나온 말은 미국과 우리 한국의 정치를 보면서 ‘기독교가 뭘 해야 할까?’를 고민하던 내게 해답을 주었다.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해야 할 일, 하나님께서 맡기신 대명령에 대해서 확대하기를 소망한다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정치라는 것인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인생에게 맡기신 지상 대명령, 예수님은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고 명령하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분명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라고 가르치셨어요. 그러니까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일은 지상 대 명령의 일부입니다.’
 빌 브라이트(Bill Bright)와 저자와의 이별은, 오랫동안 나눠진 기독교의 모습인 동시에, 기독교가 세상을 향해 외면당하고 외면되어진 모습이다. 두 사람과의 화해는 지상 대명령을 하나로 이뤄가는 모습임과 세상 속에 이루는 하나님의 정치이다.

 1부 “바람의 방향을 바꾸라”는, ‘기독교 신앙이 부유층 지지, 전쟁 찬성, 친미와 동의어로 여겨지고 있다. 바른 비전과 가치를 갖는 정치를 원하며, 선지자들과 같은 정치를 하는 하나님의 정치를 말한다.
 2부 “불평의 정치를 넘어서”는, ‘불의에 반대하는 것도 좋지만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이다. 저항만으로는 부족하다. 더 좋은 길을 제시해야 한다. 현재를 진단하고 올바른 해결로 가는 길을 제시하는 선지자- 예언자적인 정치로 바꿔야 한다.
 3부 “영적 가치와 국제 관계: 예수가 언제부터 전쟁 옹호론자였는가”라는 주제에서는, 9.11테러로 인한 부시의 대응책은 전쟁인데, 이것은 두려움에 대한 잘못된 저항이라는 것이다.
 4부 “영적 가치와 경제 정의: 예수가 언제부터 부자의 편이었는가”는, 전쟁에 이어서 빈곤에 대해서 말한다. 성경 곳곳에 가난한 사람들과 불의에 대한 반응이 나타나며, 구약의 두 번째로 두드러진 주제가 가난한 사람들이나 돈에 관한 말씀이라는 것이다.
 5부 “영적 가치와 사회적 이슈:예수가 언제부터 선택적 도덕주의자였는가”에서는, ‘일관된 생명윤리’라는 주제로 낙태와 사형에 대해서 말하고, 미국이 있기 위해서 흑인들을 죽이고, 노예로 삼았던 것이 미국의 원죄임을 말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사과하기를 촉구한다.
 6부 “영적 가치와 사회 변화”에서는, ‘예언자적 종교는 신앙과 세속주의 사이의 싸움을 주된 전투로 보지 않는다.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진짜전투는 냉소와 희망 사이의 선택이다.’
 

 믿음을 찾자, 생명과 가족을 소중히 여기고 글로벌 공동체를 세워라
 기독교 신앙이 부유층 지지, 전쟁 찬성, 친미와 동의어로 여겨지고 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성경적이며 진정으로 복음주의적인 본래의 신앙을 오늘날의 왜곡된 상태로부터 구해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사회적 위기의 심화로 예언자적 종교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지금, 믿음을 되찾아야 할 때다.
 특히 공적 삶속에서 성경적인 믿음을 되찾아야할 때다. 진정한 신앙을 가진 사람은 ‘번영의 복음’을 설파하지 않는다. 부익부를 추구하는 정치인들을 지원하지도 않는다. 가난한 자들을 위해 정의를 펼친다. 그들은 폭력을 미워하여 폭력 근절에 온 힘을 쏟는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쟁을 정당화하기 보다는 전쟁반대를 철저한 기본 입장으로 삼는다. 진정한 신앙인은 인종. 계급. 성별의 벽을 허물고 공동체를 세우며, 민족주의 종교보다는 글로벌 공동체를 우선시한다. 눈을 씻고 성경을 찾아봐도 “하나님이 미국에 복주시기를(God Bless America)"이라는 구절은 없다. 진정한 신앙인은 생명의 신성함과 가족 결속 같은 문제를 더없이 중요하게 여긴다. 따라서 그런 가치를 당쟁을 위한 이념적 상징이나 무의미한 정치적 약속으로 오용하지 않는다. 우리는 바로 이런 믿음을 되살려야 한다.

 올바른 종교, 공익을 위하고 희망을 이야기 하라!
 올바른 종교란, 어느 한 이념이나 어느 한 당에 일방적으로 쏠리지 않는다. 또한 종교적 행동은 권리보다 더 심오한 개념, 곧 모든 인간 속에 하나님의 형상이 담겨 있다는 개념을 기반으로 한다. 그래서 성경은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중 어느 한 쪽의 정책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저 가난은 종교적 이슈이며, 가난을 몰아내기위해 힘쓰지 않은 정치 지도자들은 도덕적 심판을 받게 된다고 말 할 뿐이다.
 종교가 예언자적 소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않으면 어떤 사회라도 무너져 내릴 수 있다. 예언자적 종교는 언제나 질문을 던진다. “공익은 다 어디로 갔는가?”라고.
 오늘 우리가 싸울 상대는 종교 근본주의자와 세속 근본주의자다. 우리는 이 두 부류 중 어느 한 쪽도 좌시하지 말아야 한다. 이념적 범주화를 지양하고 자유주의 진영이든 보수주의 진영이든 상관없이 모든 선한 사람들을 연결하는 다리를 놓아야 한다. 종교 근본주의자와 세속 근본주의자, 그 어느 쪽도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없다. 오직 사회적 양심을 일깨우는 새로운 영적 부흥만이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 운동은 역사를 바꾸며, 그 중 가장 강력한 운동은 영적 기초 위에서 일어난 운동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희망에서 나오는 영적 힘이다. 희망이냐 냉소주의냐, 이것이 우리 시대에 가장 중요한 도덕적 정치적 선택이다. 희망의 정치를 이야기한다. 

 하나님의 정치, 예언자적이며 비전을 제시하고 정치권에 영향을 미쳐라!
 하나님의 정치는 선지자들을 통해서 이해된다. 그들의 주제는, 땅, 노동력, 자본, 임금, 빚, 세금, 공평함, 법정, 감옥, 이주민들, 다른 인종, 경제적 양극화, 전쟁, 평화 등이 정치에 속하는 것이다.
 선지자들은 통치자, 왕, 고용주, 지주, 소유주 나아가 종교지도자들이 청중이었다. 선지자들은 여러 나라를 향해 외쳤고, 힘 있는 자들을 표적으로 삼았다. 그들은 사회를 책임지는 자들에게 가장 큰 책임을 요구했다.
 선지자들은 박탈당한 사람, 과부, 고아, 굶주린 사람, 집 없는 사람, 의지할 데 없는 사람들을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이것은 하나님은 계급 전쟁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공익을 원하심을 알 수 있다. 
 예언자적 정치는 해묵은 갈등을 넘어 공익을 말하는 새로운 도덕적, 정치적 언어를 찾아야 한다. 곧 아동, 다양성, 가족, 공동체, 시민 의식, 윤리 같은 근본적인 도덕적 이슈에 주목하며 정치 노선을 넘어 많은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국가 방침을 세우려고 노력하고 “계시가 없으면 백성은 방자해진다.”는 말씀을 표어로 삼아 진정한 정치적 비전을 제시한다. 성경시대의 예전자적 전통은 우리의 분열되고 마비된 국가 정책을 넘어 전진할 길을 제시해 주며,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나오는 원천이 될 수 있다.
 예언자적 정치는, 개인적 책임과 사회적 책임 사이의 끝없는 논쟁이 아니라 공익을 위해 이 둘을 하나로 묶는다. 또한 모든 문제를 정부나 시장, 교회, 자선 단체에 떠넘기지 않으며 각자 잘하는 일을 하고 모두가 이익을 나누는 새로운 형태의 시민 협력을 끈기와 재치로 이루어 낸다. 문화나 정치, 경제 중 무엇에 초점을 맞춘 전략을 써야 하는지 논쟁을 벌이는 것은 예언자적 정치가 아니다. 도덕적 잣대를 중심으로 이 세 가지를 통합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예언자적 정치의 지도자들은 정치인과 공직자, 법률가들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역 사회 지도자나 비영리 기관, 기독교 공동체나 부모들도 비전을 제시할 수 있다. 특히 비록 정치에 냉소적일지는 몰라도 공적 삶에는 깊은 관심이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정치 지도자들은 전당 대회에서 로비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회적, 영적 운동을 일으키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물론 성공적인 운동들이 으레 그랬듯이 궁극적으로는 정치권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
 

 진짜 신앙, 우리가 하나님의 편인가를 삶으로 나타내라!
 진짜 신앙은 누군가의 주장과 달리 ‘신성함’의 좁은 경계 속에 갇혀 있지 않고 세상의 한복판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세상을 바꾸는 일이야 말로 신앙의 진짜 역할이다. 선거가 세상을 변화시키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민주주의 속에서 믿음의 시민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중요한 부분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생각하고 기도한 뒤 투표하자.

‘우리가 하나님의 편인가?’ 라는 질문은 ‘하나님이 우리 편인가?’라는 질문보다 언제나 좋은 질문이다. “종교적 가치가 정치적 담론을 형성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종교적 가치를 어떻게 정치적 담론으로 형성할 것인가?”가 훨씬 좋은 질문이다. 이것은 또한 하나님은 개인적일뿐 사적이지는 않다. 

 부시의 신앙, 마틴 루터 킹과 에이브러햄 링컨에게 배우라!
 ‘부시의 신앙이 참되고 확고하다고 믿는다. 진짜 문제는 그 신앙의 내용에 있다.’ 그렇다. 그는 팍스 아메리카나를 꿈꾸고, 9.11 테러의 두려움으로 후세인뿐만 아니라 비무장한 국민들을 죽였으며, 또 다른 나라들을 찾고 있다. 악의 축이라는 이름으로....
 부시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대통령이 되게 하셨으며,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미국을 선한 나라로 오해하고 다른 나라들은 악한 나라로, 오직 미국만이 새로운 세계 질서의 도덕적 기틀을 제공할 수 있다고 했다. 미 제국주의의 이름으로.
 부시는 국가와 교회와 하나님을 끊임없이 혼동하고 있다. 결국 그의 신학은 기독교 신앙이라기보다는 미국의 시민종교에 가깝다. 그러나 기독교 신학은 제국주의와 뒤섞일 수 없으며, 이라크에서 저지르고 있는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의 사건들과 함께 할 수 없다. 부시가 믿고 있는 하나님은 이렇게 예언서에서 말씀하신다.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라고.
 부시는 마틴 루터 킹과 에이브러햄 링컨에서 배워야 한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어떻게 정치를 해야 할지를 말이다.
 마틴 루터 킹은 한손에는 성경책을 다른 손에는 헌법을 들고서 선포했다. 킹은 우리 모두에게 정의와 평화에 관한 하나님의 목적을 일깨워 주었다. 또한 그는 소외되고 뒤쳐진 자들이 맨 앞자리를 차지하는 ‘사랑의 공동체(beloved community)’를 이야기 했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우리가 할 일은 국가의 모든 정책과 행동에 대해 하나님의 복과 승인이 내려졌다고,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 편이라고 주장하면서 하나님의 이름과 종교를 입에 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편에 섰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기도해야 한다.

 9.11테러와 미국의 할 일, 전쟁과 빈곤사이의 연결고리를 확인하라!
 짐 월리스는, ‘우리는 9.11 테러를 오히려 배움의 기회로 삼아야한다고 말했다. 9.11테러는 취약성이 인간 삶의 피할 수 없는 일부라는 진실을 받아들이는 계기가 될 수도 있었다. 9.11테러 후 미국은 전 세계에 대한 실질적 위험과 위협에 단호히 개입하고 대응할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도록 국제법과 국제기관들을 강력하게 지원했어야 했다. 세계의 무기 규모를 현저하게 감축하고 미국이 보유한 것을 포함해 모든 대량 살상 무기를 없애 나갔어야 옳았다. 9.11테러 후 미국은 다른 민주국가들의 지도자로 나서 인권을 보호하고 세계 빈곤을 진지하게 다루며 환경을 보존했어야 했다. 나아가 계속해서 국제 안보를 위협하는 고질적인 갈등들을 해결했어야 했다. 그러면 온 세상이 미국의 리더십을 기꺼이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지배’라는 그릇된 선택으로 온 세상의 기대를 저버렸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해가 갈수록 사회 향상 프로그램보다 국방비 지출이 많아지는 국가는 영적 죽음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은 전쟁과 빈곤 사이의 연결고리를 정확히 꿰뚫고 있는 말이다.
 2달러 이하로 하루를 생활하는 사람들이 수십억이나 되고, 약을 구입하지 못하고, 병원에 가지 못한 아동들이 많은데 부시는 성전이라는 이름으로 전쟁에 여념이 없다. ‘군비증강과 부유층을 위한 대규모 감세에는 수십억 달러씩 예산을 올리면서 빈곤 퇴치 프로그램을 위한 자금 지원은 줄이는 행태’를 용납할 수 없다고 짐 월리스는 외친다.

 예산은 도덕적 문서다
 군(軍)의 예산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부자들은 막대한 세금 감면으로 환호성을 지르는 동안 가난한 사람들은 비참하게 희생되고 있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예산은 정부의 진정한 우선순위를 보여주는 도덕적 문서인 것이다.’ 우리에게는 빈곤퇴치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신앙 중심 구상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분노와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부시의 예산 정책은 가난한 사람들에겐 재난이요, 부유한 사람들에겐 횡재이며 성경의 우선순위와는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다. 우리에겐 가난한 사람들을 외면하는 예산 우선순위에 반대하는 신앙 중심 구상이 필요하다.
 “이 부채의 일부를 탕감하지 않으면 이 나라들의 빈민들은 남은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보다 더 오래 괴로워해야 합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선언문이다. 

 

 하나님의 정치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선지자들이 부유한 자들과 왕들과 모든 이들에게 전하는 것이다. 그 말씀은 가난한 자들과 약한 자들과 억눌린 자들에 대한 것이었다. 예언자적 정치, 또는 선지자적 정치라고도 부를 수 있는 하나님의 정치는 이 땅의 가난한 자들과 억눌린 자들을 위해서 특히 미국의 부시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베풀어야 하는 정치이다.

 동성애와 낙태에만 머물러 버리는 정치이슈,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투표에서도 이것들을 포함하지만 전쟁과 빈곤과 사형제도 등의 여러 가지 이슈도 살피라는 것이다. 그리고 정교분리라는 명목으로 정치를 멀리하는 종교인들에게도 정치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라고 권면한다. 기도하면서 투표하라고 한다. 

 하나님은 전쟁을 원치 않으신다.
 테러로 두려움을 느낀 미국과 부시는 전쟁을 선포하게 된다. 애초엔 후세인과 살상무기를 찾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후세인 보다는 비무장한 이라크 국민들만이 특히 아이들이 죽어나갔고, 죽고 있다. 애타게 찾던 살상무기도 없었다. 전쟁을 하기 전에 기독교의 지도자들은 전쟁을 하지 말 것을 부시에게 전달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그리고 전쟁이 아닌 제 3의 길을 제시한다. 전쟁이 필요할 때는 이때가 아니란 것이다. 평화를 만드는 사람, Peacemaker, 평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평화를 만드는 사람은 전쟁을 하지 않는다. 지금 전쟁으로 얼룩진 이라크와 미국 국민들에게는 전쟁을 하지 않는 것이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람이다. 그 전쟁을 위해서 막대한 예산이 허비되고 있다. 군비만 줄여도 가난한 아이들을 먹여 살릴 수 있다. 에이즈로 고통 하는 이들에게 치료비를 제공하여 새 삶을 살게 할 수 있다.

 미국의 힘은 가난한 이들을 위해 써야 한다.
 ‘팍스 아메리카나’를 꿈꾸는 부시와 주변 인물들에게 하는 메시지다. 미국은 하나님이 복 주시는 나라이고, 부시는 하나님이 세우신 대통령이다. 그래서 세계의 모든 것은 미국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 사이에 하나님을 끼우는 것이 부시의 망령이다. 제국의 신학과 연계하여서 미국만이 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악의 축인 이라크와 북한 등을 전쟁을 통해서 새롭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심리학자 Abraham Maslow의 “손에 망치밖에 없을 때는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인다.”라는 말처럼, 미국이, 부시가 가지고 있는 힘과 무기를 가지고 두드릴 못을 찾고 있는듯하다. 그에게 짐 월리스는 그 힘을, 미국의 힘을 교만하게 자랑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다간 망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가난한 이들과 연약한 자들과 부채를 갚지 못해 바동거리는 나라들에게 쏟으라는 것이다. 힘은 있을 때 잘 써야 한다. 

                                                                                                                                           

신학 세미나를 열기에 최적의 장소는 구치소라는 말에, 고개가 갸웃 거려진다. 물론 월리스가 의도한 바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나님께서 월리스만 인정하신 것은 아니지 않는가? 빌리 그레이엄도 릭 워렌도 세우지 않았는가? 모두가 구치소에 가야하는가? 모두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정부와 싸워야 하는가? 모두가 전쟁을 반대하며 촛불을 들어야 하는가? 저자가 의도한대로 무관심에 두지 말고 관심을 두고 삶속에서 나타내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성경 곳곳에 남아있는 가난한 자들과 약한 자들을 위해서 살라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무료급식소에서 그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 선 예수님을 맞이하듯 가난한 사람들을 섬기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모습은 가난하고 억압받는 얼굴’이라고 마더 테레사는 말했다. 전쟁을 하기 위해서, 군비지원을 위해서 부시가 마음을 모으고 무릎을 꿇어 기도를 올리는 대상은 하나님이라고 했다. 월리스는 하루 2달러 이하로 연명해 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에게 밥을 제공하고 일자리를 만들어 주며, 그들의 눈물을 닦아 주는 분이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 같다. 

 

 종교를 하나로 묶어서 하나님의 정치를 이루자
 기독교의 좌파와 우파가 존재하고, 유대교, 이슬람교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를 이루게 된 일, 그 일이 흐뭇하면서 질문을 하게 된다. 그 다음엔 뭐지? 그렇게 한다는 것이 하나가 될 수 있을까? 더 이상 나가지 못한 것은 아닐까? 저자는 각자의 신앙고백을 포기하지 않는 하나 됨을 말한다.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어쨌든 나로서는 기독교와 정치에 대한 선지자적인 견해를 갖게 되었다.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짐 월리스의 해박한 정치에 대해서도 배울만하다. 영적인 기준을 삶에서의 정치, 경제, 빈곤퇴치라고 했듯이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통해서 영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통해서 정치를 하고, 기업을 운영해야 하며, 가난한 이들을 섬겨야 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내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영적인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삶의 현장에 가기 전에 하나님과의 친밀감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삶의 현장이 영적인 현 주소이지만 기도의 골방, 예배에서 영적인 승리를 하라는 것이다. 하나님과 일대일의 영적 친밀함이 먼저 이루어질 때만이 공동체를 하나님께로 이끌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상황에서 이 책은 미국 정치와 종교의 바람을 바꾸는 역할을 하였다. 미국 크리스천들이 바른 정치관을 갖게 되었다. 가난한 이웃들과 연약한 자들을 어떻게 도울 것인가에 대해서도 고민하며 섬기게 하는 등의 큰 영향을 주었던 책이다.

이제 한국에서도 새바람을 일으키기 바라며 나의 소망을 적어본다.
 첫째, 바른 기독교로 바뀌기를 바란다.
 이 책을 읽고 삶으로 옮긴다면, 사적인 기독교에서 공적인 기독교로 바뀌기를 바란다. 사회에 대한 의무는 사회에서 받은 혜택의 양에 따라 늘어난다고 한다. 받은 은혜를 돌려주어야 하는 기독교이다. 전쟁과 가난, 동성애와 가족 이 모든 것은 어느 당, 좌파의 이슈냐 우파의 이슈냐의 문제가 아니라 영적이며 기독교적인 이슈라는 것을 기억하자.

 욕먹는 기독교에서 칭찬을 듣는 기독교로, 따로 노는 기독교에서 공동체를 살리는 기독교로 바뀌기를 바란다. 중산층을 위한 기독교에서 가난하고 연약한 자들을 위한 기독교로(물론 빈부귀천을 따지지 않는).
 기억하자. 무료급식소의 한 여인의 기도처럼, “주님께서 오늘도 이 줄에 서 계실 줄 압니다. 저희가 주님을 잘 대접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주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둘째, 바른 정치로 바뀌기를 소망한다.
 특히 단일민족에서 다문화로 바뀌어 가는 한국 사회에서 그들을 끌어안고 함께 가는 정치로 바뀌기를 바란다. 당의 이익만이나 소수의 이익만을 원하는 저치가 아닌 공동체를 살리는 바른 정치로 바뀌기를 바란다. 미국의 현실과 비슷한 우리 한국의 정치가들이 이 책을 읽고 활용한다면 바른 정치의 나라로 바뀌리라 소망한다.

 셋째, 하나 되는 민족으로 바뀌기를 소망한다.
 하나님 안에서 바른 정치를 하고, 바른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진정 건강하고 깨끗한 민족, 생각이 하나 되고 마음이 하나 되어 강자와 약자, 빈과 부가 하나 되어 서로가 서로를 돌보아 주는 민족으로 바뀌기를 바란다. 


 이 책은 기독교를 기독교 되게, 크리스천을 크리스천답게 존재하도록 돕는 책이다. 목회자와 신학생들과 청년들 그리고 모든 크리스천들이 성경 다음으로 애독해야 할 책이다. 또한 이 책을 읽게 되면 성경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얻게 될 것이다. 지도자가 이 책을 읽게 된다면 자신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옳은 데로 인도하게 될 것이다. 한국교회가 이 책을 통해서 부흥의 새 바람이 불기를 바란다.

  좋은 글을 쓴 짐 월리스와 청림출판사에 깊이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하나님의 가슴으로 하나님의 정치를 하는 사람들을 기다린다. 또한 변화된 조국과 가난하고 연약한 자들과 모든 사람들이 함께 웃는 그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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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 2008-10-17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나님의 정치를 위해서 하나님의 가슴을 가진 사람들이 정치를 하는 모습을 기대합니다..
하나님의 정치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