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권커니 잣커니 할 일도 없이 혼자 호젓하게 맥주를 마신 오늘 같은 날엔, 왠지 쓸쓸해져 내 몸을 갖고 좀 놀아도 본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그런 놀이의 끝은 더욱 쓸쓸하다. 세상에, 내 몸 하나만 남겨진 것 같다. 하지만 괜찮다. 이 노래만 들려온다면. 내가 정말 무서운 건,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보다, 더 이상 어떤 소리도 들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늙어 아무 것도 안 들리게 되었는데, 기억력까지 현저히 감퇴되어 이 노래의 가사를 눈 앞에 두고도 이 노래를 더이상 떠올리지 못할 때, 그때는 안락사 시켜 달라고 해야지.
조그만 공중전화 박스 안에서 사람들을 보면 / 난 유리로 만든 배를 타고 낯선 바달 떠도네 / 새까만 동전 두 개만큼의 자유를 가지고 / 이분 삼십초동안의 구원을 바라고 있네 / 전화를 걸어봐도 받는 이 없고 / 난 유리로 만든 배를 탄 채 떠도네 / 벅찬 계획도 시련도 없이 살아온 나는 / 가끔 떠오르는 크고 작은 상념을 가지고 / 더러는 우울한 날에 너를 만나 술에 취해 말을 할땐 / 나와는 관계없는 이야기로 시간은 흐르고 / 뜻없는 웃음으로 남겨진 앙금을 씻어버리는 / 그런 생활에 익숙해져 / 우울한 날엔 거리에서 또 다시 공중전화에 들어가 / 사람을 보니 난 유리로 만든 배를 타고 / 낯선 바다를 떠도네 / 거리에 흐르는 유리로 만든 배를 타고 / 낯선 바다를 떠도네
처음 이 앨범을 테잎으로 가지고 있었을 때에 즐겨 듣던 곡들은 "시청앞 지하철 역에서", "가을은", "사랑해요", "길을 걸으며" 같은 전형적인 동물원의 곡들이었는데, 테잎이 늘어질대로 늘어져 더이상 듣지 못하게 되었을 때, CD는 이미 절판되어 구하기도 힘들었을 때에 듣고 싶어 미치겠던 곡은 오직 저 "유리로 만든 배"였다.
유준열(이 부르는 게 맞다면)의 목소리는, 이거 가수 맞나 싶다. 듣다 보면 좀 답답한 것이, 듣는 내가 자꾸 흠흠,,하며 목청을 가다듬게 되는 그런 목소리다. 게다가, 이 노래를 따라 부를라치면 이건 그냥 염불하는 것 같다. 내가 노래를 못하는 까닭도 있지만 이 노래가 워낙에 높낮이가 없이 그냥 심심허니 그렇다. 목소리도 그저 그런 그가 자기 입맛에 맞게 만들어 놓은 노래가 나는 뭐가 그리 좋은 것일까. 2003년 4월 7일, 나는 드디어 이 앨범을 CD로 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