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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여행자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노블마인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요시다 슈이치의 신간 <도시여행자>를 만났다. 뜻밖의 반가운 소식에 헐레벌떡 달려, 손에 쥐었다. ‘도시여행자’라~ 왠지 쓸쓸함과 고독이 옷자락 끝에서 뚝뚝 떨어지는 한 사내가 저기 저 멀리서 나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 반가움과 미안함에 잰걸음을 놓는다.
요시다 슈이치와 함께 하는 낯선 도시로의 여행? 마치 ‘요시다 슈이치’가 보내 준 항공 우편을 받은 착각에 ‘푹~’ 빠지게 하는 표지다. 그의 초대를 받은 나는 낯선 도시의 지도 한 장을 손에 쥐고, 그를 찾아 나섰다. 왠지 사랑하는 연인 ‘언년이’를 쫓는 추노꾼 ‘대길’처럼 그렇게 ‘요시다 슈이치’를 쫓았다. 그런데 너무도 멀고도 험한 길이었다. 보일 듯 말 듯 먼 거리를 유지하며 그는 숨고 또 숨었다. 그리고 혼자만의 철부지 짝사랑임을 확인하는 순간, 외딴 거리 위에 홀로 남겨진 듯 멈칫 하게 된다. 결국 나는 나와의 숨바꼭질 중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그 누군가를 찾아 걷고 또 걷고 그렇게 헤매고 있었다. 그리고 또다시 그 길 위 나와 마주하였다.
요시다 슈이치와는 <동경만경>으로 처음 만났다. 도쿄만의 풍경이 한 눈에 펼쳐지며 그 속에 녹아든 ‘료스케’와 ‘미오’의 사랑이 심해 저 밑보다도 더 깊은 곳에 숨어있는 감성을 자극하였다. 쉽게 말하고 있기에 너무도 잘 알겠는데 여전히 모르겠다는 그 모호함 속 뜨거움이 좋았다. 그리고 천천히 그를 탐닉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시작만 하였을 뿐이었다. <도시여행자>를 통해 미처 만나지 못한 그의 작품들을 고스란히 만나보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혔다.
한 숨 돌리기라도 하는 듯, 지난 10여년간의 작가 인생을 뒤돌아본 시간이었을까? 작가에게 있어 장편소설과 단편소설을 어떤 관계일지 궁금해졌다. 10편의 단편 속에서 이미 만났었던 이야기의 다른 얼굴이 때론 빼꼼히 문을 여는 듯하였다.
솔직히 전혀 단편 모음집이란 사실을 염두해 두지 않았다. 첫 번째 <나날의 봄>을 읽으며, 이제 사랑을 시작하게 될 남녀의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콩닥콩닥 뛰는 가슴에 봄처녀처럼 마냥 설레고 신나하다가, 그대로 끝나 버린 이야기에 몹시 당황하였다. 왜이래?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되는 거야?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줘야지? 타보지도 않은 롤러코스터의 정점에서 떨어진 느낌, 된서리를 맞은 듯 한 동안 못마땅해 투덜거리기도 잠시, 결국 열 개의 다양한 삶, 각양각색의 인물들과의 만남에 동화되어 결국 내 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다보니 앉은 그대로 마지막 장을 덮고 말았다.
<영하 5도> 속 남녀(일본여와 한국남)의 닮은 듯 다른 기억, 그 사소함에 허우적거리는 것이 흥미로웠다. 특히, 우연한 계기로 일본 소설을 즐기게 되었다는 남자 주인공이 어느 일본 연애소설 속 여자 주인공을 자신의 누나와 겹쳐 떠올리며 신기해했던 기억에 공감하다가, 누나의 입으로 일본 소설? 그런 걸 왜 읽냐는 반문에 기가 막혔다. 일본 작가인 그가 스스로 반문하고 있다. 왜 일본 소설 그리고 자신의 소설을 읽냐고 묻고 있지 않은가! 그래 왜 읽을까?를 생각하다, 불쑥 그럼 당신은 왜 쓰느냐고 되묻고 싶어진다.
왠지 모르게 <퍼레이드>의 장면이 떠오르는 <젖니>, 40대 미혼남들의 이야기를 담은 <오사카 호노카>와 <도시여행자>의 원제(표제작)인 <캔슬된 거리의 안내>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특히, <캔슬된 거리의 안내>는 작가 자신의 작가관(?), 소설관을 이야기에 비춘 듯하였다. 이야기 속 주인공 ‘나’는 소설을 쓰고 있다. 그런데 ‘나’는 그 내용이 자신의 실제 이야기, 모든 것이 사실이라고 말한다. 그리곤 이내 소설 쓰는 일이 ‘거짓으로 내일에 남기는 작업'이라 한다. 순간 너무도 깜짝 놀랐다. 추리소설의 예상치 못한 눈부신 반전인 냥. 삶을 소설로 풀어내며 사실인 듯한 현실감에 공감했던 우리 아닌가! 그런데 주인공 ‘나’를 통해 모든 것이 ‘허구’라고 당당히 밝히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거짓에 속지 말라고 위협하기라도 하는 듯. 그리곤 후회로 가득한 어느 시점의 한 사건을 마땅히 그래야만 했던 행동으로 이야기를 고치는 주인공 ‘나’를 통해 현실 속 이상을 꿈꾸며, 그 이상을 그려내는 ‘요시다 슈이치’를 자신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듯하였다.
<도시여행자>를 한 마디로 정의하기가 어렵다. 맥을 잡지 못한 듯, 새삼스러우면서도 별스러운 이야기들에 취했다. 아니, ‘요시다 슈이치’와 술 잔을 기울이며, 지나했던 삶의 이야기를 듣기 바빴던 것 아닐까. 그의 깊은 속내, 그 진솔함에 함께 웃다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리고 나의 지난 날을 돌아본다. 그 곳의 추억, 그리움 등이 차곡차곡 떠올라 괜시리 먹먹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