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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더지 지식 클럽 - 지식 비평가 이재현의 인문학 사용법
이재현 지음 / 씨네21북스 / 2010년 9월
평점 :
두더지! 그는 말이다. 근대적인 동시에 탈근대적인 저항과 전복의 존재란다. 또한 현재 속에서 희망의 원리로서 잠복해 있는 두더지는 여전히 땅을 파고 있는 역동적이고 어떤 굳센 의지를 담고 있는 하나의 상징이다. 처음 ‘두더지’란 세 글자는 무척 의아했다. 두더지? 뭔지 모르겠기에 <두더지 지식클럽>이란 제목이 일단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두더지? 설마 두더지를 모를까? 그런데 두더지에 녹아있는 상징이 쉽게 잡힐 정도로 어떤 문제의식, 인문학적 소양도 부족하다. 아니 없다. 또한 수많은 비평가들이 존재하는 것 정도는 알겠는데 ‘지식 비평가’는 또 뭐란 말인가? 그렇게 무지의 소산에서 지적 호기심을 자극 받아 두더지 ‘지식’클럽을 손에 쥐었다.
이 책의 흥미로운 점은 가상인터뷰이다. 모두 저자가 풀어낸 상상의 인터뷰라는 전제 하에서도 마냥 실제인 듯 느껴지고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저자 이재현과 그가 인터뷰하는 각각의 인물들은 다채로웠다. 산자와 망자의 경계를 벗어났으며, 사람과 사물(?), 상징의 경계 또한 넘나드는데 이상하게 경쾌하고 생생한 현장감이 느껴져 무척 흥미진진하였다. 인터뷰이에 대한 사전 정보와 인터뷰의 주제가 기존의 이미지, 선입관들을 무너뜨리는 독특한 해석과 이야기 구조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또한 현재 우리를 관통하는 사회문제와 화두를 적절히, 아니 사나운 매의 눈빛처럼 날카롭지만 진중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가벼움으로 녹아내고 있다.
오늘의 문제들이 다양한 시선에서 바라보고 그에 대한 저자의 일관된 의견들에 동조하기 쉬웠다. 일관된 문제의식과 설득력 있는 그의 논조, 그리고 다양한 인터뷰이와의 묻고 답하는 인터뷰 자체가 자연스럽게 호기심을 유발하고 쉽게 빨려들기에 쉬운 전개구조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맹자는 말했단다. “책에 있는 이야기를 그대로 믿는 것은 책을 읽지 않는 것만 못하다고. 최근에 가슴 깊이 비수가 된 말이었다. 기존의 책 읽는 태도를 각성하고 좀 더 객관적이고 나름의 비판적 잣대를 세우기 위한 노력이 필요했다. 물론 열린 마음으로 그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그가 풀어낸 수많은 이야기들이 주는 신선함을 즐기면서, 때론 더부룩하게 불편했던 무언가가 뻥 뚫린 듯 시원했기에 무비판적으로 그저 수용하게 될까봐 더욱더 스스로 경계해야 했다.
<두더지 지식클럽>을 통해 하나하나 지식을 쌓는 하나의 과정으로 일단 만족하련다. 솔직히 내겐 너무 방대할 정도로 다양한 이야기가 조금은 벅차기도 하였다. 하지만 혼란스러운 생각들을 정리하고 기존의 삶의 의미, 가치를 명쾌하게 하는 등, 세상을 읽고 이해하는데 유익한 하나의 방법론이 될 수 있는, 그래서 인문학 사용법을 배우는데 충실했다. 마냥 동조하기엔 작은 머뭇거림과 불편함이 한 순간에 사라지기도 하였다. ‘박현채’를 통해서 말이다. “중용을 배워라. (…) 이 이율배반적 사상의 예술적 통일, 이를 위해 나는 동양적 중용을 제시한다. 편중하지 마라. 그러나 전투적이어야 한다. 우리의 삶은 투쟁이 있기에 …….”(206)
우연히 이 책을 읽으면서 한 권의 시집-<돌아다보면 문득>(정희성, 창비, 2008)-도 함께 펼쳤다. “그 별은 아무에게나 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 별은 어둠속에서 조용히/ 자기를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의 눈에나 모습을 드러낸다”는 「희망」이란 시와 왠지 모르게 하나로 연결되는 것은 왜일까? 인간, 세상에 대한 날카롭지만 포근한 시선을 통해 나는 때론 절망적이고 좌절의 위기 속에서도 어떤 포기할 수 없는, 포기해서는 안 되는 희망의 열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끊임없이 스스로를 경계하며, 세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 용기라는 숙제가 주어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