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세스 바리 - 제2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박정윤 지음 / 다산책방 / 2012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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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바리’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그 자체로도 호기심이 마구마구 터졌다. 가냘픈 모습의 한 소녀, 올이 풀어진 스웨터를 입고 있는 소녀는 왠지 애처롭다 못해 뭔지 모를 스산함이 느껴졌다. 어떤 이야기일지 좀처럼 감도 잡을 수 없고, 알 수 없음에도 ‘바리데기’를 모티브로 한 이야기 자체가 흥미롭게 느껴졌다. 신간 소개에서 <프린세스 바리>를 보자마자 예전에 몇 번이나 읽었던 <바리데기>(황석영, 창비 2007)가 떠올랐다. 처음 알게 된 ‘바리데기’는 신화 속 특히 무속신화로 전래되는 인물이란 점에서 무척 인상적이었다. 또한 기존에 전래동화라며 읽었던 그 어떤 이야기보다 새롭고, 뒤늦은 만큼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아비를 위해 신비의 묘약을 찾아 저승으로 떠났다는 신화 속 ‘바리데기’가 저 멀리 돌고 돌아 우리 곁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그가 가져온 신비의 묘약은 어쩌면 지금의 우리들을 살릴지도 모르리란 막연한 기대, 착각, 환상이 내 속에서 툭 터져나왔다.

 

<프린세스 바리>를 읽으면서 ‘바리’, ‘산파’, ‘토끼’, ‘나나진’ 등의 인물들의 그 파란만장한 삶이 전개될수록, 그들의 이야기가 교차되고 이야기의 윤곽이 드러날수록 더욱 마음을 졸였다. 특히 기묘한 분위기, 그로테스크한 어둠의 그림자가 글을 펼친 초반부터 나를 옥죄었다. 그러나 거부할 수 없는 마력처럼 느껴졌다. 뭔가 한없이 불편하고, 거부하고 싶은 마음일수록 더욱 마음을 졸이며 바리의 이야기에 이끌렸다.

읽는 내내 기존의 가치들을 뒤흔들렸고, 나의 마음을 읽어내기에 바빴다. “내가 그곳으로 인도해줄게...”라는 표지의 작은 문구의 의미, 눈에 드러나는 사건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게 되면서 무척 혼란스러웠다. 아니, 나는 내심 그녀의 행동에 동조하고 있었다. 산파’, ‘연슬 언니’, 그리고 ‘청하사’의 죽음과 관련한 바리의 행동에 빈틈을 비집고 들어가 비난의 목소리를 높일 수가 없었다. 그만큼 한 인물을 둘러싼 상황들이 어쩔 수 없는 운명처럼 치밀하였다.

그들의 삶, 철저히 소외되고, 세상 밖에 움츠릴 수밖에 없는 삶, 때론 지나친 이기심과 욕망의 굴레에서 속수무책인 그들의 삶에서 그 어떤 삶보다 진정으로 간절함과 절절함이 느껴졌다. 왜 사냐? 삶이 무엇이냐? 묻기 이전에, 그저 묵묵히 살아지는 거, 살아야 하는 게 삶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저 주어진 생이 다하는 날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야한다고, 오히려 자살을 하고, 자살을 이끄는 바리가 큰 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그저 무력하게, 어쩔 수 없이가 아니다. 처절함 속에서도 간절한 열망으로 서로를 보듬는 사람들의 이야기, 소외된 속에서 그들만의 튼튼한 울타리를 통해 단단하게 견디는 그들의 삶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었다. 특히 독거노인의 증가와 그들의 자살, 사회적 연대의 필요성에 대한 최근의 뉴스가 불쑥 튀어나왔다. 몇 번이고 우리가 안고 있는 사회문제로 대두되었지만 그저 단순한 안타까움으로 순간뿐이던 마음들이 크게 동요를 일으켰다. 요원한 일처럼 느껴졌던 그들의 어려움이 절로 피부로 느껴지며 tv 속 이미지가 고스란히 재생되었다. 진정 ‘바리’는 우리에게 생명의 묘약, 그 신비의 묘약을 찾아 돌아온 것이다. 소외된 삶의 단면을 낱낱이 파헤쳐 그 아픔과 외로움을 손끝으로 느끼게 하더니, 문제의 해답을 훤히 드러내놓고 있었다.

 

제목을 확인하면서 호기심을 키우는 순간, 바로 ‘제 2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이란 문구가 눈에 띄었다. 반가웠다. ‘혼불’을 읽으면서 얼마나 마음을 졸이며 아파했던가! 그리고 제 1 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인 <난설헌>을 읽으면서도 ‘혼불’을 읽으면서 접했던 그 어떤 비슷한 기류가 느껴져서 많이 애달팠던 기억이 스쳤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그저 나를 자연스럽게 이끌어주었다. <프린세스 바리>를 만나고 나니, 내년 10월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앞으로 매년 10월이면 ‘혼불문학상’이란 수상작의 영예를 안고 우리를 찾아올 새로운 이야기를 들뜬 마음으로 펼쳐들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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