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과연 천국이란 어떤 곳일까? 아니, 어떤 곳이길 바라왔는가? 이 책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에는 앞선 의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언제가 친구와, 불안, 걱정, 죽음 등등의 이 인간 세상이 지옥 아닐까? 하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마음을 주체할 수 없이 혼란스럽고 답답했던 때의 일이다. 그런데 그 반대가 또한 한 가지다. 내가 마음의 평화와 사랑으로 충만하다면, 이 세상은 천국일테니 말이다. 귀동냥으로 정의내렸던 천국과 지옥, 그 중에서 모든 갈등이 해소되고, 화해하면서, 자신을 인정하게 되는 곳이 바로 천국이었다. 여든세살의 삶을 정리하게 되면서 만났던 다섯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문제들를 해결하면서 평화를 얻게 되는 과정이 차분하게 전개된다.

 

솔직히, 다른 사람들처럼 '미치 앨봄'의 이야기에 열광하지 못하겠다. 몇해 전,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을 읽은 때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읽었다고 하기엔, 기억이 적고, 감동은 그다지 없었다. 그냥 '죽음'을 맞는 한 교수의 이야기가 내게 어려웠다. 그러하기에 걱정이 앞서기도 하였다.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의 이야기도 그렇게, 데면데면하게 되는 것은 아닐지? 하지만, 걱정과는 달리, 꽤나 진지하게 마음을 잡으며, '애디'의 이야기에 빠졌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루비'를 통해 아버지를 이해하는 과정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유년기의 상처로 그에게 아버지는 무관심, 폭력, 그리고 침묵으로 일관하신 분이다. 그러하기에 아버지는 그에게 삶의 버거운 짐이였으리라. 그리고 그는 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알지 못하고, 평소의 모습으로 단지 추측만 했을 뿐이다. 하지만, 죽음을 앞둔 순간에도 가족을 그리워하셨다는 이야기, 친구를 구하고 의리를 지키셨던 아버지를 알게되고, 아버지를 용서하게 된다.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쉽게 단정짓기 일쑤다. 때론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끊임없이 미워하고 분노하게 된다. 하지만 대화를 통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에 당황할 때도 많았다. 아버지를 용서하고 화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오해와 불신 등을 떠오르고, 다른 이의 입장에서 더 많이 생각하고 헤아리려고 노력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희생'을 이야기하는 대위의 말도 인상적이었다. 간혹 나의 '희생'의 대가를 운운하며, 분노했던 적이 많다. 또 한 번 반성하고 또 반성해본다.

 

"희생. 자네는 희생했고 나역시 희생했어. 우리 모두 희생을 한다네. 하지만 자네는 희생을 하고 나서 분노했지. 잃은 것에 대해서만 계속 생각했어. 자네는 그걸 몰랐어. 희생이 삶의 일부라는 것. 그렇게 되기 마련이라는 것. 희생은 후회할 것이 아니라 열망을 가질 만한 것이라네. 작은 희생 큰 희생. ……"

 ……

" …… 때로 소중한 것을 희생하면, 사실은 그걸 잃는 게 아니기도 해. 잃어버리는 게 아니라 그걸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는 것이지." (117-118)

 

그가 천국에서 만났던 파란 사내, 대위, 루비, 아내 마거릿, 그리고 탈라 이렇게 다섯 사람들은 그의 삶 속에서 직접 마주했던 인연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바로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며 손익관계를 따져볼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얇팍한 계산이 얼마나 어리석었던 것인지, 그리고 스치고 지나는 많은 인연들 각각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다시 마음에 새겨보았다. 솔직히, 아직 '아~ 이런거야'라고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 하지만 진지할 수 밖에 없는 시간이었다. '죽음'이란 화두가 머릿속에서 맴을 돌면서, 차분하게 나를 만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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