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대지의 꿈 - 장 지글러, 서양의 원죄와 인간의 권리를 말하다
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 갈라파고스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지금껏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눈’으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마음‘(277)으로 살아 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다.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기며, 단편적인 이미지와 무비판적이고 편중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나의 눈이라는 것이 이제껏 제대로 뜬 적이 있었던 것일까? 아니 몰랐다는 것은 나를 위한 변명일 뿐이다. 보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더욱더 외면해 왔던 것이리라.

 

<빼앗긴 대지의 꿈>의 표지만 보고도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란 책이 떠올랐다. 물론 아직 읽지 않은 책임에도 수없이 노출되어, 머릿속에 각인되어 버린 책! ‘왜?’란 이유를 캐묻기보다는 어딘 가에서 3초마다 굶주림으로 어린 아이가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생각할 뿐이다. 그런데 이제야 시절인연이 맞닿은 듯! <빼앗긴 대지의 꿈>을 시작으로 나는 이 부조리한 현실의 기제를 좀도 명료하게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빼앗긴 대지의 꿈>을 읽는 동안, <나쁜 사마리아인들><컨설턴트>가 끊임없이 되새김되었다. 특히 <컨설턴트> 속 ‘콩고’를 배경으로 펼쳐진 이야기는 허구에 머물지 않고, 구체적인 사실 자체로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사회를 움직이는 그 무엇을 ‘결국 받아들이거나 체념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라는 이야기가 <빼앗긴 대지의 꿈>을 읽는 내내 맴돌며, ‘장 지글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촉매제가 되었다.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서양’은 ‘자본주의’, ‘제국주의’, ‘세계화’라는 등식이 설명되고, 이는 남반구인(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들의 서양에 대한 증오, 분노의 연유를 분석하고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었다.

 

암담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속속들이 파헤치는 과정, 외면했던 사실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힘겨웠다. 하지만, 결국 ‘같은 처지’라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분노하고, 감동하게 되었다. ‘이제는 우리 자신이 되어야 할 시간’인 도래한 것인다.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진실, 그 불편한 진실과 대면하고, 기억을 되살리면, 우리 속에 잠재된 ‘식민 지배의 기억’, ‘일본에 대한 의식적, 무의식적 반감’은 남반구인이 갖고 있는 서양에 대한 증오, 반감, 저항과 하나로 연결되었다.

 

억압, 착취의 고리가 세대를 거듭하면서, 다른 얼굴로 되풀이되는 상황, 이 악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끊어야 하는지, 과연 끊을 수는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을 갖으며,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암담한 현실에 대한 분노, 환멸 속에서도 이야기에 더욱 열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바로 ‘희망’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갈 길을 험난함에도 한 걸음 내딛은 힘찬 발걸음을 오롯이 느끼며, 그 동안의 무관심에 대한 짐을 살짝 내려놓고, 열렬한 박수, 응원의 소용돌이 속에 함께 있다는 느낌에 두 손을 불끈 쥐었다. 물론 여전히 어렴풋하다. 하지만 이젠 외면하고 싶지 않다.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세계시민’으로서의 역할을 고민하고, 정체성과 동시에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는 열린 마음, 그 작은 걸음을 뗀 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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