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뿔 - 이외수 우화상자
이외수 지음 / 해냄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괴짜 인생으로 대표되는 그의 삶에서 훈훈함이 엿보인 것은 얼마되지 않았다. 어쩌면 미디어의 힘일지 모르겠지만, 그는 다정다감한 할아버지같은 푸근함과 유쾌함으로 내게 다가왔다. 내겐 그랬다. 물론 '외수 마니아'라 할 수 없지만, 최근 일련의 우화, 에세이집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그의 책에 손이 먼저 반응하기 시작하였다.

 

이외수의 <외뿔>이다. 다른 말 물론 필요없을 듯하다. 일단 가벼운 마음으로 새해 작심삼일의 우를 범하지 않도록 흩으러지려는 마음을 다잡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얼마전에 만나 본, <사부님 싸부님 1,2>에서 느꼈던 것처럼 '가벼운 속의 묵직함'이 바로 이외수의 힘, <외뿔>의 힘이었다. 툭툭 던지듯 내뱉는 한 소리 한 소리에 귀를 기울여 경청하게 되니, 참 신통방통한 이야기이다.

 

'그대가 아무리 비천한 존재라도 자신의 내면을 아름다움으로 가득 채울 수 있다면 그대는 진실로 거룩한 존재다'라는 띠지의 글이 이 책을 오롯이 보여주고 있다. 이 책 자체인 것이다. 비천한 존재,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던 '물벌레'가 우화(愚畵)상자 속을 유유자적하는듯 하더니, 예상하지 못한 죽음을 맞아 하늘로 돌아간다 외치는 순간, 아름다운 잠자리로 변모하고 있어 절로 감탄이 쏟아지면서, 괜시리 무색해진다.

 

'외뿔'이란 제목에서 문득 도깨비가 연상되었다. 언제가 우리나라의 전통 도깨비는 외뿔이란다. 그런데 뿔이 두개인 일본 도깨비가 교과서까지 점령하고, 아이들의 의식까지 파고들어, 여전히 일제의 잔재 속에 허덕이는 현실이 무척이나 씁쓸했던 기억을 지울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외뿔 도깨비(몽도리)를 만날 줄이야! 더없이 귀엽고 깜찍한 몽도리, 반가웠다.

<사부님 싸부님1,2> 이야기처럼, 물벌레가 사는 의암호(물속)를 배경으로 탐욕으로 가득찬 여러 인간상을 대표하는 다양한 물고기들을 만나는 듯했다. 그런데 갑작스런 물풀과 도깨비 등장으로 살짝 우왕좌왕하기도 하기도 하였다. 물풀과 도깨비을 통해 사랑과 깨달음의 지혜를 이야기하는데, 제대로 읽지 못하는 어리석음에 여전히 내면의 아름다움이 멀고도 멀었다는 느낌을 씻을 수가 없었다.

 

정치, 종교, 교육, 문화의 현 세태가 그대로 반영되고 있었다. 2001년이 초판인 <외뿔>이 2009년에 새롭게 단장한 것을 제외하면, 우리 시대의 모습이 여전한 듯하여, 입안이 텁텁하였다. 인간들의 탐욕은 천계에서도 현재까지 제어 불능 상태로 간주되고 있다(147)는 이 한 문장이 인간의 한계를 대변하는 듯하다. 또한 물벌레를 통해 '토굴의 깊이와 절망의 깊이가 정비례'(260)한다는 말이 지난 20대의 끝자락, 몸과 마음을 움추렸던 순간이 떠올라 아찔하기도 하였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우리들의 얼굴, 들여다 보고 싶지 않은 우리들의 속마음이 책 <외뿔>속에 담겨있다. 하지만 외고집스럽게 외치고 있다. 사랑과 깨달음을 구해 내면의 아름다움을 쌓자고. 그러면서 손수 우리의 더려움을 깨끗이 씻어주며 보듬어주고 있다. 차분히 위로하며 감싸안고 있다.

새해의 시작과 함께, 굳은 의지로 계획을 세우며 마음을 다잡고 있다. 하지만 불안의 두려움에 휩쓸린 듯 벌써 흔들리는 마음을 보고 말았다. 하지만 '인내'로 오늘의 고통들이 아름다움이 되는 날까지 끝까지 노력할 것이다. 작은 물살에도 쉽게 흔들리는 마음이지만, 그 흔들림을 빌려 삶을 좀더 풍성하게 다지고 싶은 소망을 품어본다. 욕망이 아닌 소망을 이루어진다.

 

그대의 인내가 그대의 고통을 아름답게 만들고,

그대의 고통이 그대의 사랑을 아름답게 만들고,

그대의 사랑이 그대의 인생을 아름답게 만들지니,

그대가 우주의 중심이며,

그대가 우주의 주인임을 알게 되리라 (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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