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의 경적 소리도 들리지 않고, 사람들의 고함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던져져 있지만, 다른 시공을 떠도는 기분. 이어폰을 꽂고 거리를 다닐 때면 나는 그런 짜릿한 경험을 한다. 그 순간이라면 뒤에서 차가 나를 들이받고 그냥 가 버려도 웃으며 죽을 수 있을 것 같다. 이건 그냥 꿈이려니, 하면서.

끝이 없대도 갈 수 있을 것 같은 길, 그러나 출근길이 짧아서 두 곡이면 아쉽게도 가게 도착이다. 오늘 아침엔 eels 의 all in a day's work과 agony 두 곡을 들으면서 왔다. agony가 막 끝나고 all in a day's work을 시작할 때였다. 나는 사람과 차로 한창 붐비는 시장통에 접어 들었는데, 절망한 아이의 체념의 울음 같은 짧은 도입부의 기타 소리가 끝나고 잠든 세포를 모조리 깨워 일으킬 것 같은, 강하진 않지만 호소력 있는 드럼 소리와 함께, 금속성의 이펙트 입힌 나른한 목소리가 흘러 나오자 그만 정신이 아뜩해졌다.

순간 뒤에서 차 한 대가 다가오는 기운이 느껴졌는데, 이런 음악을 들으면서 종종거리며 그 차를 피한다는 게 좀 구차하게 느껴졌다. 그냥 걸어야지. 뒤를 돌아보고 싶지도 않았고, 주변 사람들을 쳐다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 대신에 귀에서 이어폰이 빠질까 더 꼭 끼워 넣고, 웃옷에 달린 모자를 그 위에 덮어 썼다. 더욱 깊은 eels의 세계. 그 때, 뒷허벅지에 받치는 강한 충격으로 내 몸은 앞으로 픽, 엎어졌고, 곧 그 엎어진 몸 위로 부드러우나 육중한 것이  내 뼈를 으스러뜨리고, 내 몸을 터뜨리면서 지나갔다.

아, 내가 죽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몸이 가벼워져 드럼 소리에 맞춰 행진이라도 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고,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소리가 비는 곡과 곡 사이로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고, 그 비명소리에 묻혀 음악이 사라지지나 않을까 걱정을 했으나, 음악은 다시 이어졌고, 나는 자꾸 몸이 가벼웠고, 자꾸 웃음이 났고, 기분이 아주 좋았다. 그렇게 좋은 기분으로 가게에 도착했고, 보니 나는 죽지도 않았고, 청소하고 커피 마시고, 이렇게 컴 앞에 앉아 이따위 잡글이나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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쎈연필 2003-12-25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재밌는 글이네요. 제가 아예 몽상가라서, 이런 글이 재밌단 말예요. 제 서재에 코멘트 달려있길래 놀러왔습니다. 이혜경의 소설 리뷰 참 잘 읽었습니다. 당장 읽고 싶어지는군요. 그런 내용인 줄 몰랐거든요. 메리 크리스마스하세요.

icaru 2004-04-24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정말......이따위 잡글이 아닌걸요^@^

soulkitchen 2004-04-24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