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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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옛이야기가 왠지 모르게 그리운 요즘이었다. 그리고 그 그리움을 나는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펼치는 순간 오롯이 달랠 수 있었다. 

박완서! 이름 석 자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리고 못 가본 길에 대한 아쉬움, 미련을 떨치지 못해 스스로 상처를 주곤했던 내겐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는 제목은 신선하고, 또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글쎄 작가는 언제나 푸릇푸릇한 청춘처럼 맑은 느낌이라,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설사 작가의 이력을 확인하고 나이를 읽었다지만, 그 순간 잊혀졌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박완서, 지금껏 ‘할머니’의 인상은 아니었다. 그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달콤하게 내 기억, 추억과 어우러지며 오히려 이야기에 공감하며 동질감을 느꼈다고 할까? 내 가슴 속 깊이 자리하는 아련한 추억들을 되새김질하며, 그렇게 나도 모르게 가슴 시리도록 따뜻한 작가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 따스함이 곧 할머니 품이란 사실을 새삼 깨친 듯! 신선함이 준 충격으로 마냥 기쁘고 설렜다.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손에 쥔 오늘은 할머니의 품 안에 포근히 잠긴 듯, 정겨움으로 가득 찼다. 넉넉한 품 안에 마음껏 살결을 비비고, 솟구치는 눈물을 훔치며, 마냥 위로 받고, 사랑 받으며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할머니를 떠올려본다. 책과 함께 하는 내내 나는 할머니가 무척이나 그립고 보고 싶어져, 마음 한 구석이 아렸다. 또한 할머니의 따스한 눈길, 손길에 온 마음 구석구석이 햇살로 가득 차는 느낌으로 충만했다.


사람과 자연에 대한 감사와 애정, 그리움이 이야기 곳곳에서 묻어나며, 다채로운 이야기들로 시선을 모았다. 부조리로 가득 찬 세상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도 잠시, 삶에 대한 무한한 따뜻한 시선 속엔 담긴 저자의 수많은 이야기와 마주하면서 나는 온갖 그리움들을 달랠 수 있었다. 그리고 깊이 있는 성찰과 그의 고백-나는 비겁한 데가 있는 인간이다. … 나는 전력투구해야 할 결정적인 순간에 슬쩍 발을 배고 뒤로 물러나는 나쁜 버릇이 있었다 (170), 넘치는 것보다 조금 모라자는 듯할 때 편안한 게 나라는 인간의 그릇의 한계이다. (174)-을 통해 자책으로 상처를 주곤 했던 못난 마음들을 안아줄 수 있었다. 


가을이 성큼 다가온 요즘, 무더운 여름의 기억이 무색하도록 갑작스런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지만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와 함께 따끈따끈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소박하면서 정갈한 이야기 속에 서서히 젖어들어 마음이 느긋해졌다. 그리고 한 겹의 홑옷이 주는 따스함조차 더없이 감사하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작가의 표현-작가의 어느 ‘시’에 대한 이야기-을 빌려 표현하자면, 아무렇지도 않은(?) 이야기가 나의 아무렇지도 않은 시간과 만나서 빛을 발하며 나의 하루를 의미 있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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