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9 - 3부 1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9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토지 9권을 만나기까지 조금은 오랜 시간이 흘렀다. 나도 모르게 지지부진한 이유를 생각해봤다. 숨 가쁘게 내달리기엔 내가 많은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잠시 숨고르기를 하게 한 것일까? 여하튼 여러 등장인물들의 이야기에서 자꾸만 뭔가 퍼즐 한 조각을 잃어버린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각 권마다 나를 매료했던 인물들이 비교적 각기 달랐다. 때론 애처롭고 애달픔에 마음이 동했고, 때론 극악무도함에 몸서리를 치면서 내 마음을 수시로 흩어지기 일쑤였다. 2부에서 3부로 넘어오는 사이, 차례를 확인하지 못한 채 마음 속 상상에 여러 인물들의 모습을 그려보기도 했다. 여전히 앞으로의 전개가 기대된다. 3부의 이야기에서는 많은 이들이 다시금 떠난다. 새로운 시대에 대한 기대로 조금을 희망에 부풀어볼까?

 

하지만 마음속이 허한 기운이 감돈다. 복수의 칼날을 갈던 그 숱한 밤들의 무상함을 느끼게 되는 서희, 석이처럼 나 역시 그러한 감정에 젖는 듯했다. 삶의 커다란 숙제를 마친 그들에게서 사람에 대한 복수, 그 앙갚음의 모순과 그로 인한 갈등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금녀’의 죽음, 나는 내심 ‘금녀’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김두수에게서 결코 벗어나지 못한 채, 그의 손아귀에서 처절하게 온몸을 내던져버린 장면은 그 어떤 이야기보다 강렬하게 다가온다. 또한 조준구의 몰락과 그의 아들 ‘병수’의 이야기는 대조를 이루면서 가슴 깊이 다가온다. 병수의 이야기는 언제나 간접적인 듯 소문에 소문으로 그를 만나게 되는 듯하다. 그의 삶의 애석함, 그의 짊어진 삶의 무게에 그이 태도에서 깊은 좌절감에 흔들리는 한 영혼을 보는 듯했다. 속수무책, 아무 것도 할 수 없이 방조하는 느낌, 그럼에도 그가 삶의 의지를 불태우게 되었다는 소식은 스스로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무척 감동적이었다. 깊은 수렁에서 스스로 벗어나려 한다는 점에서 나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그러면서 길상이 한복에게 전하는 이야기가 하나가 되었다.

‘맞어, 형은 형이고 나는 나야’(371) 그렇다. 김두수는 김두수고, 한복은 한복인 것이다. 또한 조준구는 조준구요, 병수는 병수인 것이다. 각기 제 몫의 삶이 있는 것이다. 자신에게 씌어진 굴레에서 그거 허우적거리기보다는 생각의 덫, 깊은 의식 속 좌절과 열등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너의 가난과 너에 대한 핍박을 너의 아버지 너의 형 탓으로 돌리는 것은 네가 없다는 얘기가 된다. 네가 없다는 것은 죽은 거다. 아니면 풀잎으로 사는 거다. 너는 너 자신을 살아야 하는 게야. 너의 아버지는 너 한사람을 가난하게, 핍박받게 했지만 세상에는 한 사람이 혹은 몇 사람이 수천만의 사람들을 가난하게 하고 핍박받게 하고, 한다는 것을 왜 모르느냐 말이다!’(377)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 안의 고통 속에서 우물 안 개구리가 드디어 우물 저 너머의 세상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병수, 한복의 용기에 내가 신바람이 나는 듯하다. 또한 ‘홍이’의 갈등과 방황, 그의 어긋남과 비뚤어짐도 하나로 보인다. 하지만 훨씬 젊은 홍은 그가 받은 사랑만큼 훨씬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감동을 선사할 것이라 기대해본다.

 

토지는 일제의 혼란의 시대를 고스란히 그려내고 있다. 역사 교과서 속의 딱딱한 지식이 아닌, 그 시대의 갈등과 사회 모순, 그리고 그에 비례하는 삶의 피폐함과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토지를 자꾸 읽게 되는 것은 그 혼란 속에도 사람의 이야기, 정다운 삶의 이야기로 희망의 씨앗이 오롯이 뿌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 읽기 시작한 3부의 이야기는 1919년의 가을부터 앞으로 10년을 그리고 있다고 한다. 최근 어릴 적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1919년에 태어나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왠지 1919년이 새롭게 다가오고, 이야기에 더욱 애정을 갖게 되었다. 최근 <<각시탈>>이란 드라마를 함께 보다보니, 내 안의 어떠한 울분이 치솟으면서 미처 깨닫지 못한 ‘독립’, ‘자유’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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