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는 잘해요

사과는 잘해요 ㅣ 죄 3부작
이기호 지음 / 현대문학 / 2009년 11월

 
<사과는 잘해요>란 제목만 보곤, 처음에는 어린이 대상 책인줄 알고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표지를 보고, 책 소개를 보면서 왠지 위트가 넘치는 것이, 정말 익살, 유머가 번뜩이는 이야기를 담고 있을 거란 기대감에 들뜨더니, 오매불망 책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다. 또한 소설가 '박범신'의 추천사는 물론이고, 최근에 알게된 '함민복'의 추천사를 읽고 보니, 더욱 호기심을 갖게 되고, 꼭 읽기 싶다는 작은 열망을 느꼈다.

 

'사과대행업'이란 기상천외한 소재가 눈길을 끌면서, 간략한 책소개를 보니, <내 심장을 쏴라>란 책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내심장을 쏴라>역시 독특한 소재, 생동감 있는 이야기전개가 머릿속에 선명하여, 여전히 리플레이가 가능할 정도로 재밌게 읽었었다. 그런데 <사과는 잘해요>역시 마찬가지다. 정신병원과 복지원(시설)이란 공간적 배경과 두 인물간의 끈끈한 유대같은 것이 느껴지면서, 그 속에서 우리 현실의 부조리, 모순까지 위트있게 고발하고 있다는 점에서 닮은꼴을 찾을 수 있었다.

 

<사과는 잘해요>는 일단 손쉽게 읽힌다. 끊임없이 궁금증을 끌면서 호기심을 채이기에 바빴다. 때론, 주인공 '나'와 '시봉'의 바보스러운 행동들 속에서도 냉철하게 핵심을 찌르는 듯한 표현에서는 지극히 사리분별이 있는 정상인처럼 느껴져, 혼란을 겪기도 하였다. 특히, 전혀 생각지도 않고 있다가 이야기가 끝이 나, 어리둥절 하기까지 하였다. 아직 이야기가 더 남아 있는데, 나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아무 문제없이 생생하게 달리던 차가 갑자기 멈춰선 느낌, 그래서 오도가도 못하고 쩔쩔 매기도 하였다.

 

시설이란 곳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는다. 때론 매일 먹는 약에 의해, 무자비한 폭력에 의해,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린 듯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연출한다. 특히, 끊이없이 죄의 고백을 강요받고, 결국엔 고백을 강요하는 상황들이 계속되면서, '죄'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빠른 전개만큼 유쾌하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임에도 뭔가 머리가 멍해지면서, 막다른 길에 이른 느낌을 받게 되었다. 특히 다른 이들에게 죄의 고백을 강요하고,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하는 상황에서 돌발적으로 일어나는 분열과 죽음은 지금껏 생각하지 못한 문제를 제시하고 있었다. 생각만으로도 죄가 되기도 하고, 죄는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기도 하면서, '죄'와 '죄의식'을 다각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실타래가 엉키듯 나의 뇌세포들이 과부하로 아우성이기도 하였지만 깊이 있는 논의는 살짝 뒤로 하고 <사과는 잘해요>는 무지막지할 정도로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소설임을 소리 높여 밝히고 싶다. 가벼운 마음으로 '나(진만)과 시봉'의 우스꽝스러운 행동들, 순수한 열정에 한바탕 웃다보면, 경쾌한 전개만으로도 상당한 흡입력으로 끌어드리는 마력에 속수무책 당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 후, 천천히 '죄'의 본질을 성찰해봐도 늦지 않는 일, 그렇다면 이보다 유익한 소설이 또 어디있을까? 조심스레 이 책 한 권 <사과는 잘해요>를 건네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