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직업 배정의 날 - 두번째 이야기 

시장은 마침내 가방을 집어 들고 끈을 풀어 열었다. “그럼, 시작합시다. 단순하고도 간단한 과정이죠. 한 번에 한 사람씩 앞으로 나오세요. 가방에 손을 넣고 안에 들어 있는 종이쪽지 중 한 장을 꺼낸 다음, 큰 소리로 읽으면 됩니다.” 시장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목 아래 살들이 들락날락거리며 울룩불룩 부풀었다. “제일 먼저 뽑고 싶은 사람?”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리나는 책상 위를 뚫어져라 내려다보았다. 긴 침묵이 흘렀다. 그때 리나의 단짝 친구, 리지 비스코가 벌떡 일어섰다. “제가 첫 번째로 뽑고 싶습니다!” 리지는 새된 목소리로 숨차게 내뱉었다.

 “좋습니다. 앞으로 나오세요.”

 리지는 걸어 나가 시장 앞에 섰다. 시장 옆에 선 리지는 오렌지색 머리카락 때문에 한층 더 밝게 빛나는 불꽃 같았다.

 “자, 고르세요.” 시장은 한 손으로 가방을 내밀고, 방해할 생각이 없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다른 한 손은 등 뒤로 가져갔다.

 리지는 손을 가방 안에 넣어 단단히 접힌 네모난 종이를 꺼냈다. 그리고 조심스레 종이를 펼쳤다. 리나는 리지의 표정을 볼 수 없었지만, 리지가 큰 소리로 쪽지를 읽을 때 실망하는 목소리는 또렷이 들을 수 있었다. “보급창고 점원.”

 “아주 좋습니다. 없어서는 안 되는 직업이죠.” 시장이 말했다.

 리지는 가만히 앉아 있는 일을 좋아하지 않았다. 리지는 뭔가 다른 일에 더 어울릴 거야, 리나는 생각했다. 그래, 메신저 같은 거. 사실 메신저는 리나가 바라는 직업이었다. 메신저는 온종일 엠버 시 구석구석을 뛰어다니며 모든 장소에 가 보고,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었다.

 다음은 올리 고든 차례였다. 올리는 건물수리공 보조를 뽑았는데, 올리에게 정말 잘 어울리는 일이었다. 힘이 센 올리는 여자지만 힘든 일을 전혀 꺼리지 않았다. 빈디 찬스는 온실 도우미가 되었다. 빈디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면서 리나에게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앞으로 빈디는 클레리 아줌마와 함께 일하게 되겠구나, 리나는 생각했다. 다행이다. 지금까지는 아무도 진짜 나쁜 직업을 뽑지 않았다. 어쩌면 올해는 나쁜 직업들이 아예 하나도 없을지도 몰랐다.

이런 생각에 미치자 리나는 용기가 생겼다. 게다가 지나치게 긴장을 해서 그런지 배까지 살살 아파 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빈디가 자리에 앉고 시장이 “다음!” 이라는 말을 꺼낼 새도 없이 리나는 벌떡 일어나 앞으로 걸어나갔다.

빛바랜 녹색 천으로 만든 작은 가방은 검은색 줄로 입구가 다물어져 있었다. 리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가방 안으로 손을 집어넣고 종잇조각들을 만지작댔다. 높은 건물 꼭대기에 서서 허공으로 한 발을 내딛는 것과 같이 초조한 마음으로 리나는 쪽지 하나를 집어 들었다.

리나가 종이를 펼쳤다. 글자들은 검은색 잉크로 작고 꼼꼼하게 씌어 있었다. 배관수리공, 글자들은 그렇게 적혀 있었다. 리나는 그 글자들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큰 소리로 외쳐 주세요.” 시장이 요구했다.

 “배관수리공.” 리나는 목이 메어 들릴락 말락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좀 더 크게.” 시장이 다그쳤다.

 “배관수리공이요.” 리나가 다시 대답했다. 목소리는 커졌지만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교실 여기저기에서 동정어린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리나는 땅바닥만 쳐다보며 책상으로 돌아와 자리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마침내 마지막으로 남은 한 사람이 의자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갔다.

둔이었다. 정신을 집중하느라고 얼굴을 찌푸려 짙은 눈썹이 하나로 모아져 있었다. 리나는 둔이 양 옆구리에서 두 손을 꽉 움켜쥐는 것을 보았다.

 둔은 가방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마지막 남은 종잇조각을 꺼냈다. 그리고 한동안 손 안에 종이를 힘껏 거머쥔 채 잠자코 서 있었다.

 “계속하세요.” 시장이 독촉했다. “쪽지를 읽으세요.”

둔은 꼬깃꼬깃한 종이를 펼쳐 읽었다. “메신저.”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지더니 둔은 종이를 손으로 꽉 쥐어 사정없이 구기고는 바닥으로 거칠게 내동댕이쳤다.

리나는 숨이 막혔다. 온 교실이 놀라서 술렁거렸다. 메신저 같은 직업을 받고 성낼 사람이 누가 있을까?

 “이런 나쁜 행동을!” 시장이 벌컥 소리를 질렀다. 시장의 눈이 불거지더니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얼른 자리로 돌아가세요.”

 둔은 구겨진 종이쪽지를 한쪽 구석으로 찼다. 그리고 책상으로 성큼성큼 걸어간 다음 자기 몸을 내동댕이치듯 자리에 털썩 앉았다.


[연재 2 - 직업 배정의 날] CITY OF EMBER 시티 오브 엠버

[연재 1 - episod1] CITY OF EMBER 시티 오브 엠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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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벼락 2008-09-25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조금씩 감질나게 읽는 재미가 꽤 괜찮네요. 흥미 진진한 이야기 전개... 책도 영화도 모두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