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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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한 소설을 만났다. 영화적 상상력이 덧붙여지면서, 영화로 풀어내면 어떤 모습일까? 혼자 배우들은 어떤 이가 좋을까? 자꾸 상상하게 된다. 그만큼 이야기는 힘이 넘치고 강렬하고, 또한 가슴이 뭉클하여 눈시울이 불어지고, 몸서리 쳐질 정도였다. 양극단 사이의 모든 감정들이 순간순간 폭발하였다. 지난 <내 심장을 쏴라>역시 활자는 이미지로 고스란히 살아나, 호수를 질주하는 보트 장면은 그 자유를 향한 뜨거운 갈망으로 여전히 내 안에 살아있다. 그런데 <7년의 밤>은 온전히 완벽함으로 머릿속에서 이미지가 떠돌아다닌다. 그만큼 소설이 아닌 현실의 이야기처럼 치밀하게 현실 그대로를 옮겨놓은 듯하다.

 

‘정유정’이란 이름 석 자가 눈에 들어왔다. 불현 듯, <내 심장을 쏴라>의 작가임을 상기하는 순간, 온몸이 찌릿찌릿하였다. 솔직히 제목만 보고 더 이상의 호기심을 갖지 않았다면, 놓칠 뻔한 책이다. 정유정이란 작가에 대한 기대감에 들뜨고, 책을 소개하는 동영상을 보고는 섬뜩함이 느껴졌다. 딸을 잃은 남자의 복수와 아들의 목숨을 지키려는 한 남자, 그 두 남자의 이야기가 몹시 궁금했다. 과연 어떤 내막이 숨겨져 있을까?하는 호기심이 섬뜩함을 이겨버렸다.

 

책을 읽는 동안, 불안과 두려움 사이에서 허우적거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작가의 메시지는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처음엔 어떤 불행한 사건에서 살아남은 열두 살 소년 ‘서원’의 삶이 들어왔다. 살인자의 아들이란 멍에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그의 삶이 안타까웠다. 한 순간 부모를 잃고 재산을 나눠 갖은 친척들에게 버림을 받고, 어느 곳에서도 받아주지 않고, 정글 속에 내쳐진 듯하였다. 그 어린 소년에게 죄가 없었다. 하지만, 연좌제가 사라진 오늘, 우리 마음속에 고스란히 살아있다는 진실을 깨닫게 된다.

 

처음엔 딸을 잃은 아비의 슬픔, 그리고 복수를 꿈꿀 수밖에 없는 피해자 가족의 슬픔을 마땅히 떠올렸다. 하지만 그 아비를 아는 순간, 딸을 잃은 아비의 존재를 알게 되자, 마음속에 안타까움보다는 ‘분노’가 먼저였다. 우연한 사고의 발단이 바로 그 아비라는 것, 낭떠러지로 몰고 간 것이 바로 그 아버지란 사실에 분노가 자리할 뿐, 연민이 사라졌다. 오히려 한 소녀를 차에 치어 죽게 한 당사지인 서원의 아비에게 연민이 자랐다. 한 소녀을 죽인 살인자가 아닌 자신의 아들의 지키려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진 한 아버지에게 연민하면서 울게 되었다. 마음속에서 살인자는 과연 누구인지, 악인과 선인의 경계가 한 순간 무너져버렸다. 그리고 그 아들의 목숨이 담고 있는 진실, 그 진실을 파헤쳐가는 시간이 때론 괴롭고 힘들었다. 두려웠다. 서원이 되었고, 자꾸만 진실을 외면하고 싶었다. 그 무서운 진실을 말이다. 진실에 눈감고 외면하는 나약한 우리를 만났다.

하지만 진실과 마주하는 순간은 더 이상의 두려움과 불안은 없었다. 한 사건의 진실, 그 무서운 진실은 오히려 내 안에 카타르시스를 가득 찼다. 그동안 두려움에 떨면서 책을 내려놓기도 하였지만, 마지막 순간, 진실과 대면하는 순간, 깊은 밤의 고요가 무색하였다.

 

끊임없이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흥미진진하다. 죽은 딸의 엄마, 이혼을 요구하면서 사라진 엄마, 그 12년간의 감옥에서 탈출하였지만 딸이 죽은 상황에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엄마의 존재, 그리고 ‘세령호의 재앙’이라는 사건의 진실, 그리고 소설 속 그 사건을 재구성한 소설의 결말이 궁금했다. 급하게 내몰리면서도 좀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한 소설 자체가 어떤 커다란 사건 속에 휘말린 기분이었다. 때론 두렵고, 소심하게 자신을 감추고 싶고, 지금 당장의 어려움에 방황하는 나 자신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7년의 밤이 끝나는 날, 당당하게 세상으로 걸어가는 서원의 용기에 또한 자극을 받았다.

 

‘안다’는 것과 ‘인식한다’는 차이를 나 역시 자각하였다. 그저 안다는 것과 그것을 뚜렷하게 인식한다는 것의 차이는 또 다시 내 심장의 비수처럼 다가왔다. 그리고 저자의 목소리, 그 메시지에 또 한 번 머리가 멍해졌다. 사실과 진실 사이에는 ‘그러나’가 있다는 저자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본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사실에 우리는 얼마나 입방아를 찧는가! 잘잘못을 따지면서 들끓어 오른다. 그것이 마치 다인 것처럼, 모든 진실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요란을 피운다. 사실과 진실 사이에 있는 ‘그러나’에 대한 인식, 그것은 바로 최근의 여러 사건 속에서도 느낀 것이었다. 왜 좀 더 깊이, 면밀하게 그 이면을 보지 못할까? 왜 그 표면적인 사실에만 극단적으로 반응하는 것일까? <7년의 밤>은 한두 가지 화두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의 축소판 그 자체였다. 그 속엔 나 자신이 있었다.

 

다시 또 읽고 싶다. 여기저기 나눠보며 소문을 내고 싶은 이야기이다. 많은 화두를 던지면 이야기꽃을 피우고 싶은 책이다.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또 다른 이야기를 알고 싶다. 그래서 또 다시 읽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저자 ‘정유정’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우리 곁에 '정유정'이란 작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고, 행복한 일인가!  하루 빨리 만나고 싶다. 그저 하루 빨리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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