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이 (반양장) 사계절 1318 문고 63
이경자 지음 / 사계절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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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이 가져왔던 '전쟁' 위기론의 압박과 6·25전쟁 60주년!그리고 연평도 포격까지 절실하게 느껴지지 않는 '전쟁' 그 가상의 현실이 남다르게 느껴지던 요즘, 여섯 살 소녀의 순수함을 통해 전쟁의 상흔이 가슴 아리게 다가오는 이야기를 기대하였다. 봇몰 터진 듯 쏟아지는 그 어떤 전쟁 관련 다른 책들보다 '문학의 힘'으로 전쟁의 폐허와 그 속에서 피어난 희망을 엿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책을 들었다. 순이의 삶을 통해 질곡의 현대사를 몸소 느껴볼 수 있었다.

 

주요섭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옥희'가 절로 떠오르며, <순이> 속 '순이' 또한 오래도록 가슴 속에 살아 숨쉬며 수없이 떠오를 듯하다. 순이의 순박함에 절로 가슴 한 가득 웃음꽃이 피다가도, 그녀의 두려움, 아픔, 불안 등에 함께 아파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어느덧 의젓해진 순이의 모습을 통해 밝은 희망의 빛을 느낄 수 있었다. 순이는 전쟁의 상흔 속에서 꽃 핀 순박함의 전형적인 본보기가 될 듯하다. 그리고 이는 우리의 부모님, 할아버지, 할머니의 어린 시절을 오롯이 담아내며, 뜨문뜨문 들어왔던, 배골았던 그 시절의 풍경들이 내 속에서 더욱 생생해졌다. 그 누군가에게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눈시울을 붉히게 할 이야기이다.

 

<순이>를 통해 아련한 할머니와의 추억을 더욱 뚜렷해졌다. 순이와 할머니의 이야기는 어린 시절 할머니의 투박하지만 거친 손길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게 하였다. 잊고 있었던 진한 추억이 가슴 저 밑바닥부터 차곡차곡 차올랐다. 시골 할머니집의 풍경들 속에서 순이는 이내 나 자신이었다. 순이를 향한 할머니의 다정다감한 눈길, 손길 하나하나가 타임머신이 되어, 추억 하나하나들이 생생하게 펼쳐졌다. 그리움이 짙어지는가 싶더니, 참으로 포근하고 정겨웠던 풍경은 오늘의 우리를 살찌우고 위로하는지도 모르겠다. 

 

이 진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순이의 이야기가 과연 전쟁의 상흔을 이야기하는 것인지조차 잊게 하였다. 전쟁이 남긴 상처와 불안, 공포 등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순이를 향한 할머니의 한없는 다사로움 때문이었다. 간첩이 되어 돌아온 분이의 아버지에 대한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이웃과 사람 간의 정으로 확대되었다. 물론 그 속에서 불신과 경계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그것이 바로 전쟁이 우리에게 남겨 지울 수 없고, 잊혀지지 않는 상처, 그늘인지도 모르겠다. 

 

오래 묵어 갈등의 골을 메울 수 없어 보였던 할머니와 어머니의 갈등은 이야기의 한 축이 되어, 끊임없이 여러 화두들을 던지곤 하였다. 돈의 이치를 알고 진취적으로 삶 속에 뛰어든 어머니와 전통과 옛 것의 습성을 고수했던 할머니와의 갈등,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이었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갈등, 딸아이 순이에게 모질었던 어머니 등 여러 모순과 갈등, 차별과 폭력의 응어리를 이야기 속에 풀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슬픔의 덩어리들은 웃음 한 방에 봄눈처럼 녹기도 하며, 길고 깊었던 갈등은 서로에 대한 배려와 이해로 사그라졌다.

 

<순이>를 만나 느낄 수 있었던 따뜻함이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듯하다. 어린 시절, 그리움의 물결이 온몸을 감싸안으며 할머니의 품처럼 다가왔다. 또한 전쟁의 아픔을 딛고 일어선 순이처럼 어려움 속에서 일어설 수 있는 용기와 지혜가 해맑은 미소처럼 가슴을 채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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