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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놀이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0년 11월
평점 :
최근 우리 현대사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조정래’작가의 책을 선호하게 되었다. 결코 경험한 적 없고 경험하고 싶지 않은 전쟁, 그 전쟁의 음산한 기운이 우리 사회를 휘감고 있는 기분이랄까? 연이은 전투기의 웅장(?)한 소리, 그 광폭의 소음이 마치 전쟁의 한 복판 속에 놓인 듯 불안감과 공포-전쟁을 경험한 세대인 노교수와 아들 형민의 괴리감 사이에 나는 어느새 노교수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었다-에 휩싸이게 되었다. 그렇게 조정래 작가가 풀어낸 이야기를 통해 전쟁, 사상(신념) 그리고 인간 사이의 끊임없는 저울질(?)을 하다보면, 그 속에서 ‘사람다움’,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소중함’ 등을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 그리고 수없이 스스로에게 거듭 질문을 하며, 상황 속에 빠진다.
<불놀이>는 1980년대에 씌었고 지금껏 읽혀왔다. 하지만 얼마 전에야 나는 비로소 <불놀이>의 존재를 알게 되고, 기쁜 마음으로 손에 쥐었다. ‘인간 연습, 인간의 문, 인간의 계단, 인간의 탑’이라는 네 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 <불놀이>는 전라도를 배경으로 전쟁을 전후한 시기에 일어났던 피의 복수 그리고 그 피의 복수가 불러온 처절한 한의 복수 그리고 그 갈등과의 화해(?)를 그리고 있다. 피의 복수가 부른 그 피비린내 나는 삶의 현장 속으로 걸어 들어가다 보면 점차 거대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조금씩 진실의 퍼즐이 짜맞춰 질수록 깊은 심연으로 빨려들 듯 책과 떨어질 수 없었다.
끔찍한 이야기에 놀라다가 어느새 진정한 ‘인간’다움을 고민하게 된다. 종교, 사상, 신념 등을 초월한 바로 ‘인간’ 자체에 대한 숭고함을 생각하다가도, 각 인물들의 내면 깊숙이 자리하고 표출하는 갈등 사이에서 허우적거린다. 하나의 인물을 대변하기보다는 각자가 처한 상황과 입장들에 끊임없이 감정이입을 하며 숱한 고뇌에 빠졌다.
이렇게 굴곡진 처절한 삶의 현장 속으로 깊이 파고들고 싶은 욕망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지금의 현실에 대한 반감, 타성에 젖고, 나태함에 빠진 내 스스로를 한계를 돌파하기 위한 어떤 최선책 아닌 자그마한 실마리를 찾고자 하는 것일까 자조 섞인 푸념에 부질없다며 헛헛한 마음에도 어떤 뜨거운 불기운, 삶의 충만한 에너지를 지난 삶에서 찾고 있는 듯하다. 아니 <불놀이>의 여러 인물들, 그네들의 삶에서 내가 소원하던 바를 찾았다. 이념과 체제의 갈등과 숱한 죽음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낸 삶의 당위성을 무의식 저편에 각인시키고, 끊임없이 의식 속에서 자각하면서, 팍팍한 현실에서 희미할지라도 한 줄 희망, 그것을 부여잡고 뜨겁게 살아야 할 이유를 찾게 된다. 내밀하게 깊숙이 숨어 있던 생존에 대한 본능, 삶에 대한 의지와 처절한 투지를 깨우고 가족의 소중함, 감사함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