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를 봤다 - 개정판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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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를 봤다’를 봤다. 그리고 ‘성석제’를 봤다. 책꽂이에 꽂혀 있던 9글자는 단번에 나를 사로잡았다. 올해 초 새롭게 출간된 <호랑이를 봤다>는 표지조차 뭔가 괴팍하거니 기괴한, 딱히 뭐라 형용하기 힘든 인물들과 상황을 담고 있다. 그런데 제목은 ‘호랑이를 봤다’다. 호랑이? 과연 어떤 의미로 우리에게 화두를 던질지 궁금해졌다. 또한 얇은 두께, 부피감은 책에 대한 부담감도 덜어주어 가뿐하게 펼쳐들었다.

 

그런데, 처음 예상과는 달리 독특한 구성에 놀라고 메시지의 깊이에 또 한 번 놀랐다. 하나의 흐름을 가지고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았다. 마흔 한 개의 여러 에피소드의 나열이라고 할까? 바로 앞 에피소드의 상황 속에서 그 주변의 또 다른 화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바로 전후의 에피소드의 관계는 분명 하나로 연결되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이야기라고 단정하기 어려워 무척 혼란스러웠다. 우리의 뇌가 미완의 그림 속 그려지지 않은 부분을 채우며 하나의 이미지로 완성한다고 하는데 이야기 역시 여러 간극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하나의 흐름으로 읽으려 애썼지만 <호랑이를 봤다>는 그 흐름을 역행할 뿐이었다. 나름 머릿속에 그려졌던 흐름은 각기 다른 이야기의 파편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상황과 인물들의 설정을 뒤엉켜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 기존의 어떤 믿음이란 것이 일순간 무너져버린 듯 당황스러웠다. 때론 각자의 관점이 전혀 다른 상황을 만들 듯, 이야기 속 인물들은 한 인물이면서도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

 

어리석고 우스꽝스러운 인물들을 넌지시 바라보듯 웃음 짓다가도 어느 순간 바로 내 모습이란 사실에 화들짝 놀라게 되는 것이 바로 ‘성석제’표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버거웠다. 어떤 메시지를 풀어낸 것인지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다. 하긴 이야기 속 인물과 상황들의 설정조차 버거우니, 그 속 진지한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기엔 나의 역량이 턱없이 부족했으리라. 다만 해설을 참조해 제목의 ‘호랑이’가 갖는 상징성에 깊이 매료되었다.

한 노인이 말한다. 벌벌 떠는 나그네를 보며, ‘자네, 호랑이를 봤구만’이라고. 그리고 나는 상상해본다. 어느 깊은 산속에서 호랑이와 마주하는 상황을. 그저 오금이 저려온다. 그런데 우린 때론 그 호랑이와 대면하고 있단다. 우쭐하고 으스대며 뭔가 남다른 ‘나’, 고귀한 존재로써의 우리를 꿈꾸지만, 그거 저 아득히 먼 곳에서 들리는 호랑이 울음소리에도 기가 꺾인다. 그리곤 뒤꽁무니를 빼고 줄행랑치기 일쑤란다.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그러한 인간의 한계를 꼬집고 있지만 난 그렇고 그런 작고 작은 나의 마음을 들키고 말았다. 그저 자신의 한계에 쉽게 좌절하기 마련임에도, 평론가와는 또 다른 시선에서 그 날카로움의 다른 쪽을 보고자 한다. 한없이 약하기 마련이지만 그리고 또 세속으로 데굴데굴 떨어지고 말지만 그럼에도 또 그 이상과 희망을 바라보며 삶의 박차를 가하고 싶다. 그것이 또 우리의 숙명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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