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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은 세상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5월
평점 :
“사람들은 멀쩡한 음식들을 미처 먹어치우지 못하고 묵히다가,
또는 너무 많이 먹다먹다 질려서 버려대고 있었다.”
(94쪽)
처음엔 그저 어느 시대로 거슬러 14살의 ‘딱부리’의 시선에서 바라본 또 다른 세상일 뿐이었다. 하지만 제목 그대로 그것은 무척이나 ‘낯익은 세상’ 그 자체였다. 아니 내겐 무척이나 익숙한 어린 시절의 풍경처럼 잊혀진 기억을 스스럼없이 불러일으켰다.
이 책을 손에 쥐기 전에 <비탈진 음지>를 읽었는데, 빈민가를 배경으로 한 그 치열한 삶이 오늘과 무척이나 대조를 이루며 우리의 몰골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어, 몸서리치며 움찔하였다. 게으름 피우며 늦게 버리는 내가 먹던 음식들은 이내 역겨운 쓰레기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새벽이면 어딘가로 사라져버린다. 과연 그 많은 쓰레기들, 우리가 너무도 손쉽게 버리는 그 많은 물건들은 어디로 사라지는 것일까? 딱부리와 땜통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그 상황 속에 빠져, 간접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느끼게 생각하게 되었다.
급격한 산업화와 자본주의, 소비만능주의에 젖은 우리에게 진정인 것은 무엇일까? 새로 산 모자보다 쓰레기더미에서 주웠던 헌 모자를 고집했던 땜통, 그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주인을 잃은 그 모자도 정말 땜통을 그리워할 것 같은 그 느낌! 내 손때 묻어 닳고 낡아 버린 많은 사물들, 그저 낡았다는 이유로, 아니 그저 싫증이 났다는 이유로 너무도 쉽게 버리고 잊어버린다. 그런 습관들이 그저 사물에 머물지 않고 수많은 관계 속에도 내재되어 거짓으로 꾸미고 사는 것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지름길인 줄 알고 갔다고 호되게 값을 치를 거라는 할아버지의 충고가 흘려들을 수가 없는 없었다.
우리는 자본주의, 디지털의 세계에 살고 있다. 하지만 그 수많은 전자쓰레기는 오히려 중국으로 수출되고, 우리는 또한 일본에서 쓰레기를 수입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전자기기 속에 숨은 금을 찾아, 수은에 무방비로 노출된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가 뇌리에 깊숙이 박혀있다. 그 사람들의 이야기와 딱부리의 이야기가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내가 모르는, 아니 결코 알려하지도 않았던 세상이 낯익은 풍경이 되었다. 그리고 그 어딘가에서 그 누군가의 치열한 삶과의 사투가 생생하게 그려졌다.
미안할 정도로 재밌게 읽긴 했다. 하지만 그저 딱부리와 땜통과의 그 시간들을 가볍고 유쾌했다고 말하긴 어렵다. 우리가 놓친 삶의 일부, 그 현장이 바로 우리 곁에서 함께 숨 쉬고 웃고 울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다시금 뼈저리게 느낀다. 내가 무심코 버린 그 무엇인가가 나를 그리워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왠지 모르게 필요와 편의에 의한 주변의 수많은 사물들이 더없이 ‘반짝반짝’ 빛난다. 내 삶의 공간과 시간 속, 그물처럼 연결된 수많은 관계들이 정답게 웃으며 소중하게 다가온다면, 이 밤, 너무 감상에만 젖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