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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을 길들이다 ㅣ 과학과 사회 10
베르나르 칼비노 지음, 이효숙 옮김 / 알마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고통스럽다는 것은 고독한 감각이다”(70쪽)
행복전도사 최윤희씨의 죽음은 우리 사회에 ‘통증’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뉴스기사를 접한 기억이 있다. 행복전도사와 자살은 뭔가 상반된 모순이란 생각이 스치면서 충격을 주었지만 문득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하는 안타까움도 자리하였다. 책에서조차 가장 먼저 “죽어도 좋으니 아프지만 않게 해주세요!”라는 추천글1로 이야기는 시작되니 무심코 지나칠 수가 없다. ‘질병으로 인한 통증’은 그 누구와도 나눌 수 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고통-난치성 만성 통증, 그 누가 그 극심한 통증의 강도를 상상할 수 있을까?-이라 생각하니, 공인(유명인사)임에도 자살이란 이유만으로 그녀의 선택을 무작정 비난할 수가 없었다. 이런 혼란의 핵심을 꿰뚫으며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바로 <통증을 길들이다>이다.
어린 시절, ‘외적인 증상(증후) 없이-책 속 표현을 빌리면 ’상처 없는 통증‘이다-’ 다리를 아파했다. 진료도 받았지만 어떤 특별한 이상 징후를 발견하지 못했지만 줄곧 나름의 고통을 호소했었다. 누구나 고통을 느끼지만, 그것을 느끼는 정도(강도)와 표현은 개인마다 각양각색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때로 고통은 단지 참아야 하는 것으로 인식했던 것이 일반적인 우리네들의 생각일 것이다. 더 나아가 책에서는 의사들조차 ‘통증’을 하나의 징후 정도로만 파악하고 통증 치료를 너무 자주 소홀히 다뤘던 지난 과오를 고백하고 있다.
그러나 <통증을 길들이다>는 통증에 대한 사회적인 재인식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통증 완화(제거)를 위해 간호 인력의 역할 강화를 하나의 해법으로 이야기한다. 물론 마약 중독에 대한 우려와는 별개로 ‘모르핀계 약제들에 대한 접근(사용 진통제의 허용 범위)’에 대한 문제를 제기-이는 ‘통증 환자의 법적 권리’에 대한 논의의 필요성 제기와 같은 맥락이다-하고 있다.
통증은 주관적이고 복합적인 신경심리학적 현상으로 감각인 동시에 감정이라 정의하며, ‘통증’을 의학적으로 고찰하면서 더 나아가 심리, 철학, 종교 그리고 문학적 의미에서 고찰하는 등 다각적인 접근법이 무척 흥미로웠다. 문학-예술의 범위까지 확대될 것이다-작품들만 생각해도 고통 없이-작가의 경험을 비롯한 일련의 과정들을 포함하여- 위대한 작품은 탄생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할 때, 하나의 감각적 차원에서 감정적 차원으로 확대하여 통증의 주관적 성격을 인지할 수 있었다.
“통증으로부터 끌어낸 교훈들 가운데 하나는 통증이 자기 자신에게로, 실존적 고독으로 데려다놓는다는 것이며, 통증이 일상생활의 순진한 몰지각으로부터 존재를 끌어내서 세계에 대한 이해와 존재 이전의 지표들 전체에 대해 다시 의문을 제기하고 문제 삼는 의식의 대혼란을 가져다준다는 점이다.” (116쪽)
우리는 통증을 느끼며 그것을 인정하지만 절대 계량화할 수 없다는 사실, 지극히 배타적인 경험으로 순전히 주관적이고 개념적으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한다. 통증 속 공포와 절망의 감정들을 우리는 존중해야한다. 통증은 또 다른 소통의 언어로써 존중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인내와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을 수 있았다. 또한 통증 치료에 대한 관심은 유대감과 보편주의적인 새로운 윤리적 차원의 고찰을 강조하고 있다. 이젠 통증으로 고통 받는 수많은 사람들(물론 나도 예외일 수 없다)이 고독 속에서 홀로 몸부림치지 않도록 모두의 배려하고 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