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패턴 - 루스 베네딕트 서거 60주년 기념, 새롭게 탄생한 문화인류학의 고전
루스 베네딕트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0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화'란 말을 시시콜콜 많이 사용하면서도 그것에 대한 정의를 확실히 하지 못한다. 그런데 그 정체불명 '문화'라는 것에는 어떤 흐름과 맥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에 대한 답을 '문화의 패턴'이 해줄 것 같은 생각이 들지 않는가! 솔직히 '루스 베네딕트'를 최근에 알았다. <국화와 칼>이란 책은 예전에 들어본 적은 있지만, 그 책에 대해 알지 못했다. 설혹, '일본'에 대한 이야기라 하더라도, 관심밖이었다. 어느 책을 통해 '루스 베네딕트'에 대한 관심을 갖게되고, <국화와 칼>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조금씩 이해할 무렵, 우연히 '루스 베네틱트'<문화의 패턴>을 만나게 되었고, 이 여름, 엉덩이에 땀띠 한 번 나보게 '공부'해 볼까? 하는 엉뚱한 공상(내가 더위를 먹었었나~ 호호)에 의욕을 불태워보았다. 뭐~ 내겐 만만하지 않은 책임엔 분명하지만, 저자의 이력을 알게되고, 시대상황을 생각하면서 '문화'에 대한 베네딕트의 일사분란한 탐구 노력과 그 결실을 야금야금 맛보았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문화'에 대한 이야기, 문화의 상대성은 엉덩이가 들썩거릴 정도로 흥분되고,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또한, 책을 덮는 순간의 뿌듯함은 이루 말 할수 없이 컸다.

 

문화의 발달 이론 중에 '진화론'의 견지에서, 20세기 초중반은 제국주의, 인종우월주의, 민족주의 등등이 주류인 시대였다. 그런데 이에 대한 반론으로 저자는 '문화적 상대론'에 입각하여 '문화'를 이해하고 정리하고 있다. 비록 늦은 나이에 학문에 입문하고, '여성'이란 사회적 한계 속에서, 성정체성 등과 같은 개인적 벽과 싸웠지만, 70년이 지난 지금에도 너무도 유익하고, 생생하게 살아있는 고전 중의 고전인 책이 바로 <문화의 패턴>이었다. 문화에 대한 정의, 그리고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문화 간의 '통합' 그리고 '개인'과 '문화'간의 상호작용에 대한 그녀의 주장은 읽으면서 경탄하며, 끄덕끄덕 그녀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문화의 패턴>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것은 심히 버거운 일이다. 그래서, 가장 크게 와닿았던 것을 몇가지 정리해 본다. 

첫째는 문화의 우위, 서열을 따지기보다는 '문화적 가치'의 '상대성'을 강조하고 '이분법적 사고'에 대한 비판과 함께 문화적 다양성의 인정을 촉구하는 것이었다.

둘째는 사회와 개인의 상호의존성을 강조하면서, '사회의 부적응자'에 대한 배려로, '사회적 관용'의 필요성을 주장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은 문화를 서로 다른 문화간의 상호 작용을 통한 '통합'의 필요성을 역설한다는 것이다. 

 

.... 우리 서양 문화를 인간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다양한 문화적 통합형태 중에서 한 가지 사례라고 보는 것이다. 어떤 문명의 문화적 패턴은 인간의 잠재적 목적과 동기들로 가득한 커다란 스페트럼 중 일부를 활용하고 있다. .... 각 문화는 그들이 선택한 물질적 기술이나 문화적 특성을 활용하여 문화의 패턴을 형성한다. (342-343)

 

총 8장으로 구성된 중에서 원시부족의 유형을 정리하는 4,5,6장의 이야기는 극단적인 사례와 그들 문화의 여러 방면을 심층분석하고 있는 부분이지만 집중하기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다. 지리적 위치와 환경과 함께 세 부족(주니, 도부, 콰키우틀)의 독특한 문화들은 단편적으로 기억되었다. 극단적이고 서로 이질적 문화를 비교 대조함으로써 우리의 사회를 분석하고, '문화적 패턴'을 정리하였다.

 

문화적 특징들의 상호 침투는 생겨났다가 사라지는데, 문화의 역사는 상당 정도까지 문화적 특징들의 성격, 운명, 결합의 역사이다. ...... 문화적 특징들의 다양한 조합 가능성은 무한하고 그래서 적절한 사회 질서는 이런 다양성의 기반 위에서 무차별적으로 구축될 수 있는 것이다. (86)

 

<문화의 패턴>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생각한 것은 '다문화 가정'에 대한 것이었다. 문화적 상대성을 인정하고 다양성을 추구하면, 타인(개인과 개인은 물론 개인과 사회)과의 원만한 관계를 통해 이익과 즐거움을 누리고 신뢰를 구축할 수 있다는 그녀의 주장은 오늘날 더없이 빛을 발하고 있다. 문화에 대한 그녀의 통찰력이 놀랍고도 놀라웠다. 우리는 '단일민족의 우수성'을 수없이 강조하여 왔다. 하지만 '다문화가정'이라는 지금의 갈등,논란이 아니더라도, 그 역사적 흐름을 보아도 그렇다. 얼마전 'KBS 역사스페셜'에서 '신라 김씨 왕조'의 조상이 '흉노족'이란 내용을 시청하면서 온몸에 전율이 일기도 하였는데, '단일민족'이란 것 자체가 한반도에 국한된 공간적 한계일뿐 무수한 인종, 민족간의 결합은 유사이래 지금까지 있었던 보편적 이야기일 것이다. 그런 문화간의 상호작용, 그리고 다양성과 통합이 더없이 멋진 사회로 발전하는 밑거름이란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다름과 차이을 인정하고, 서로 조화로운 삶을 꿈꿀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문화의 한 방향임을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여름 비록 땀띠날 정도는 아니었지만, 간만에 '공부'좀 해 보았다. 더없이 좋은 인생공부의 시간이었다.

 

국가는 사람들을 한데 묶어주는 문화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문화의 주된 장점을 높이 평가하면서 다른 문화권에서 다른 문화가 발달할 수 있음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불필요한 오해로 위험을 초래할지도 모르는 상징조작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현실적인 사고방식이 자리 잡게 될 것이다. (4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