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나는 포피를 데리고 가게를 빠져나와 아파트로 가는 계단을 올라갔다. 방 네 개짜리 작은 아파트였지만, 안에는 방 스무 개는 너끈히 채울 만큼 많은 물건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리나의 부모님, 조부모님, 심지어 증조부모님이 쓰던 물건들까지 빼곡히 방을 메우고 있었는데, 낡고, 부서지고, 금이 가고, 열두 번 아니 수백 번은 더 꿰매고 덧단을 대어 너덜너덜해진 옷가지 같은 것들이었다. 엠버에 사는 사람치고 물건들을 아무렇게나 내버리는 이는 거의 없었다. 엠버 사람들은 그들이 가진 물건들을 닳아 없어질 때까지 써야 했다.

선반이 없는 빈 벽은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것들로 장식했다. 복숭아 통조림 상표, 바싹 말린 노란 호박꽃 몇 송이, 색이 바랬지만 여전히 예쁜 보라색 옷에서 찢어낸 길고 가느다란 헝겊조각 같은 것들이었다. 그림들도 있었다. 리나가 상상력을 발휘하여 그린 그림들이었다. 리나가 그린 그림들은 어딘가 엠버 시와 많이 닮아 있었다. 단지 그림 속의 건물들이 더 환하고, 더 높고, 창문이 좀 더 많을 뿐이었다.

  그림들 가운데 한 장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걸 보고, 리나는 그것을 주워 핀으로 벽에 다시 붙여 놓았다. 그리고 잠시 그 앞에 서서 그림을 바라보았다. 리나는 같은 도시를 되풀이해서 그렸다. 어떤 때는 멀리서 바라보는 도시의 풍경을 그렸고, 때로는 건물들 중 하나를 골라 세밀하게 그리기도 했다. 가끔은 상상 속 도시의 주민들을 그려 넣기도 했는데, 사람 몸을 그리는 데 리나는 영 서툴렀다. 그리다 보면 사람들의 머리가 너무 작아져 버렸고, 팔은 으레 거미 다리처럼 되기 일쑤였다. 그림들 가운데는 리나가 상상의 도시에 도착했을 때 주민들이 환영하는 장면을 그린 것도 하나 있었다. 그림 속에서 리나는 외부에서 이 도시를 방문한 최초의 손님이었다. 사람들은 리나를 제일 먼저 집으로 초대하는 영광을 차지하려고 서로 옥신각신했다.

마음속으로 상상 속 도시를 얼마나 생생하게 그렸는지 리나는 이 도시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기에 이르렀다. 실은 그럴 리 없다는 것을 리나도 알고 있었다. 엠버의 모든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엠버 시 전서』에서는 다르게 가르쳤다. “태곳적에 엠버 시는 건설자들이 우리를 위해 설립했다. 어둠의 세계 안에서 엠버 시만이 유일한 빛이며, 엠버 시의 외부는 사방으로 암흑만이 끝없이 펼쳐져 있을 뿐이다.”

리나는 엠버 시의 경계지역에 간 적이 있었다. 경계지역에 쌓인 쓰레기 더미 끄트머리에 서서 리나는 엠버 시 너머로 펼쳐진 끝없는 어둠을 한없이 바라보았다. 미지의 지대. 이 미지의 지대를 넘어 멀리 나아가 본 사람은 지금껏 아무도 없었다. 아니, 멀리 나아갔다가 되돌아온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미지의 지대로부터 엠버 시로 찾아온 사람 역시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없었다. 사람들이 아는 한은, 저 너머에는 암흑만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하지만 리나는 여전히 또 다른 도시가 존재하기를 바랐다. 상상 속 도시는 정말 아름다웠고, 손을 뻗으면 만질 수 있을 것처럼 느껴졌다. 때때로 리나는 모든 사람들을 이끌고 그곳으로 찾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러나 지금은 리나에게 다른 도시 따위는 떠오르지 않았다. 오늘만큼은 자신이 있는 바로 이곳에서 더없이 행복했기 때문이다. 동생을 소파 위에 내려놓으며 리나가 말했다. “여기서 기다려.” 그러고는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곳엔 포피의 손이 닿지 않도록 유리컵과 접시들을 넣어두는 곳으로 쓰이는 냉장고와 전기화덕이 있었다. 냉장고 위에 매달린 선반에는 냄비와 항아리, 많은 숟가락과 칼, 그리고 할머니가 언제나 태엽 감는 것을 잊어버리는 시계와 긴 통조림 들이 한 줄로 늘어서 있었다. 리나는 필요한 물건을 즉시 찾아낼 수 있도록 알파벳 순서대로 통조림을 정리해 두려 애썼지만 할머니는 항상 뒤죽박죽 섞어 버렸다. 지금도 열의 맨 끝에 콩 통조림(B)이 놓여 있고, 열의 맨 처음에 토마토 통조림(T)이 놓여 있는 것을 보니, 할머니가 또 건드린 게 분명했다. 리나는 ‘유아용 음료’라는 딱지가 붙은 통조림과 ‘삶은 당근’이라고 쓰인 병을 각각 하나씩 꺼내 뚜껑을 따서, 국물은 컵에 쏟아 붓고 당근은 접시에 담아 소파에 앉아 있는 동생에게 주었다.

포피는 턱 아래로 국물을 줄줄 흘리며 음료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근 몇 개를 먹어 치우더니 나머지 당근으로는 소파 쿠션을 쿡쿡 쑤셔 댔다. 리나는 거의 완벽하다 할 수 있을 만큼 행복했다. 적어도 오늘은 엠버에 드리운 암운에 대해 아무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내일이 되면 그토록 소망해 온 메신저가 될 테니까!

리나는 포피의 턱에 붙은 끈적이는 오렌지색 덩어리를 닦아 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모든 게 다 괜찮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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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5 ] CITY OF EMBER 시티 오브 엠버- 2장 시장에게 전하는 메시지

[연재 4 ] CITY OF EMBER 시티 오브 엠버 - 직업 배정의 날3

[연재 3 ] CITY OF EMBER 시티 오브 엠버 - 직업 배정의 날 2

[연재 2 ] CITY OF EMBER 시티 오브 엠버 - 직업 배정의 날 1

[연재 1 - episod1] CITY OF EMBER 시티 오브 엠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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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시장에게 전하는 메시지

 

 

 

 

 리나의 마음속 어딘가에서 두려움이 검은 벌레처럼 꿈틀댔다. 그러자 학교에서 화를 냈던 둔이 떠올랐다. 둔이 말했던 대로 상황이 그토록 나쁜 것일까? 리나는 그렇다고 믿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러한 생각을 애써 떨쳐 냈다.

 버들로 가로 돌아서 들어서자 리나는 다시 속도를 냈다. 그곳에서 장바구니를 팔 아래에 늘어뜨린 채 야채 가게 안으로 들어가려고 줄지어 선 사람들을 지나쳤다. 올리버 가 모퉁이에서는 세탁물 가방을 들고 힘겹게 걸어가는 세탁부들과 부서진 탁자를 치우는 사람들을 잽싸게 피해 지나갔다. 빗자루를 들고 먼지를 쓸어 담고 있던 거리의 청소부도 쌩 지나쳐 갔다. 리나는 달리며 생각했다. 운이 참 좋았어! 그토록 바라던 직업을 얻다니. 누구보다도, 둔 해로우 덕분이었다.

 집으로 서둘러 달려가는 지금, 리나는 둔이 더할 수 없이 고맙게 느껴졌다. 그리고 지하 배관터널 안에서 일할 둔의 앞날에 어떠한 위험도 닥치지 않기를 기원했다. 어쩌면 둔과 다시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리나는 둔에게 지하 배관터널에 대해 이것저것 묻고 싶어졌다. 그곳이 어떠한 곳인지 궁금했다.

 그레이스톤 가에 접어들었을 때 리나는 클레리 레인을 만났다. 아마도 온실로 가는 중이었을 것이다. 급하게 달려가는 리나를 발견한 클레리는 반갑게 손을 흔들며 큰 소리로 물었다. “어떤 직업이야?” 리나가 큰 소리로 대꾸했다. “메신저요!” 그러고는 계속해서 달려갔다.

 리나의 집은 퀼리엄 광장에 있었다. 1층은 할머니가 운영하는 털실 가게였고, 리나네는 그 위층에 살았다. 할머니 가게에 도착하자 리나는 문을 벌컥 열고 외쳤다. “할머니! 저 메신저 됐어요!”

 리나가 기쁜 소식을 안고 갑자기 뛰어 들어왔을 때 할머니는 바로 이 가게 안에 있었다. 아침에 머리 묶는 것을 깜박 했는지 사납게 부푼 할머니의 곱슬곱슬한 흰 머리가 계산대 너머로 보였다.

 할머니는 일어서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리나를 바라보았다. “너는 메신저가 아니란다, 얘야. 아직 학생이잖니.”

 “하지만 할머니, 오늘이 ‘직업 배정일’이었어요. 직업을 받았다고요. 제가 메신저가 됐어요!”

할머니는 눈을 반짝이며 계산대 위를 손으로 내리쳤다. “기억나는구나!” 할머니가 외쳤다.    “메신저라니, 정말 훌륭한 직업이지. 넌 틀림없이 잘해 낼 게야.”

 그때 리나의 어린 여동생이 계산대 뒤에서 불안정한 걸음걸이로 아장아장 걸어 나왔다. 동생은 얼굴도 둥글고 갈색 눈도 동그랬다. 아기의 머리 꼭대기에는 빨간 털실 끈으로 묶은 머리카락이 삐죽 솟아 있었다. 여동생은 리나의 무르팍을 앙증맞은 손가락으로 잡고서,    “위~나, 위~나!” 하고 언니의 이름을 불렀다.

 리나는 허리를 굽혀 포피의 손을 꼭 붙잡았다. “포피! 큰언니가 진짜 좋은 직업을 갖게 됐 어! 기쁘니 포피? 언니가 자랑스럽니?”

 언니의 물음에 포피도 나름대로 뭔가를 대답하긴 했는데, 그건 꼭 이렇게 들렸다. “하피-하피, 하피!” 리나는 웃으며 포피를 안아 올리고는 가게 안을 빙빙 돌며 춤을 추었다. 동생을 너무나 사랑한 리나는 가끔씩 가슴 한 구석이 뻐근하게 아려 오는 걸 느끼기도 했다. 아기와 할머니는 리나에게 남은 가족의 전부였다. 2년 전 기침병이 또다시 온 도시에 퍼지며 창궐했을 때, 리나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그로부터 몇 달 뒤, 포피를 낳자마자 리나의 어머니도 아버지의 뒤를 따랐다. 포피를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한 만큼 리나는 부모님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다만 그 느낌은 가슴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구멍이 뚫린 것처럼 허전할 뿐이었다.

“언제부터 시작하니?” 할머니가 물었다.

“내일이요. 내일 오전 8시까지 메신저 본부로 가서 보고 해야 돼요.” 리나가 대답했다.

“넌 유명한 메신저가 될 게야. 빠르고 유명한 메신저 말이다.” 할머니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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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
 

 시장은 숨을 짧게 쉬며 눈을 사납게 깜박거렸다. “수치스러운 행동입니다!” 시장은 둔을 사납게 노려보며 이같이 말했다. “어린애처럼 성질을 부리다니! 학생들 모두는 엠버 시를 위해 봉사할 수 있다는 것에 기뻐해야 합니다. 엠버 시는 번영할 것입니다. 모든…… 시민들이…… 최선을…… 다할 때 말입니다.” 시장은 이렇게 말하며 단호하게 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그러더니 천천히 한 사람 한 사람을 노려보았다.

이때 느닷없이 둔이 거리낌 없이 말했다. “그렇지만 엠버는 번영하고 있지 않잖아요.” 둔이 소리쳤다. “모든 것이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고요!”

 “조용!” 시장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정전 말이에요!” 둔은 굽히지 않고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둔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점차 전깃불이 안 들어오고 있어요! 거기에다 물자 부족은 또 어떻죠. 물건들이 죄다 부족하다고요! 만약 이러한 문제에 대해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말 거예요!”

 둔의 말을 듣고 있던 리나의 가슴은 두방망이질 쳤다. 도대체 둔은 뭐가 잘못된 걸까? 왜 이렇게 불같이 성을 내는 거지? 둔은 모든 일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여. 늘 그랬던 것처럼 말이야.

 쏜 선생님이 한걸음에 다가와 둔의 어깨를 잡았다. “이제 그만 앉아라.” 선생님이 조용히 말했다. 하지만 둔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고집스럽게 서 있었다.

시장이 둔을 쏘아보았다. 그렇게 얼마 동안 잠자코 있었다. 그러더니 가지런한 회색 이를 드러내고 씩 웃으며 물었다. “쏜 선생님, 이 젊은이는 누굽니까?”

 “둔 해로우입니다.” 둔이 대답했다.

 “기억해 두겠어요.” 시장이 말했다. 오래도록 둔을 노려보던 시장은 이윽고 다시 학생들을 돌아보며 다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여러분 모두 축하합니다.” 시장이 말했다. “엠버의 새로운 일꾼이 된 걸 환영합니다. 쏜 선생님, 학생 여러분. 고맙습니다.”

시장은 쏜 선생님과 악수를 하고는 그 자리를 떠났다. 학생들 또한 외투와 모자들을 챙겨 들고 하나 둘 교실을 나가기 시작했다.

 누군가 리나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리나가 화들짝 놀라 몸을 돌렸다. 등 뒤에는 둔이 서 있었다. 둔의 갸름한 얼굴이 오늘따라 유난히도 핼쑥해 보였다. “너, 나랑 거래하지 않을래?” 둔이 불쑥 물었다.

 “거래?”

 “직업을 바꾸잔 말이야. 메신저 같은 일이나 하면서 내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거든. 난 엠버 시를 구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어. 쓸데없는 뜬소문이나 전달하며 돌아다니고 싶지 않아.”

리나는 멍하니 둔을 바라보았다. “지금 차라리 배관 수리하는 일을 하겠다는 거야?”

 “사실 내가 진짜 되고 싶은 건 전기 기술자 보조였어.” 둔이 말했다. “하지만 쳇이 바꿀 리 없잖아. 그 다음이 배관수리공이었어.”

 “하지만 왜?”

 “그야 지하 배관터널 안에 발전기가 있으니까.” 둔이 대꾸했다.

물론 리나도 발전기가 무엇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발전기는 알 수 없는 신비한 방법으로 강물의 흐름을 엠버 시가 사용하는 동력으로 바꾸어 냈다. 플러머 광장에 서 있을 때면 밑에서 요란하게 우르르 울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발전기를 봐야 해. 나에게…… 내게 발전기에 대한 계획이 있거든.”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으며 둔이 말했다. “어때, 바꿀래?”

 “당연하지!” 리나는 환호성을 질렀다. “메신저야말로 내가 가장 원하던 직업이라고!” 그리고 리나는 메신저가 결코 쓸모없는 직업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연락하고 싶을 때마다 기꺼이 도시의 절반을 걸어갈 거라고 기대하기는 힘들었다. 메신저는 엠버 시민들 하나하나를 연결해 주는 직업이었다. 어쨌든 이 일이 중요하든 보잘것없든 메신저는 리나에게 딱 걸맞은 일자리였다. 리나는 달리기를 매우 좋아했다. 끝도 없이 달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리나는 도시의 구석지고 후미진 곳을 탐험하는 걸 좋아했는데, 그것이 바로 정확히 메신저가 해야 하는 일이었다.

 “좋아, 그럼.” 둔은 이렇게 말하며 리나에게 꼬깃꼬깃 구겨진 종이를 건넸다. 아까 발길질했던 것을 도로 주워온 것이 틀림없었다. 리나도 호주머니에서 종잇조각을 꺼내 둔에게 건넸다.

 “고마워.” 둔이 말했다.

 “천만에.” 리나가 대답했다. 리나는 기뻐서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처럼 행복할 때면 리나는 언제나 달리고 싶었다. 둔과 헤어져 한꺼번에 세 걸음씩 걷다가 이내 속도를 높여 집을 향해 브로드 가를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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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직업 배정의 날 - 두번째 이야기 

시장은 마침내 가방을 집어 들고 끈을 풀어 열었다. “그럼, 시작합시다. 단순하고도 간단한 과정이죠. 한 번에 한 사람씩 앞으로 나오세요. 가방에 손을 넣고 안에 들어 있는 종이쪽지 중 한 장을 꺼낸 다음, 큰 소리로 읽으면 됩니다.” 시장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목 아래 살들이 들락날락거리며 울룩불룩 부풀었다. “제일 먼저 뽑고 싶은 사람?”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리나는 책상 위를 뚫어져라 내려다보았다. 긴 침묵이 흘렀다. 그때 리나의 단짝 친구, 리지 비스코가 벌떡 일어섰다. “제가 첫 번째로 뽑고 싶습니다!” 리지는 새된 목소리로 숨차게 내뱉었다.

 “좋습니다. 앞으로 나오세요.”

 리지는 걸어 나가 시장 앞에 섰다. 시장 옆에 선 리지는 오렌지색 머리카락 때문에 한층 더 밝게 빛나는 불꽃 같았다.

 “자, 고르세요.” 시장은 한 손으로 가방을 내밀고, 방해할 생각이 없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다른 한 손은 등 뒤로 가져갔다.

 리지는 손을 가방 안에 넣어 단단히 접힌 네모난 종이를 꺼냈다. 그리고 조심스레 종이를 펼쳤다. 리나는 리지의 표정을 볼 수 없었지만, 리지가 큰 소리로 쪽지를 읽을 때 실망하는 목소리는 또렷이 들을 수 있었다. “보급창고 점원.”

 “아주 좋습니다. 없어서는 안 되는 직업이죠.” 시장이 말했다.

 리지는 가만히 앉아 있는 일을 좋아하지 않았다. 리지는 뭔가 다른 일에 더 어울릴 거야, 리나는 생각했다. 그래, 메신저 같은 거. 사실 메신저는 리나가 바라는 직업이었다. 메신저는 온종일 엠버 시 구석구석을 뛰어다니며 모든 장소에 가 보고,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었다.

 다음은 올리 고든 차례였다. 올리는 건물수리공 보조를 뽑았는데, 올리에게 정말 잘 어울리는 일이었다. 힘이 센 올리는 여자지만 힘든 일을 전혀 꺼리지 않았다. 빈디 찬스는 온실 도우미가 되었다. 빈디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면서 리나에게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앞으로 빈디는 클레리 아줌마와 함께 일하게 되겠구나, 리나는 생각했다. 다행이다. 지금까지는 아무도 진짜 나쁜 직업을 뽑지 않았다. 어쩌면 올해는 나쁜 직업들이 아예 하나도 없을지도 몰랐다.

이런 생각에 미치자 리나는 용기가 생겼다. 게다가 지나치게 긴장을 해서 그런지 배까지 살살 아파 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빈디가 자리에 앉고 시장이 “다음!” 이라는 말을 꺼낼 새도 없이 리나는 벌떡 일어나 앞으로 걸어나갔다.

빛바랜 녹색 천으로 만든 작은 가방은 검은색 줄로 입구가 다물어져 있었다. 리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가방 안으로 손을 집어넣고 종잇조각들을 만지작댔다. 높은 건물 꼭대기에 서서 허공으로 한 발을 내딛는 것과 같이 초조한 마음으로 리나는 쪽지 하나를 집어 들었다.

리나가 종이를 펼쳤다. 글자들은 검은색 잉크로 작고 꼼꼼하게 씌어 있었다. 배관수리공, 글자들은 그렇게 적혀 있었다. 리나는 그 글자들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큰 소리로 외쳐 주세요.” 시장이 요구했다.

 “배관수리공.” 리나는 목이 메어 들릴락 말락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좀 더 크게.” 시장이 다그쳤다.

 “배관수리공이요.” 리나가 다시 대답했다. 목소리는 커졌지만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교실 여기저기에서 동정어린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리나는 땅바닥만 쳐다보며 책상으로 돌아와 자리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마침내 마지막으로 남은 한 사람이 의자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갔다.

둔이었다. 정신을 집중하느라고 얼굴을 찌푸려 짙은 눈썹이 하나로 모아져 있었다. 리나는 둔이 양 옆구리에서 두 손을 꽉 움켜쥐는 것을 보았다.

 둔은 가방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마지막 남은 종잇조각을 꺼냈다. 그리고 한동안 손 안에 종이를 힘껏 거머쥔 채 잠자코 서 있었다.

 “계속하세요.” 시장이 독촉했다. “쪽지를 읽으세요.”

둔은 꼬깃꼬깃한 종이를 펼쳐 읽었다. “메신저.”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지더니 둔은 종이를 손으로 꽉 쥐어 사정없이 구기고는 바닥으로 거칠게 내동댕이쳤다.

리나는 숨이 막혔다. 온 교실이 놀라서 술렁거렸다. 메신저 같은 직업을 받고 성낼 사람이 누가 있을까?

 “이런 나쁜 행동을!” 시장이 벌컥 소리를 질렀다. 시장의 눈이 불거지더니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얼른 자리로 돌아가세요.”

 둔은 구겨진 종이쪽지를 한쪽 구석으로 찼다. 그리고 책상으로 성큼성큼 걸어간 다음 자기 몸을 내동댕이치듯 자리에 털썩 앉았다.


[연재 2 - 직업 배정의 날] CITY OF EMBER 시티 오브 엠버

[연재 1 - episod1] CITY OF EMBER 시티 오브 엠버

 

★ <시티 오브 엠버city of ember> 출간을 앞두고, 함께읽기 이벤트를 합니다.
연재글을 보고 의견을 마구마구 달아주세요.
총 30명에게 10월 21일 책을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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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벼락 2008-09-25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조금씩 감질나게 읽는 재미가 꽤 괜찮네요. 흥미 진진한 이야기 전개... 책도 영화도 모두 기대됩니다.
 


시티 오브 엠버city of ember가 영화로, 또 으로
찾아왔습니다.

우선 영화를 보시기 전에 책을 먼저 소개할까 합니다.
원판불가의 법칙, 원작불변의 법칙 아시죠?

읽는 재미와 함께 암울한 미래예언적인 장면을 그려내면서도,
희망과 교훈을 던져주는 매우 흥미롭고 매력적인 작품
시티 오브 엠버를 먼저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이 포스트에 트랙백(먼댓글)을 걸어주시는 분들을 선발해서 책을 보내드립니다.

또, 보름 동안 연재되는 글에 댓글을 달아주시는 분 30명에게  책을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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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나오기 전에 미리 내용을 훔쳐보고 싶은 맘 급한 독자님들은
마니마니 찾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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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일 2008-09-25 0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재미 있을 것 같네요. 앞으로 어떻게 이야기가 나갈지 궁금하네요.
영화보다 먼저 책읽기................엠버시를 안내문, 연재 1 궁금중을 ㅇ유발하는 듯
앞으로 많은 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