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
김인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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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지 못할 것을 참다보니, 소망하는 것이 더 뜨거워졌다 (58쪽)

 

'소현! 과연 그는 어떤 인물이었을까?'하는 호기심이 최근들어 우리 역사에 대한 호기심을 왕성하게 이끌어내고 있다. 그 시작은 '김훈'의 <남한산성>에서 비롯되었다. 그 이후, 광해군과 인조, 소현세자 그리고 병자호란의 역사에 대한 관심은 상상의 문을 활짝 열고 끊임없이 유혹한다. 최근에는 드라마 '추노'를 통해 소현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솔직히, 추노는 추노꾼이라는 민중의 역사를 보여주려 했지만, 나는 '소현'이란 인물, 그리고 그 비운의 가족들의 이야기에 좀더 무게중심을 두면서 숨겨진 역사를 보려하였다. 자신의 할아버지에게 내쳐져 제주도에서 굶어 죽었다는 손자들, 천륜마저 져버린 비정한 정치 논리가 너무도 혐오스러웠다. 그런 와중에 <소현>을 만났다.

 

가장 최근 '김용상'의 <별궁의 노래> 속 소현은 조금은 무력하고 나약한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만난 <소현>의 표지 속  그는 '당당함과 굳셈' 그 자체로 비쳐졌다. 날선 콧날, 번뜩이는 눈매, 야무지게 다문 입술에서 그 어느 때보다 위풍당당하고 위엄이 넘치는 모습으로 다가왔다. 그런 소현의 모습이 자꾸만 눈길을 머물게 한다. 낯선 땅 볼모 생활, 병마와의 씨름 등 지칠대로 지친 듯한 유약함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어느새 짙은 그늘 속 처연함이 느껴져 깜짝 놀랐다. 온 몸으로 울고 있는 소현, 그 안의 고독, 슬픔, 좌절이 책을 통해 전해졌다. 울음조차 허락되지 않은 삶, 그래서 온 몸 가득 울음이 잠식해 버린 소현의 모습이 심장을 도려낸 듯 먹먹하게 만들었다.

 

김인숙의 <소현>을 첫머리를 읽으면서 왠지 '김훈'의 <남한산성>의 속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남한산성을 읽으면서 느껴던 감정들이 <소현>에서 그대로 되살아났다.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렵지만, 한 문장 한 문장, 한 단어 한 단어를 읽으때마다, 깊음 맛이 느껴졌다. 한 음절 한 음절 되새기며, 그 속에 뿌리박히는 느낌 그리고 어느덧 커다란 아름드리 나무가 되어버린 느낌. 말과 말 사이를 넘나들며 때론 농락당하는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겉으로 드러난 뜻과 그 속뜻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야 했던 그들처럼, 글의 행간 속 숨겨진 의미를 쫓기 바빴다. 여러 등장인물들 속에서도 '만상'이란 인물에 전이되었다. 스스로가 '만상'의 처지가 되어 윗분들의 뜻을 헤아려보지만 결국 죽기 살기로 당장의 위험에서 달아나기 바쁜 만상의 처량함과 삶의 의지가 그 어떤 인물들보다 깊이 파고들었다. 마치 <남한산성>의 서날쇠처럼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기 때문일까?

 

끝을 내달림에도 어리석은 머리로는 그 끝을 종잡을 수가 없어 애가 타고 저절로 손은 땀으로 흥건해졌다. 그들의 삶, 운명이 과연 어떻게 되는 것인지. 흐릿해진 기억을 더듬어가면서, 변할 수 없는 역사 속 실존인물들의 운명, 그들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가 없었다. 석경과 흔이라는 인물의 운명, 소현과 봉림의 대립(대립과 갈등이 주된 이야기로 전개되진 않지만 상상 속에서 더욱 그 둘간의 간극이 분명해지고 있었다.), 진퇴양난에 빠진 소현의 운명은 역사적 실체 사이 사이에 격변의 시대를 살아낸 뭍사람들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동시에 그 처절함 속에서 권력에 대한 환멸에 몸서리쳐진다. <소현>은 슬픔과 고독을 대변하는 듯 깊이 울리는 독백처럼 가슴을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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