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때, 크고 힘센 것들에 대한 동경보다 작고 여린 것들에 대한 동정이 항상 더 컸었다. 세상에는 내가 이겨 극복해야 할 상대보다 내가 보살펴 키워야 할 대상이 더욱 많았고, 그래서 언제나 내 속에 내 보살핌을 받을 작은 것들을 꿈꿨었다. 그렇다고 뭐 어린 동생들을 잘 돌봤냐면 그런 건 아니고, 동네의 작은 개들을 잘 보살폈냐면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엄지손가락만한 사람 닮은 생물체 같은 게 있어서 그런 걸 좀 보살피며 키워봤음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근데 지금 일곱 살이 된 우리 조카 우석이를 보면 언제나 크고 힘센 것들을 좋아하고 그것들을 동경한다. 세상엔 자기보다 힘이 센 것들 투성이고, 모두 자기가 이겨내야 할 존재처럼 느껴져선가. 아무튼 사내아이들은 모두 마음 속에 거인 하나씩을 키우고 있는 것 같다. 선하고 정의로워 폭력을 행사하지 않으면서도 절대적 힘을 가진 존재. 그러나 고립무원의 아이같아서 자신을 거의 어버이처럼 좋아하고 따르는 존재.

이 만화영화는 어린 시절 누구나 꿈꾸었을 그런 존재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 소년은 우연히 집 뒤의 야산에서 철을 먹는 20미터가 넘는 로봇 하나를 발견하고 그 로봇에게 말을 가르치면서 그와 친구가 된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이 흔히 그렇듯 그 로봇은 인류의 안위를 위협할 수 있다하여 국가에 의해 제거대상이 된다. 죽여야 한다느니 살려야 한다느니, 모든 재난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 사샤샥 지나고..결국 우리의 '아이언 자이언트'는, 지구를 지키고 목숨을 잃는다.

이런 유치하고 뻔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이 타이틀을 빌려 준 사람의 말마따나 어린 시절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느꼈던 감동의 물결'을 다시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지금은 그냥 심상하게 좋았다는 한 마디로 끝내고 말지만 사실 영화를 보면서는 죽은 줄 알았던 자이언트가 마지막에 부활의 조짐을 보이며 눈을 끔벅일 때는 세상에 박수까지 쳐대며 눈물을 터뜨렸었다. 큰언니가 얼마 전 "왕의 귀환"을 극장에서 보면서 (거의 10년 만의 극장나들이였댄다) 혼자 마구 울면서 박수를 쳐대 경악을 금치 못했었는데, 그 짓을 내가 한 것이다. 잠시 그 때 얘기를 하자면 영화를 다 보고 나와서 박수를 왜 그렇게 쳐댔냐, 부끄럽게..그랬더니, 요즘 사람들이 정서가 메마른 거다, 저런 영화, 저런 장면은 80년대 정서라면 관객전원의 기립박수감이다. 그러는 거다..나원참..

아무튼 이 만화영화, 참 괜찮았다. "아이언 자이언트"의 모습도 요즘의 럭셔리한 로봇 같지 않게 얼마나 순박하게 생겼던지, 잠시 자다 깨 영화의 끝부분만 본 우리 우석이도 대번에 따라 그릴 정도였다. 개인적으로 사람들이 자이언트가 죽기 전에 (보통은 죽고 나서 그러는데), 그에 대한 오해를 풀어 참 고맙고 좋았다. 그래서 아이언 자이언트 그 친구는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 한 자락 안고 갔다. 그러니 부활해도 사람한테 나쁜 짓은 안 할 테지..휴우..다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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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3-16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우리편 로봇이 막 나쁜 놈들이랑 싸울 때, 저러다 영원히 죽으면 어떡허나, 손에 땀을 쥐고 그랬었어. 그래서 우리편 인조인간이 죽어 우주 장례식 치룰 때, 그때 무진장 슬펐지. 우주선 문이 열리고 꽃으로 장식한 죽은 인조인간이 바깥으로 천천히 던져지고 나머지 대원들 모두 일동 거수 경례! 그 만화 제목이 뭔지 잘 모르겠는데 암튼 그때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고 난닝구 밑자락으로 눈물을 훔치고 말았어. 고딩 2학년 때였을 걸.
어, 여기 사무실이고 난 이제 또 한 타임을 뛰고 퇴근해야지. 머리는 풀었고 이제 좀 인간다워보여. 아, 남자 미용사가 머리 다듬어주는데 천근만근 눈이 감겨오고, 졸려서 죽을 뻔 했따. 특히 미용사가 머리 만져주면 디게 기분 좋더만. 아, 이 순간이 좀만 더 오래, 오래, 했었는데 갑자기 휘리릭 보자기가 걷어지고 "수고하셨습니다" 그러네. 아쉬버...오널부터 동네 미용실을 피해 빙빙 돌아다닐 생각하니 좀 그러쿠만. 아무튼, 500원 더 쓰고 기계면이 아닌 손면으로 된 짜장을 시켰어. 근데 짱개 아찌 왤케 안 오냐...그저께 한양중화요리,라고 아리바시에 인쇄돼 있길래 중국요리, 가 맞다고 구랬더니 삐졌나...흠...

soulkitchen 2004-03-16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천하의 정복돌(박복돌인가 ^^a) 성님도 우실 때가 다 있구나. 무슨 만활까 재미있겠는데요..크헐헐..남자미용사..거, 아귀힘이 좋아서 머리 감겨줄 때 온몸이 찌릿찌릿하지 않소, 성님. 저도 그런 때 좀만 더, 좀만 더..그러는데..흘흘..아, 그나저나 그 개터럭모자같은 헤어스탈을 못 봐서 안타깝습니다요. 거 돈들여 한 머리 웬만하믄 걍 두시지 그랬어요. 예전에, 울 가게 단골이던 힙합소녀 아정 양이라고 있었는데, 그 친구 머리갖고 생 지랄발광을 하다가 빡빡 밀어버린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내가, 머릴 왜 그렇게 괴롭히냐고 그랬더니, 사는 게 하두 심심해서 사람들이라도 자기 머릴 보고 즐거우라고 그런다네요. 어떤 날 그 친구랑 같이 시내를 댕기는데, 그땐 어떤 머리였더라 암튼 그때도 좀 파격적이었는데 어떤 아저씨가 지나가시다가 "저 년, 저거 대갓빠리 좀 봐라." 그러시는 거 있죠. 와..저 정말 충격먹었어요. 대갓빠리라니..근데 그 아정이란 친구는 그냥 씨익~웃어요. 참 별 인간 다 있죠. 아, 갑자기 아정이 보고 싶네..훗. 근데 복돌성, 짱꿰 총각의 자존심을 건드렸구만요. 짜장면 제때 오긴 왔어요? ^^

비발~* 2004-03-16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왜 다 짜장이다냐... 나도 점심을 짜장 먹었는데... 그게 근데 배가 도무지 꺼지질 않네. 에공, 저녁은 다 먹었다. 아, 오날도 어쩌면 뽁스랑 더불어 날새기를 할지도 모르겠군~ 그럼 틈틈이 보더라고~ 휘리릭~

비발~* 2004-03-16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쏠키 축하해! 어느 새 1000이 넘었네?

19 | 1001


비로그인 2004-03-16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씨 짜장 먹고 싶어요. 갑자기 카운트가 있어서 에러인줄 알았습니다. 내 아침 짜장은 없으닝께 짜파게티라도 먹어야겠습니다. 우이쒸~ 1,000원 안갚은 우라질이 "자기야~"우웩!!에옥질 나올라해...케케케 여튼 비발샘 같이 오늘 밤을 보내실랑가요....

비로그인 2004-03-16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빠이, 이빠이를 외친 덕분으로 좀 전에 먹은 짜장은 곱빼기를 능가하리만큼 많았습니다. 물론, 탱글탱글한 면발이 죽여줬죠. (짜장이여, 영원하리...성호긋고) 제 친구 하나가 섬에가서 굶어죽으려고 선창가에서 배를 기다리다 마지막으로 짬뽕을 하나 시켰습니다. 그런데 그 맛이 이루말할 수 없이 훌륭하고 비극적인 세상이 그렇게 아름다와보일 수가 없더라는 겁니다. 즉각, 이 친구, 올라왔습니다. 그래서 지금 잘 살고 있는지 워쩐지 그건 모르겠지만 난 정말이지 짬뽕, 짜장면 증말로 좋슴데이~ 짜장묻은 입주면 한 번 닦으며, 씨익~ 아무튼, 뽁스~ 벌써 1000이 넘어버린거여? 거참, 요새 밤이면 밤마다 레이저를 뿜으며 서재질을 하더니 음...하이한 영업수완 덕분에 신도들이 꽤 늘어난 모냥이구먼. 암튼, 추카혀.

비로그인 2004-03-16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이게 뭐여. 뽁스가 아니고 쏠키였떠? 하이고야..나 미쵸. 왜 근대여. 오널 일이 좀 많았더니 헛것이 다 뵈고. 암만혀두 북망산천, 예약해야겠슴돠. 암튼시 쏠키, 추카혀. (토닥토닥)

soulkitchen 2004-03-17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정말 그러네요..1,000명이 넘었었네..히..좋아라..^^ 축하해주셔서들 고마워요.

2004-03-17 12: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4-03-17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여그 사무실에서 밥 불러먹고 이제 나가야 쓰겄는디 훔냐...비가 올 것도 같고 말여. 나 스물아홉살 때 학습지 교사할 땐 차가 없어 걸어 댕겼거던. 차 있넌 동료들도 죽어라, 하는데 차 없넌 놈은 몸으로 때울랑게 을매나 팍팍허겄어. 언젠가 눈보라가 심하게 휘날리는 날이었는데 수업시간에 맞춰 느릿느릿 걷다보니까 왠 식당의 낡은 간판이 하나 덜렁거리네. 그 간판 우러러 보고 있자니 이렇게 살바엔 차라리 죽는 게 낫다, 보험도 들어놨겄다 간판아 날 쳐다오~ 그 밑에서 쪼글트리고 앉아 있다가 눈보라 땜시 도저히 눈을 못 뜨고 택시 불러 타고 열나게 수업 들어가던 때가 있었는데...그리하야 그 때보단 지금은 흐느적흐느적 유유자적 돈을 벌곤 있지만, 아...구때 생각허면 아찔...

soulkitchen 2004-03-17 1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ㅠ,,ㅠ 성님 얘길 읽자니 몇 년 전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저도 그 때 차를 샀다는 거 아닙니까. 차 없으니 너무 서러워서. 그 차, 살 때도 좀 나이가 든 놈이었는데, 지금은 쭈구랑바가지가 다 됐어요, 훗..그래도 제 물건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놈입니다. 저도 학습지 하면서 이거, 보험도 들어 놨겠다 가볍게 사고나 함 내서 몇 달 쉬어볼까..하는 생각 많이도 했더랬는데..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도 나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애들도 예뻤고, 엄마들도 별난 몇 명 빼곤 다 좋았고..뭣보다도 가게에만 계속 틀어박혀 있으니 그 때처럼 좀 밖으로 나다니고 싶기도 하고 그러네요.

비로그인 2004-03-17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크...우리같은 자해공갈단들이 많다는 건 한국사회의 복지수준이 매우 낮다는 거여. 암튼시 학습지 교사할 땐 진짜 뭐, 4대 보험같은 건 아예 꿈도 꿀 수 없었고 프로테이지 36부터였던가? 그것만 먹고 들어갔는데 일은 힘들었지만 대개 학부모들은 좋으신 분덜이 많았어. 찌깐 넘들은 대략 수업시간이 1시간씩이기 땀시 구냥 퍼질러 앉아 책얘기, 겜얘기, 만화얘기도 하고 그랬던 거 같어. 독서학원에서 근무할 땐 한참 디지몬이 유행이었고 얘덜 겁나게 디지몬 스티커 좋아해서 수업 태도 존 넘들한테 성과물로 스티커 붙여주기가 일이었뜸. 그거 50개 모이면 책 한권씩 사주고...히히히. 선생님 중에서 아토즈 타고 다니시는 분이 계셨는데 왼손은 운전대 잡고 손가락 사이에 수첩 끼우면서 오른손은 휴대전화 들고 전화하면서 골목길을 누비고 다니는데 어우...옆에 탄 내가 아슬아슬해서 몸이 다 빳빳해지더라고. 암튼, 언제 시간나면 쌤이랑 뽁스랑 나랑 드라이브 좀 시켜조~ 울덜이 타면 좀 그 녀석 좀 겔겔거릴래나. 예전에 철없을 때 친구 오토바이 타고 부안 변산해수욕장 내려갔었는데 걔가 내 앞에서 정우성이 레간자(?) 광고 찍으면서 모래사장에 '사랑해' 라고 쓰쟎어. 그거 흉내내려고 해수욕장을 죄다 갈았어. 즉각 해안경비대 아찌들한테 걸려서 헬맷으로 우리 대가리 늘씬하게 읃어맞고...에이휴...그땐 왜 그렇게 살았는지.

비발~* 2004-03-17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두들 들어왔는감? 뽁스는 출근하고? 아, 이제 쬠 정신이 나는군. 집에 들어오자마자 곯아떨어지고 말았으. 근데 왜 이렇게 날씨가 추워지는 건지? 낼 나갈 사람들 옷차림 단단히 해야겠군. 모두 옛날 생각에 가슴 저릿저릿하고 있는 모양인데, 다른 멋있는 일 없으까, 앞으로 맹길?

비로그인 2004-03-18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간반 복돌이 출석요~ 뽁스 오널도 수고! 아, 날이 이렇게 추워도 대세의 흐름을 막을 순 없지 않캈시요? 쿠하하하...아, 지금 전 꼬창삼겹살에 쐬주 한 잔 걸쳤음, 하네요. 어우, 같은 동네 사는 친구는 회사를 며칠 쉬고 있는데 이 따식, 전화도 안 받고 말야...죙일 어델 쏘다니는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