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다드의 오디세우스
에릭 엠마뉴엘 슈미트 지음 / 밝은세상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 아빠, 누가 야만인일까요?

사람이 분명한데도 사람 취급을 안 하는 저 사람들일까요?

아니면 사람이면서 사람 취급을 못 받는 우리들일까요? "

(231쪽)



 

 

 

'불법체류자'를 소재로 한 이야기라 마음이 동요를 일으켰다. 작가 '에릭 엠마뉴엘 슈미트'의-서점에서 훌렁훌렁 넘기면서 호기심을 가졌던 <내가 예술작품이었을 때>의 저자였기에- 낯선듯 친숙한 느낌이 전해지면서 표지 한 귀퉁이를 장식하고 있는 투박하면서 익살스러운 조각상같은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그런데, 책을 모두 읽고 나니, 비로소 표지의 그림이 더욱 애잔하게 다가온다. 철조망에 갇힌 주인공 '사드'의 자유를 향한 열망과 좌절이 눈물 한 방울과 나로서는 결코 형용할 수 없는 무수한 감정들이 표출되는 모습에서 생생하게 전해지고 있다.

 

"거미 한 마리가 지치지도 않고 창살과 벽 모서리 사이에 거미줄을 치고 있었다. ....... 거미는 제 다리가 연약한 것을 잘 아는 듯 우아하고 조심스레 다리를 뻗어가며 집을 완성해가고 있었다. 모기와 파리, 날벌레 등 촘촘한 그물망에 잡힌 먹잇감이 많았지만 거미는 확보된 식략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집짓기에 여념이 없었다. ...... 난 왜 저 거미처럼 적응하며 살아가지 못할까? 거미는 어디서나 둥지를 트는데 내겐 왜 이곳이 감옥처럼 느껴지는 것일까? 거미에게 집을 직기에 더 나은 환경이란 없어보였다. 거미는 발 딛은 곳을 터전 삼아 군말 없이 새 삶을 시작했다" (166쪽)

 

<바그다드의 오디세우스>는 일단 독특하면서도 흥미진진하다. 자신의 이름이 '사드 사드'라고 밝히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런데 아랍어로는 '희망 희망'이고 영어로는 '슬픔 슬픔'의 뜻이라고 일러준다. 그렇다. 주인공 사드의 삶은 희망과 슬픔의 연속이었다. 자신이 '이라크'란 땅에서 태어난 선택할 수 없었는 운명 앞에, 희망을 향해 무조건 달리고 있는 한 청년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곤 발바닥에 생긴 티눈에 '희망'이란 이름을 붙여주면서 이야기를 끝을 맺는다.

 

'불법체류자'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어쩌면 영상 속에 비치는 그 처절함에 몸서리치면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들도 '인간'인 것이다. 누구나 누려야 할 기본 정신, 인간이기에 존엄받는 삶 속에 '불법체류자'란 존재는 없는 것이었다. 이렇듯 책 첫 페이지를 장식한 "인간에게 이방인은 비인간뿐이다"라는 '장 지로두'의 말이 뇌에 꽂힌다.

 

이라크 바그다드 태생인 주인공 '사드'의 삶이 처음부터 불행하고 절망의 구렁텅이는 아니었다. 사서인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네 명의 누나들 밑에서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아이였다. 그리고 책을 즐기는 아버지, 은유를 좋아하시는 아버지와의 대화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자살폭탄 테러로 정신없이 도움을 요청하던 중에 미군의 총에 맞아 돌아가신다-에도 지속된다. 사담 후세인의 독재 치하에서 금기시 된 책을 지하창고에 몰래 보관하시다, 어느날 사드에게 책을 읽히시는 아버지, 그럼으로써 현실의 부조리를 뼈저리게 인식하게 되는 과정, '레일라'를 통해 사랑에 눈을 뜨고, 이별의 고통-폭격으로 레일라-에 신음하기도 하고, 가족의 죽음과 굶주림에 이라크를 떠나기로 결심하지만 그의 말할 수 없는 고통-때론 마약운반, 제비생활, 수용소 생활 등등의 불법체류자 신분으로서의 삶-이 연속이요, 시작일 뿐이었다.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그 속에서 '붑(부바카), 비토리아, 레오폴드, 이탈리아의 어느 공무원, 막스, 쇨셔, 폴린'과의 인연들은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카이로, 몰타, 시칠리아, 나폴리, 그리고 영국 런던으로 이어지는 그의 모험은 <오디세이아>와 절묘하게 엮어지면서, 또다른 재미와 감동을 선사한다.

 

결말에 일으면서는 결코 예상하지 못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때론 머릿속에 폭죽이 터지는 환희는 맛보다가도, 때론 사드의 절망 속에, 불면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만약 내가 '사드'였다면? 이란 질문을 끊임없이 하다보니, 머릿 속이 새하얘지면서 혼란스럽다. 특히, 레오폴드, 어느 검문소 공무원, 폴린과의 대화를 통해, 국경, 전쟁 등으로 인한 불공평하고 모순된 세상을 신랄하게 고발하면서 '인류애'적 관점에서 '불법체류자' 문제를 다루고 있다. 또한 이라크의 현대사-특히 사담 후세인의 독재와 이라크 전쟁-를 생생하게 목격하고, 세계 정세의 흐름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었다. 이것은 또한 '황석영'<바리데기>를 떠올리게 하면서, 장면 장면이 여러번 오버랩되기도 하였다. 다시 한 번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세계 각지를 떠돌게 되는 '사드'의 모험은 그의 절망과 혼란 속에서도 담담하면서도 익살스럽게 펼쳐진다. 때론 나사가 하나 풀린 듯한 어리버리함이 느껴지고, 그 어떤 굴욕과 같은 환경 속에서도 체념하기보다는 끊임없이 '희망'과 '사랑'을 가슴에 품고 있으니, 너무도 사랑스러운 주인공이 아닌가! 책 속으로 뛰어들어, 그와 대면하고 싶다. 아니, 어딘가에 분명 존재하고 있을 '사드'와의 만남을 꿈꿔보면서, 사드와의 짧은 만남의 순간들이 아쉬움을 달래본다. 또한 '불법체류자'를 다룬 문제 인식에서 부족한 나의 논리에 허우적거리며, 잠을 쫓게 되었다. 

분명한 사실은 이 책에 대해 한 마디로 정리하기가 너무도 힘에 부친다는 것이다.

하지만 삶이 버겁다 느껴질 때, 우울의 온 몸을 휘감을 때, 한 번쯤 <바그다드의 오디세우스>를 손에 쥐고, '사드'를 만나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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