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의 나라에서
히샴 마타르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일 년이 넘게 책장에 방치된 채 먼지가 쌓이고 있던 책이었다. 이슬람 문화 속 여성의 굴곡진 삶과 더불어 어린 아이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또 다른 낯선 세계에 대한 호기심에도 불구하고 쉽게 읽히지 않았다. ‘리비아, 그 낯선 나라에 대한 무지로 이 소설의 풍경과 이면의 상황들이 그저 몰입을 방해했었다. 그런데 자, 리비아다! 하루가 멀다며 우리는 지금 ‘리비아’를 가까이서 느끼고 있다. 물론 영상 속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우리는 베일에 감쳐져있던 리비아와 지금 여기서 마주하고 있다. 그렇게 다시금 <남자들의 나라에서>라는 소설을 펼쳐야했다. 리비아 태생의 소설가가 쓴 이 소설이 우리에게 소개된 지 일 년여의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그 가치를 스스로 드러낸 샘이다. 그저 건설 기업들이 대공사를 수주해 외화벌이의 대상인 나라가 아닌 그 무자비한 현실을 직시한 후, 더 이상 외면하지 않고 생생하게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다.

 

솔직히 내가 이집트, 리비아의 뉴스를 들으면서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바로 지난 우리의 역사였다. ‘카다피’라는 인물 그리고 그를 둘러싼 정치 환경, 그 무자비한 폭력, 권력의 횡포 속에 신음하는 많은 사람들의 울부짖음은 바로 지난 우리의 과거 속 현장이었다. 이야기의 시점이 또한 1979년이란 점이 남다르게 다가온다. 정치적 폭력, 독재의 광기 그리고 무서운 탐욕의 진념이 지금의 현실이라니! 뉴스를 통해 매번 투영되었던 것은 지난 우리의 현대사의 실체이자 또 바로 북한의 현실이었다. 그래서 <남자들의 나라에서> 풀어낸 상황들 - 비밀 경찰, 도청, 생중계되는 교수형- 이 더욱 생생하고 잔인하게 다가온다. 활자로써 표현된 장면, 이야기 그리고 메시지는 오히려 그저 뉴스를 통해 접했던 영상보다 더욱 더 극명하고 뚜렷하였다. 주인공의 말처럼 발끝에서부터 서서히 차오르는 ‘고용한 공포감’을 전율하며 독재, 권력, 폭력 그 광기가 얼마나 잔인하고 무자비한지 뼈 속까지 느끼게 된다.

 

아홉 살 소년 ‘술레이만’의 눈을 통해 이 무자비한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런데 아홉 살 소년의 순진무구한 시선과 심리가 또한 백미인 것이다. 정치적 상황 때문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어 이 책을 펼쳤지만 그럼에도 그 순진무구한 소년이 풀어낸 이야기는 극의 긴장감을 더했다가도 유쾌한 활력을 불어넣기도 하였다. 아홉 살 소년이 직면해야했던 현실을 헤아리다보면, 오히려 메시지는 강하지만 따뜻하다. 그러면서 인생은 아홉 살부터 시작된다는 <아홉살 인생>(위기철, 청년사, 2001)의 꼬마의 고백처럼 그 시점에서 자신의 인생을 술회하는 ‘술레이만’을 남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바로 ‘거기’에서 비롯한 숱한 그리움과 회한들, 불안과 고통은 또한 우리에게 뜨거운 삶의 에너지로 다가온다.

 

때론 나 자신을 이야기의 누군가에게 투영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그것은 바로 어머니 ‘마마’의 존재였다. 이슬람 문화 속 여성의 삶이 여지없이 담아낸 그녀의 삶, 어린 나이의 강제 결혼과 임신, 그리고 더해져만 가는 우울과 고통에 대한 토로는 불안과 혼란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오히려 철저하게 휩쓸린다. 극도의 불안과 공포 속에서 때론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흔들렸지만 가장 중요한 순간엔 오히려 용감한 여전사였고 강인한 어머니였다.

 

표지 속 강렬했던 눈빛은 이젠 불안, 공포와 무력감으로 느껴진다. 그 눈빛 속에 감춰진 어떤 분노에 왈칵 눈물이 나올 것 같다. 정말 ‘마지막 장을 넘기는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눈물’이 솟아오른다.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보게 되는 현실과 우리가 느끼게 되는 무수한 감정들에서 우리는 우리가 가야할 길을 찾게 된다. 진부하지만 그 극단적 현실-독재, 폭력-은 바로 ‘나’, ‘우리’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마땅한 누려야 하는 권리와 특히 아이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남자들의 나라에서>이란 책은 ‘자유와 인권 그리고 사랑’의 가치를 더욱 선명하게 꽃을 피우고 만발하게 하는 듯하다. 초록색-리비아 국기 이미지-에 대비되는 붉은 꽃으로 강렬하다. 마지막으로 마땅한 것, 당연한 것들이 하루 빨리 제자리를 찾을 수 있길 희망해 본다. 여전히 가슴 속은 뜨거움과 묵직함으로 가득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