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처럼 자라는 집 - 임형남.노은주의 건축 진경
임형남.노은주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집을 짓는다는 것의 어려움을 최근 실감하고 있는 중이다. 틈틈이 작은 보탬이 되고자 이것저것 자재를 고르러 다니고, 돌도 짊어, 아니 들어 날랐다. 지금은 막바지 마감 공사가 한창이고, 어떤 모습으로 들어앉게 될지, 사뭇 들떠있는 상태이다.

집을 짓기로 결정한 후에도 일은 그다지 진척되지 않았다. 책을 빌려보고,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나름 공부도 하고, 깊은 겨울밤엔 한자리에 앉아 집에 대한 꿈을 꾸며,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하였다. 집안 행사를 앞두고 더욱 분주해진 요즘, <나무처럼 자라는 집>은 내게 ‘집’에 대한 또 다른 꿈을 꾸게 만들었다.

 

‘집은 사람이 짓지만 시간이 완성합니다.’(20)라는 문구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미처 생각지도 못한 ‘시간’과 '집‘의 관계가 명쾌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오만을 살짝 비꼬는 듯도 했다. 지금 주변은 공사가 한창이다. 수년 째 묵혀두었던 나대지에도 건물이 들어서고 있고, 식당이 있던 가건물도 헐리고 그 자리에 빌라가 들어서고 있다. 한시바삐 움직이며 ’뚝딱‘ 들어서는 건물들, 하지만 건물이 들어서면 끝일 거라 생각했는데 이 땅 위에 앉혀진 후에야 비로소 시작이라니, 그 미완의 집들이 어떤 모습으로 농익어갈지, 이제야 주변을 둘러보며 ’집‘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얼마 전, ’집‘은 또 다른 자아이자, 자연과 우리들이 공존이란 이상을 실현하는 공간이라 배웠다. 그 점은 다시 상기하며, 훨씬 훈훈하고 감미로운 ’건축‘이야기에 빠졌다. 이 책은 건축가의 이야기다. 그렇다고 건축에 대한 진부한, 학구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표지에서 느낄 수 있듯이, 감성이 뚝뚝 떨어진다. 많은 사진 속 자료들이 아닌, 하나하나 손과 붓끝의 상호작용이 이룬 수채화로 꾸며져 있다. 그리고 건축 이야기에서 왠지 비켜간 듯, 사뭇 감상적인 에세이 느낌이 물씬 풍긴다.

 

건축의 진경이란 과연 무엇일까? 눈에 보이는 하나의 입체공학적인 실체로서의 건축이 아닌 우리가 제대로 보지 못하는 그 건축의 진경,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 책은 그 ‘건축의 진경’이란 것을 오롯이 보여주고 있다. 진경의 의미란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 자연과 인공의 수많은 것들의 관계와 그 상호작용의 산물일지도 모르겠다. 뚝딱 세워진 그야말로 인위적인 것이 아닌,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고 함께 숨 쉬는 편안한 엄마 품 같은 것이야말로 건축의 진경일까?

건축이야말로 사람들, 우리들의 이야기가 녹아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저런 핑계로 무심했던 것 같다. 시간 속에 녹아든 삶의 이야기가 아닌 하루하루 단편적인 일상에 분주했던 것은 아닌지, 바로 내가 살아가는 이 순간, 바로 여기에서 마음을 활짝 여는 시간이었다.

 

건축 일로 이곳저곳을 많이 둘러보며, 팔도 사방팔당을 훑으며 다녔을 저자는 그 속의 여러 풍경들에 단상을 기록하였다. 그래서일까? 훨씬 부드럽게 술술 읽을 수 있었다. 무미건조할 수 있는 시간들이 말랑말랑해졌다. 콘크리트 벽보다도 더 딱딱할 수 있는 이야기는 그 어떤 이야기보다 감성을 자극하며, 그지없이 따뜻했다. 한 자리에 뿌리내린 나무처럼 건축도 한 자리에 북박혀 있지만 인공구조물인 아닌 생명을 지닌 나무처럼 살아 숨 쉬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라고 그리고 또 늙어가고, 켜켜이 쌓인 시간에 짓눌리기보다는 그 시간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 역시 그 시간과 함께 하고 싶다. 시간에 몸을 맡기며 하루하루 조금씩 자라고, 또 다른 싹을 틔우고, 들꽃처럼 조금은 청초하게 늙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더불어 새롭게 뿌리는 내린 우리 집, 그 속의 작은 꿈을 새롭게 꾸게 된 지금, 그 공간 속 어떤 이야기를 담게 될지, 그리고 또 어떤 모습으로 자라게 될지, 기대감으로 들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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